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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 토론

인사이트 라이터스 클럽 (1/3)

by Essaytowin


2009년 5월. 새로운 회원이 3명 더 들어왔다. 우리는 단편영화, 단편소설을 중심으로 모임을 가졌다. 시험이 끝나는 때에는 영화관이나 미술관도 함께 갔다.




2009년 겨울

내가 학생들과 함께 글쓰기 모임을 시작한 것은 2009년 겨울이었다. 나는 철학과 대학원을 수료한 상태였고, 논문은 다음 학기로 미룬 때였다. 결국 나는 논문을 마치지 못했고 졸업하지 못했다. 그때에 나는 지리산에 내려가서 일주일 동안 하는 성경강좌를 들었는데, 나에게 엄청난 자극이 되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목사님의 말씀에 감동이 되었다. 집으로 다시 올라와서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유익한 것으로 바꿀 수 있을지 꽤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교회에서 중등부 간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담당 목사님께 학생들에게 글 쓰는 것을 가르치고 싶다고 이야기를 드렸다. 목사님은 동아리 활동을 장려하고 있었던 터라, 내가 동아리를 하나 더 만들겠다고 하니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Insight Writers Club

내가 교회에서 만든 글쓰기 동아리 이름은 "Insight Writers Club"이었다(이하 IWC). 동아리의 이름은 두 가지에서 영감을 받아서 지었다. 영화 <프리 라이터스 다이어리>과 대학원 재학 시기에 종교철학 수업 때 배운 영성가 버나드 로너건의 저서 『Insight』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생각해 보면 이름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나는 글쓰기에 있어서 "프리Free"라는 형식을 좋아하지 않았고, 이름의 약자가 고급 시계 이름과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름을 짓고 나서 학생들에게 동의를 얻고, 부모님께 동의를 구하는 편지를 써서 드렸다. 그때 나는 엄청나게 뜨거운 상태였기 때문에 너무 많은 학생들이 내 동아리에 들어올까 봐 걱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내가 중등부 간사를 할 때에 학생의 숫자는 300여 명 정도였다. 그러나 동아리를 신청한 학생은 8명이었는데, 그것도 첫 모임을 하고 나서는 3명으로 줄었다. 내가 첫 모임을 가질 때에 철학적 해석학으로 강의를 했는데, 완전히 엉망이었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이유는 그 참혹한 시간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일 것이다. 내 첫 모임이 끝나고 나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리고 두 주 동안 동아리 활동을 쉬었다. 시작하자마자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나는 대학교 입학하고 나서 첫 학기가 지난 후부터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대학원에서도 전액 장학금을 받고 과정을 마쳤다. 그러니까 스스로 생각할 때, 철학에 뛰어났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그것이 뼛속 깊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아이들과의 수업에서도 당연히 잘할 것이라 믿었다.



첫 모임 - 폭망

첫 모임 시간에 마지막까지 동아리 활동을 했던(그러니까 동아리 모임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2년 정도 했던 것 같다. 나와 함께 시작했던 학생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모임을 정리하게 되었다) 학생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나의 자존감은 어둠의 심연 아래로,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나는 숨을 쉬는 것조차 스트레스받을 만큼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 짧은 시간에 나는 인간의 자존심이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며, 자신이 붙잡고 있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일 수 있는지 깨달았다. 40분 정도 함께 시간을 가지면서 수업을 했던 것 같은데, 지금도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나는 차라리 그 수업에서 죽는 것이 낫다고 여긴다. 그래서 내가 새로운 수업을 준비할 때에는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린다. 나는 언제나 실패할 수 있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나 스스로가 나를 누구보다도 심하게 망가뜨릴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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