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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스텔라 Oct 23. 2024

오페라 투란도트 리뷰

직장인의 가성비 문화생활 4편

2024 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긴 이름만큼이나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공연이었다. 그래서 공연 관람 직후에 리뷰를 남길 수가 없었다. 심지어 아직도 예매처 홈페이지에는 각종 항의와 환불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공연 전 날까지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게 했던 오페라 투란도트.

투란도트 홍보 포스터 (출처 : 인터파크)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과 푸치니 서거 100주년 기념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최초 내한>이라는 홍보 문구만으로도 ‘덕후’의 심장은 팔딱거렸다. 하지만 그것뿐. 높은 가격으로 인해 내 손가락은 최종 결제 단계까지 시원스레 클릭하지 못했다. 최저가(D석) 오만 원, 최고가(P석)는 오십오만 원에 달하는 이 고급진 공연이 어떻게 '직장인의 가성비 문화생활' 타이틀을 달 수 있었을까?


매표 단계에서는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건지,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무대 장치와 자막 스크린 때문에 공연장의 일부 좌석은 시야 방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시야가 차단되었다. D석은 말할 것도 없고 그것보다 높은 등급의 좌석도 상당수가 무대든, 자막이든 아예 보일 수가 없는 구조였다. '고막 호강'만을 위한 비용으로는 사실 오만 원도 과하다. 같은 가격이면 배우의 표정 하나까지 섬세하게 볼 수 있고, 최신식 음향시설로 녹음된 공연 실황 DVD를 집 소파에서 편히 앉아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참고로 이 공연의 최고가의 좌석은 편의점에서 주로 쓰는 플라스틱 의자가 세팅되어 있었다).

이 암담한 사실은 불행 중 다행으로 내 공연 관람일 전에 발견이 되었고 주최 측은 좌석 업그레이드 카드를 내밀었다. 손을 떨며 결제한 내 좌석은 D석 저 끄트머리에서 중앙블록에 가까운 A석으로 변경되어 자그마치 다섯 배나 비싼 몸값으로 뛰어올랐다. ‘직장인의 가성비 문화생활 4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체조경기장은 여러모로 아쉬운 장소였다. 막 전환에만 5분이 넘게 소요되는 압도적인 무대 스케일로 인해 일반적인 오페라 극장에서의 공연은 어려웠겠지만, 전문 공연장이 아니다 보니 음향에 대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나마 나는 주중에 봐서 체조경기장 주변의 다른 공연들의 방해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개막일과 그다음 날은 주말이었던 탓에 주변의 여러 소음들로 인해(하필이면 록 페스티벌이 열릴 건 또 무어란 말인가) 아리아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항의가 쏟아졌다. 이런 공연은 주말을 피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셈이다.  


화려한 무대와 수백 명의 출연진, 주연들의 아리아는 나의 시각과 청각을 모두 사로잡았다. 칼라프 왕자가 부르는 ‘네순 도르마(Nessun Dorma / 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제목을 모를지라도 후렴구를 들으면 누구나 "아, 이거!" 할 정도로 많이 들어본 곡일 것이다. 광고나 드라마에도 자주 나왔고, 세계 3대 테너로 꼽히는 파바로티의 곡으로도 접해봤으리라. 익숙하다고 해서 그 감동의 크기까지 작은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곡에 꽂히면 열댓 번을 그 곡만 반복 재생하는 나에게 앙코르까지 두 번 연속 듣는 '네순 도르마'란! 칼라프의 노래는 척추를 찌릿찌릿하게 할 정도였다. 전문 공연장이 아니라도 이럴진대 음향 시설 좋은 곳에서 들었으면 정말 눈물 한 방울 찔끔 흘렀을 것이다. 실제로 주위 몇몇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투란도트'의 호흡 긴 고음의 아리아도 멋졌지만, '류'의 애절한 아리아도 감동적이었다. 하긴 그녀의 노래가 그 얼음공주 투란도트의 마음을 녹이니 그럴 수밖에.

투란도트 커튼콜

중간중간 빈 좌석과 불편한 자막 스크린, 주먹구구식의 현장 운영은 아쉬웠지만 그걸 모두 덮을 정도의 멋진 무대와 훌륭한 오케스트라 연주였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는 ‘역시 이래서 투란도트구나!’했다. 그래도 주최 측은 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이 멋진 공연의 관람후기 반 이상이 욕이어야 되겠는가. 나야 업그레이드된 좌석에서 봤으니 만족했지, P석으로 예약했었다면 여러모로 아쉬움이 컸을 공연이었다.


12월에는 코엑스에서 VIP석 가격이 자그마치 백만 원에 달하는 공연이 올라오는데 이 공연 때문에 주연이던 '마리아 굴레기나(투란도트 역)'의 출연이 번복되기도 하였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보는 것도 좋겠지만 얇디얇은 내 지갑 사정을 고려하여 ‘네순 도르마’는 그냥 애플 뮤직에서 듣기로 하였다. 파바로티가 노래한 ‘네순 도르마’를 들으며 이 글을 마칠까 한다.

파바로티의 네순 도르마 (출처: 애플뮤직)


덧붙임. 올림픽경기장의 다른 경기장들은 일 때문이나 공연 때문이나 많이 가봤지만 체조경기장은 처음이었다. 크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클 줄이야. 엉뚱하지만 임영웅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 넓은 공연장을 꽉 채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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