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40살 문턱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왔나', ‘어떻게 살 것인가’ 등 수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때늦은 사춘기를 맞았고, 그 와중에 첫째가 ADHD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 진단을 받아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3년 반을 보냈습니다.
이후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각성(覺醒)과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에 ‘내가 행복한 삶’을 찾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이 혹여 주변 사람들에게, 특히 물심양면으로 평생 지원하신 내 부모님과 아직 본인이 ADHD 성향을 가졌다는 것을 모르는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 ‘나의 양육태도를 누군가로부터 비난받지 않을까?’, ‘정서적으로 한없이 흔들리는 나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하는 두려움에 수개월간 글쓰기를 멈추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몇 번이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차분해져 불안감이 사라진 행복한 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글을 쓰는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한 효능감(效能感)을 느꼈고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으면서 언제부터 쌓여왔는지 모르는 나의 상처를 직시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궁극적으로 나의 글쓰기는 불안, 걱정, 우울 등
한 인간으로서 미성숙함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나의 아이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한 최선의 내면수양 수단입니다.
나아가 ADHD 성향을 가진 성인 혹인 자녀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우리 아이가, 내가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공감과 작은 위로를 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제가 가지고 있는 ADHD 성향을 극복해 보고자 하는 크나 큰 도전입니다.
일을 시작하는데 마음먹기가 매우 힘듦.
일을 시작은 했으나 마무리하지 못함.
- ADHD '부주의'에 관한 증상 중 -
책을 쓰는 내내 마음 한 켠이 무거웠던 것은 친정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였습니다. 분명히 물심양면 최선을 다 해 길러 주셨는데 부모님과 다른 가치관으로 인해 힘들었던 경험들을 제 입장에서 쓰다 보니 행복했던 기억, 감사한 부분 들은 미처 다루지 못해 딸에게 배신감을 느끼시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습니다. (같은 상황을 부모님 입장에서 쓴 책이 나온다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전개될 것입니다.)
'부모님과 친정 식구들은 이 책의 존재를 몰랐으면’하는 마음, ‘내 아이들이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이 글을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이기에 필명(筆名)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변으로부터의 시선과 평가, 많은 것이 두려운가 봅니다.
그럼에도 솔직한 나의 내면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고, 이해를 구하고 싶은 배우자가 있어서, 그 사람만큼은 나를 이해해 주고 위로해 줄 것 같아서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이 책은 제가 겪었던 아들 Y의 ADHD 진단계기와 진단 전후에 있었던 외부와의 갈등, 그로 인해 잠 못 이루었던 수많은 날들, 현재도 진행 중인 수년간의 치료과정과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그 속에서의 깨달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ADHD 성향을 가진 사람과 가족은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도드라짐 없어야 하는 우리 사회에서 수시로 눈초리를 받고 사과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다름’에 대해 조금 더 포용적인 나라로 떠나 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적
인 이유로 그럴 수 없습니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어떻게든 잘 살아가도록, 전두엽이 잘 발달한 사람들보다 더 많이, 때로는 순간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어야 할 만큼 처절하게 애써야 합니다.
저는 ADHD 관련 의학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학적인 해결책은 담지 못했습니다.
다만, ADHD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서, ADHD 자녀를 둔 엄마로서, 우리 가족이 거쳐온 과정이 누군가에게는 예상할 수 있는 미래가 되어 순탄하게 거쳐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당신 혼자가 아니라는 응원을 담아 《너무나도 사적인 이야기》지만 용기내어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또한 세상 일에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는 불혹(不惑)을 훌쩍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외부 자극에 하염없이 흔들리는 스스로를 단단하게 하기 위한 다짐이며, 지천명(知天命),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격적인 성숙을 향한 간절한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