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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m Feb 13. 2023

오픈워터 자격증 취득 실패담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이번 보홀 여행의 목적 중 하나가 오픈워터 자격증 취득이었다. 오픈워터란 무엇인가? 열린 물. 그렇다. 바다. 바다에서 최대 수심 18m 이내까지 다이빙하여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자격에 대한 증서가 오픈워터 자격증이다. 자격증이 없으면 체험다이빙밖에 못하는데, 체험다이빙이란 다이버가 나를 바다의 부유물처럼 질질 끌고 다니며 바닷속 세상을 체험하게 해주는 방식이다. 같이 간 언니는 체험다이빙을 몇 차례 해봤지만 나는 체험다이빙 경험조차 없는 초짜였다. 그러나 내 인생의 첫 다이빙을 오픈워터 취득과 함께 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무모하게 오픈워터 자격증 코스를 등록했다. 좀 무모했다. 아니 좀 많이... 아무튼 한인샵이었고, 3박 3일 일정으로 숙소이용료와 조식 및 중식을 포함해 교육비는 한 사람당 50만 원이었다. 전날 숙소에서 두 시간 반을 자고 일어나 택시를 타고 내려 페리로 두 시간을 가서 탁빌라란 항구에 도착하니 다이빙 샵에서 온 드라이버가 내 이름이 적힌 커다란 피켓을 들고 마중나와있었다. 우리는 그가 운전하는 벤을 타고 8시 30분에 숙소에 도착했다. 피곤해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컵라면을 곁들여 대충 아침을 먹고 있는데 한 늠름한 여자가 다가왔다. 여자는 오전 9시부터 이론교육이 시작되니 얼른 식사를 마치고 교육실로 내려오라 했다. 그 여자가 바로 우리의 오픈워터 교육 담당 강사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까이꺼 대충 이론교육 한두 시간 받다가 점심 먹고 수영장에서 몇 시간 교육하다 끝나고 내일은 바다 가겠지. 언니 그럼 우리 이따 저녁때 아로나 해변 가서 쇼핑하자. 이런 소리나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은 어느덧 오후 7시. 우리는 덜덜 떨며 수영장에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오전 내내 이론교육을 마치고 점심시간을 가진 후 오후 1시에 수영장 교육을 시작했다. 전날 제대로 못 자서 너무 피곤했던 언니와 나는 밥을 안 먹고 숙소에서 낮잠을 잤다. 일어나서는 초코바를 대강 씹으며 래시가드로 갈아입은 후 얼른 내려갔다. 가장 먼저 시작한 교육은 장비조립이었다. 공기통, 호흡기, 조끼 등 스쿠버다이빙을 할 때 장착해야 하는 몇 가지 장비들의 이상유무를 점검하고 셋팅까지 마치는 과정이었다. 비몽사몽에 쭈그리고 앉아 같은 걸 열번씩 하려니 힘이 들고 짜증이 났다. 교육생은 우리말고도 여자 한 사람까지 총 세 명이었는데, 세 명이서 한 사람이라도 순서가 틀리거나 뭔가를 빼먹지 않고 완벽하게 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하여 장비를 조립했다. 장비조립이 끝나자 시간은 벌써 오후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이미 탈진해서 교육이고 뭐고 숙소에 들어가서 낮잠 자고 일어나 해산물이나 실컷 먹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언니도 같은 마음인 것 같았다. 그래도 어영부영 우리는 물에 들어갔다.


수영장에서 처음으로 받은 교육은 배면뜨기였다. 내가 만약 바다의 한가운데로 떠내려갔을 때 당황해서 허우적대지 않고 침착하게 물에 눕듯 팔다리를 뻗고 있어야 생존가능성이 높아진다. 배면뜨기는 그럴 때 쓰는 기술이다. 본래 수영을 좋아하고 여름에 해변에 가면 물에 둥둥 떠서 눈만 모자로 쓱 가리고 있는 걸 즐기던 나는 배면뜨기가 쉽고 편했다. 15분이 지나 배면뜨기 교육이 끝난 후, 스노쿨러와 오리발을 착용하고 수영장을 여섯 바퀴 돌았다. 근데 이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몸은 자꾸 옆으로 기울고, 오리발이 익숙지 않은 데다 몸의 체온이 낮아진 터라 발에서는 쥐가 났다. 꾹 참고 교육을 진행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지쳤다. 전날 못 잔 데다 점심도 제대로 안 먹었고 해가 기울수록 날은 점점 추워지니 체력이 바닥났다. 여름나라라지만, 필리핀의 겨울은 해가 지면 우리나라의 초가을 날씨와 맞먹을만큼 제법 쌀쌀하다. 더구나 그땐 우기여서 찬 바람이 자꾸 들었다. 그런 날씨에 몇 시간을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 있자니 몸에 무리가 왔다. 나와 언니 둘 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었는데 같이 간 언니가 추위를 좀 더 많이 탔고, 교육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후 7시쯤 언니는 너무 춥다고, 도저히 못하겠다고 교육중단을 선언했다. 시선을 돌리니 언니의 입술이 파랗게 변해 있었고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다음 날 오전 6시에 다시 교육을 진행하기로 하고 그날 일정은 거기서 끝냈다.


