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외노자 인생 Oct 18. 2024

도대체 내 짝은 어디 있는 걸까?

2019년 한 해간 데이팅을 돌아보며 

세상에 반인 많고 많은 남자 중 내 짝은 어디있나?!



#일년간 열 두명의 데이트

2019년은 본격적으로 연애를 해보자!하고 팔을 걷어붙이고, 데이팅 앱을 다운받았다.

워홀 비자로 있을 때에는 향후 거처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연애는 생각도 안했지만, 5년 취업비자를 받고 나니 당분간은 영국에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연애를 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운받은 데이팅 앱에서 일년 간 총 12명의 데이팅 남을 만났다. 누구는 한 달에 한 명씩 만나냐고 하던데, 웃프다 진짜. 어떻게 하다보니 열 두명이다.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땐 한 달에 3명도 만나보고, 바쁠 땐 3달 이상 데이팅 앱은 열어보지도 못하고 그 결과 한 번 또는 한 번 이상 세 번 이하 만났던 데이트 남들이 12명이다.


이십 대 중후반부터 사십대 초반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만났고, 국적도 영국, 독일, 덴마크, 스페인, 이탈리아, 콜롬비아로 주로 유럽권이지만 다양하게 만나봤고, 영국 내에서도 런던을 포함해 데본, 리버풀, 버밍험 등 대도시부터 소도시까지 다양한 지역 출신의 사람을 만났다. 직업은 프로젝트 매니저, IT, 데이터 분석가, 소프트 엔지니어, 건축가, UX 디자이너, 경영 컨설턴트, 심리 상담가 등 다양했다.



#신중한 걸까, 두려운 걸까? 

예전 전 남친을 만났을 때와 같이 외로운 마음에 급하게 빠져들고 아닌 걸 알면서도 이미 감정이 깊어졌기에 그만 두지 못해 질척거렸던 연애는 하고 싶지 않기에, 이번 연애 상대를 고를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그 중 내가 매력을 느꼈던 삼십대 중반의 데본남은 나에게 별 관심이 없었고, 나에게 호감을 보이는 한 이십 대 후반 남에게는 끌리지가 않았다. 챙겨주어야할 남동생같은 느낌. 나이와 정신연령이 꼭 비례하지는 않지만, 보통 인생의 스테이지가 다르기도 하구. 나는 이제 세틀 다운을 하고 싶은데, 연하는 아직도 한창 경험을 하는 중간 단계의 느낌. 금,토 저녁에 펍에 가서 한껏 마시고, 춤추고 그런 날도 가끔 있지만, 난 이제 집에서 집밥해먹고 침대 위에서 영화나 보면서 쉬고 싶은데 어린 애들은 나가서 놀고 싶어하구. 영국 생활 초반 3년간 펍에서의 나이트 아웃은 지겹도록 많이 해서 이젠 큰 감흥이 없다. 


연초에는 누구나 같은 마음인지 부지런해진다. 매칭되는 남도 더 많아지고, 다들 연애를 하려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 1월 중순에 만난 데본 출신의 남과는 3월까지 만남을 이어왔지만 서로 밍숭밍숭거리다 영 아닌 것 같아 마무리지었다. 내 연애사를 잘 알고 있던 사라 왈, "왜 좋아하려고 노력하니? 끌리지 않는 게 눈에 보이는데." 사라 말이 맞다. 전 남친과는 달리 안정감이 느껴지고, 생활을 책임감있게 꾸려가고 있는 데본남이었지만 둘의 케미스트리가 영 별로였다. 서로 만남을 위한 만남을 지속하는 느낌이랄까. 그도 그럴게 데이팅앱에서 새로운 사람과 매칭되고, 의미없는 채팅을 지속하고, 만나고 이런 행위를 반복하기 싫은 거였다 서로. 

5월에 만났던 독일 남은 4년간의 장기 연애를 뒤로 하고 싱글이 된 지 반 년정도 되었는데, 내가 런던에서 연애가 쉽지 않다고 하니 잘 이해한다고. 전 여친을 만나기 전에 겪어서 이해한다고 다시 데이팅을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에 벌써 피곤하다고. 하아, 내 또래 삼십 대 중반 남자들과 만나면 다들 비슷하게 하는 소리 ㅋㅋㅋ 



#최악의 데이팅 남

다들 무난했지만 그 중 만나고 나서 기분이 찝집할 정도로 별로였던 버밍험 출신 남은 본인의 직업을 포장하는 사람이었다.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이유는 본인의 직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 때문이고 브렉시트 안건 외에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띄고 있는 사람이다. 일부 영국 사람들이 그렇듯 미국 및 영연방 국가를 낮춰보는 성향이 있었는데 이게 가벼운 농담 수준이 아니라, 그 수준이 심각했다. 전 여친이 상하이 출신이었는데 동거하다가 중국으로 돌아갔다길래, 중국에 더 밝은 미래가 있었나 보지?하니, 중국의 심각한 인권 유린 상황을 말하기 시작하며 중국이 얼마나 살기 힘든 나라인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하아... 너희 나라는 중국인 유학생하고 관광객 빠져나가면 큰 타격을 입을 판인데, 무슨 소리하고 자빠졌니. 

성차별적인 마인드도 있고, 한 마디로 Racist, Sexist and Nationalist의 세 콤보를 모두 지닌 폭탄이었다. 이래서 백 날 채팅해봐야 한번 만나서 얼굴보고 대화하는 것만 못하다고, 만나기 전에 채팅한 기간만 2주였는데, 나의 아까운 시간. 


영어 수준이 고급 수준이 안되니 이런 애들만 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많이 먹은 내 나이 탓인 거 같기도 하고, 여튼 이런 애들 한번씩 만나고 나면 김이 빠진다. 



