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예지몽 꾸는 사람입니다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이런 이름의 인디가수가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10년 전쯤 그들의 음악을 즐겨 들었던 것 같은데, 곡의 제목이나 멤버들에 대한 기억은 까마득합니다. 당시에는 음악에 빠져서 살던 때라 매일 새로운 음악을 찾아들었기에 유명하지 않은 인디가수들도 많이 알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흔한 유행하는 가요 하나 찾아 듣는 일이 없는 라떼가 돼버렸네요.
아무튼 말이죠. 저는 꿈을 자주 꾸는 편입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꿈을 꾸는 것 같아요. 제가 꾸는 꿈 중에는 예지몽도 많습니다. 예지몽이라고 해서 지구의 종말이나 3차 대전의 서막에 관한 꿈같은 거창한 건 아니고요, 저의 앞날, 아주 가까운 미래를 내다볼 수 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대학 합격자 서류 발표가 나기 일주일 전에는 꿈에서 금반지 하나를 끼고 누군가에게 빼앗길까 봐 주먹을 꼭 쥔 채로 거리를 걸어 다녔어요. 그 꿈에서 깨고 난 후 저는 아, 서류 합격했겠구나. 하고 안심했죠. 또 한 번은 굉장히 나가고 싶었던 음악공모전이 있었는데, 공모전 본선 합격자 발표 3일 전 꿈에 제가 키우는 거북이가 등장했어요. 꿈에 저는 흰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거북이를 들고 어화둥둥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제 티셔츠에 변을 보는 겁니다. 근데 그 변의 양이 어마어마했어요. 그 작은 몸에서 멈추지 않고 펌핑하듯 계속 변을 뽑아대는 바람에 티셔츠 색이 점점 갈색으로 물드는데 거북이가 아무리 제가 들어서 옮기려고 해도 평소와는 다르게 납덩이처럼 무거워져서는 꿈쩍도 안 하고 변을 보는 겁니다. 그렇게 꿈에서 깨고 나서는 아, 아마도 그 공모전에 합격했겠구나. 그리고 거북이의 변의 양은 내가 공모전에서 받게 될 상금을 의미하는 거구나. 하고 알았지요.
최근엔 국가자격시험을 하나 치렀어요. 근데 1차 시험을 보기 3일 전쯤에 또 꿈을 꿨습니다. 꿈에 저는 아주 투명한 바닷물에 몸이 가득 잠겨있었어요. 그 물 색이 어찌나 투명한지 바닥까지 다 보일 정도였답니다. 바람은 시원하고 물 온도는 적당하고 찰랑찰랑 차오르는 그 물 위에 비치볼처럼 둥둥 떠서 유영하며 기분이 아주 좋았죠. 깨고 나서는 아마 난 이 시험에서 합격할 것이란 걸 알았어요. 역시나 1차 시험은 합격했고, 2차 시험 결과는 아직 나오진 않았습니다만 아마도 뭐... 큰 이변이 없는 한 합격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저의 꿈은 함축적이고 은유적입니다. 그리고 꿈속에서 저는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해요. 꿈은 제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꿈과 저의 현실이 연결되어 있음은 현실의 저만이 알고 있어요. 그래서 꿈속의 제가 꿈을 꾸는 그 순간은 저에게 낯선 누군가의 몸을 빌려 여행하는 것 같은 묘한 체험입니다.
예지몽을 제외한 나머지 꿈은 대부분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또 새로운 자격증을 하나 취득해볼까 싶어 이것저것 알아보다 잠이 들었어요. 근데 그 꿈에서 제가 어디를 찾아서 가려하는데, 그 길이 어딘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때 낯선 누군가 별안간 나타나 "이 길로 가면 됩니다."하고 알려줬어요. 생각보다 단순하고 쉬운 길이어서 곧장 나서려 했더니, 그 사람이 "근데 그 길, 좀 위험할 텐데..." 하고 사라져 버리는 겁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불안감을 그대로 보여주는 꿈이었던 거죠.
저는 꿈속에서 예지몽과 현실의 경험이 미묘하게 얽혀있는 것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지몽은 제게 미래의 방향을 알려주고, 그 외의 꿈들은 제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현실이 재미있고 의미 있을수록 꿈이 더 재미있어지겠죠.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꿈속에서 보는 장면들이 너무 좋아서 가끔 사진으로 찍고 싶은데 꿈에선 그럴 수가 없다는 겁니다. 심지어 꿈속의 저는 스마트폰도, 카메라의 존재도 알지 못할만큼 그 상황에 깊게 몰입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제야, 10년 전 즐겨 듣던 인디밴드의 이름의 의미를 이제야 알게 됐어요. 아. 이렇게 재미있는 경험을 잔뜩 할 줄 알았더라면,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