이때쯤 우리는 오픈워터 중도하차를 고민하고 있었다. 만약 그때 교육을 포기할 경우 체험 다이빙 2회로 대체할 수 있었다. 체험 다이빙이나 하고 맛있는 거 먹고 놀다가 예약한 고급 리조트에 갈지, 이왕 온 거 오픈워터 자격증을 끝까지 취득할지 고민하다가 우리는 일단 다음 날 일찍 일어나야 하고 점심도 안 먹었으니 뭐라도 먹자며 리조트 식당에서 라면을 주문했다. 주문한 라면을 먹고 테라스에 앉아 다른 교육생과 함께 셋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열한 시쯤 숙소로 들어갔고, 다음 날 정해진 시간에 맞춰 옷을 갈아입고 내려갔다.


막상 푹 자고 일어나니 컨디션이 좋고 개운해서 마지막까지 오픈워터 자격증 취득을 완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은 뭔가 예감이 좋았다. 호흡기를 떼고 다른 다이버의 보조 호흡기를 착용하고 함께 천천히 수면 위로 올라가는 교육과, 밧줄을 타고 조금씩 수면아래로 내려가며 이퀄라이징을 하는 등 실제로 바다에 나갔을 때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실전 교육들을 위주로 받았다. 한두 시간 정도 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꽤나 재미있었고 어제와는 달리 앞으로 남은 일정을 잘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붙었다.


하지만 같이 간 언니는 조금 달랐다. 전날 추위에 떨었던 탓인지 몸이 금세 안 좋아졌고, 교육을 받다가 물을 먹는 사고가 있었는데 그 일까지 겹쳐 결국 언니는 교육포기를 선언했다. 그때 시간은 오전 8시였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나는 지금 정도 컨디션이라면 끝까지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언니가 안한다고 하니 고민이 되었다. 실은 그 모든 걸 다 집어던지고 놀고 싶은 마음도 컸다. 결국 나도 교육을 중단하기로 하고, 다음날 체험 다이빙으로 대체하기로 한 후 숙소로 돌아갔다.


블로그 후기로 봤을 때는 쉽게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오픈워터 자격증 취득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설렁설렁 교육을 마치고 자격증을 주는 샵도 있다고 하던데, 우리를 교육한 리조트는 보홀에서 오픈워터 취득을 정석대로 알려주기로 유명한 샵이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정석대로 알려주는 곳이 훌륭한 샵이 아닌가 한다. 실제로 바다 한가운데에 남겨졌을 때 살아남는 생존법과 대충 던져진 장비들의 이상유무를 하나하나 점검해서 제대로 착용하기 위한 셋팅법. 이런 것들을 제대로 못하면 어디서 다이빙을 한다고 입밖으로 말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곳에서의 교육은 블로그 후기를 보며 내가 상상했던 "적당히 놀면서 자격증도 취득하고..." 와는 당연히 거리가 멀었다.


샤워하고 한숨 자고 느지막이 오후 세 시쯤 일어난 우리는 드디어 래시가드가 아닌 예쁜 원피스를 입고 밖으로 나섰다. 툭툭를 타고 아로나 해변에 가기 위해서였다. 수영장에서 고생한 시간들이 꿈처럼 느껴졌다. 아쉽지만 한편으로 너무나 후련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의 일정에는 편안하고 즐겁고 여유로운 관광만이 남아있었으니까.

3일 동안 먹고 잤던 다이빙 샵의 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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