가끔씩 살아나가는 게 버거워질 때 무게를 살짝 덜어주고 함께 힘을 북돋아 주며 살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

올해 내가 주로 선택했던 데이트들을 생각해보면 믿을 수 있는 안정감있는 남자였다. 예측 불가한 전 남친의 영향으로 그 사람의 행동 및 심리가 예측 가능한 사람과 있을 때 편하다. 마음 고생하기 싫다는 소리. 그 때 감정에 휩싸여서 말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남자가 아닌 말의 중요성을 아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 

대화를 리드할 수 있는 적당한 수다기가 있고, 다양한 분야의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대화할 수 있고, 지적호기심이 있어 어떤 사물, 상황, 장소에 있어도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알며, 운동을 즐겨하여 건강한 신체와 정신사고를 지녀 강인한 정신력을 지녔으며, 불우한 이웃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품을 수 있고, 무엇보다 안정적인 장기적인 연애를 희망하는 자여야 한다. 왜냐하면 사귀고 헤어지고 지난한 과정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으니까. 이건 마음먹은 데로 되는 건 아니지만, 보통 이십대 후반 남들을 보면 아직은 세틀 다운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주로 삼십대 초중반의 또래 남들을 만나고 싶다. 삼십대 후반 및 사십대 초반도 괜찮은데 여기 애들 너무 나이들어 보여서, 탈모도 그렇고 주름도 그렇고, 나도 아줌마가 되어가는 나이지만 좀 아저씨같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점은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그 사람에 대해 안물안궁금이면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 이건 외적 매력, 성적 매력을 떠나서 그 사람 사고방식이나 가치관, 직업관 등이 흥미로운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자 연애 상대가 될 걸 알아도 그 사람의 생각이, 일상이 궁금하지가 않은데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며 관계를 지속할 수 있나.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가 않는데.  


이렇게 괜찮은 남자들은 다 결혼했거나, 짝이 있거나 게이더라. 런던에서는 게이가 참 많아서 호감을 느낀 남자가 게이인지 여부 체크가 필수이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누가 봐도 명백한 게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남도 많으니까. 

오늘 친구와 몇 주만에 통화를 하다가 친구가 최근에 카페에서 자주 만나서 가끔씩 애기를 나누곤 한다는 남자가 있다고 한다. 마케팅 업계에서 일하는데 인물도 훈훈하고 패션 센스도 있고, 매너도 좋다고 하는 카페 남. 친구에게 말해줬다. 게이가 아닌지 우선 확인을 해보라구. ㅠㅠ 



#나는 어떤 데이트 상대였나 

우선은 연애를 안 한지가 오래 되어 연애 세포가 죽어버렸다. 원래도 없었지만 멸종 위기?에 달해 자주 채팅하고 통화하고 싶어 하는 데이트남은 피곤하게만 느껴졌고, 문자 하나 보내는 게 별 일인 것 같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갑자기 보고 싶어 우리 집에 찾아온다고 하는 남은 부담스럽게 느껴졌고 그 와중에 나에게 별 관심이 없는 듯 하는 애하고는 또 채팅을 이어 나갔다. 죽어버린 연애의 감을 살리는 게 참 힘들다.  


무엇보다 참 어중간한 게 난 아직 또는 영영 결혼을 할 생각도 없고, 자녀 계획은 더 생각이 없다. 지난 몇 해 관련 책도 읽고 생각을 해봐도 결혼과 자녀 양육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이 들지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결혼하고 엄마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하는 애들도 있었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나와는 정말 다르구나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생각이 어느 정도 바뀌게 마련인데, 나이가 더 먹어도 이건 바뀌지 않을 것 같은데, 출산을 위해서라면 아직 시간이 조금 더 있으니 더 신중하게 생각을 해봐야겠다.

7년간의 장기 연애를 마치고 싱글남이 된 한 삼십대 중반의 데이트남은 데이트 첫 날부터 올해 3명의 친구가 애를 낳은 것에 대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첫 데이트에 저런 얘기를 하는 걸 보니 뜨악했고, 아 삼십대 중반인 내 나이를 보고 이제는 아이를 가질 준비를 하는 거겠지?란 생각을 하고 만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팅 앱 프로필에 다양한 항목이 있는데 그 중에 아이를 갖고 싶은지 여부도 선택할 수 있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나는 그 항목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어떤 남들은 아이를 갖고 싶다고 프로필에 드러내곤 한다. 사랑하는 연애 상대와 관계의 진전 또는 결실을 맺기 위해 2세를 계획하는 게 아니라, 데이팅 앱에서 아이의 엄마가 될 수 있는 여성을 찾는 걸까? 

본인이 자녀를 원하는지, 결혼을 원하는지 여부를 분명하게 아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세월이 지나고 생각이 바뀔수도 있지만, 삼십대 결혼 적령기에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면 그 두가지 항목은 상대에게 분명히 밝히는 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결혼과 자녀 계획 유무에 대해 더욱 신중하게 생각해보기로! 


최근 곽정은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다가 본인의 평안을 깨뜨리면서 하는 연애, 기회비용을 생각했을 때 연애가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라는 짧은 글을 봤는데, 공감한다. 연애를 하며 겪는 감정의 동요, 업앤다운을 넘는 안정감을 연애에서 찾을 수 있을까. 굳이 연애를 꼭 해야할까... 가족이라는 단위는 왜 꼭 남,녀, 그리고 추가적으로 아이로만 구성되어야 할까? 등 별 잡생각이 많이 나는 한 해였다. 

작가의 이전글 금수저가 아니면 유학을 못 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