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논술은 제시문을 해석하고, 해석한 내용을 답안지에 옮겨 적는 시험이다. 주어진 제시문을 활용해서 새로운 내용을 구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성주의 교육학적 접근은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이해에 대한 기본 특징들을 다루는 철학적 해석학은 제시문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
논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시험
내가 논술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학생들에게 시간을 아끼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기 위함이다. 내가 수업을 시작할 때에 논술이 어떤 시험인지 알려주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철학적 해석학에 근거해서 이야기를 하면 학생들은 거의 비슷하게 반응한다. 나는 논술 시험이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시험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앞으로 진행할 이야기는 약장수 같은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논술 시험은 어떻게 변했을까?
논술은 에세이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나의 글에서 여러 차례 이야기를 했다. 논술은 대한민국에만 있는 독특한 글쓰기 시험인데, 왜 이런 형태의 시험이 대학 입시의 한 영역을 차지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본고사가 없어지면서, 본고사를 대체하는 시험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논술 시험이 시행된 초기의 문제들은 정말 어려웠다. 자신의 생각을 써야 하는 시험 문제가 종종 있었는데, 대한민국의 교과과정에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에 대한 과목이나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과목이 없기 때문에(예를 들어, 철학) 그런 종류의 질문에는 대답을 하기가 곤란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럼 어떻게 될까? 결과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문제를 출제한 사람은 자신의 의도한 답안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의도한 답안을 기대할 수 없는 영역에서의 객관적인 채점은 어렵게 된다. 대한민국의 입시에서는 시험을 보고 시험 점수에 맞추어서 줄 세우기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는 시험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럼 앞으로 논술 시험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나도 잘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이제 논술 시험은 어느 정도 형식이 고정되는 시점에 진입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는 점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대부분 대학의 시험 형식이 매우 유사하다.
(유일하게 고려대에서 에세이의 형식을 강조했었는데, 고려대는 이제 논술 시험이 없다. 학생들은 대학마다 문제 형식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2. 제시문이 많다.
3. 문제가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논술 시험 형식에 대해서
제시문이 많다는 것은 시험을 보는 사람의 지식이 전무해서 지식을 확인하는 데에 특별히 기대할 것이 없음을 전제한다. 이 글을 읽는 학생들이 있다면 정말 미안하다. 그렇지만 마음에 손을 얹고 잠시만 생각해 보자. 고등학교까지 진학하면서 호메로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파네스, 소포클레스, 베르길리우스,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 단테, 밀턴, 보카치오, 또는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루터, 성경, 또는 공자, 맹자, 순자, 노자, 장자, 바가바드기타 등의 작가나 고전을 관심 있게 여기거나 또는 읽어보았는가? 그런 학생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런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대한민국 대학의 목적은 아니다. 공립 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은 사교육기관으로 영리를 추구한다. 0.01%의 학생을 선발하는 데에 관심을 두면 곤란하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논술 시험은 지식을 평가하는 시험이 될 수가 없다.
논술 문제의 이슈들
논술 시험의 평가는 제시문에 있는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만 한정한다. 그럼 어떤 내용들을 담고 있을까? 논술 시험에서는 사회적인 이슈만을 다룬다. 나는 이것이 대학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고 여긴다. 이탈리아에서 근대적인 모습을 갖춘 대학이 최초로 설립되는데, 이 대학을 설립한 사람들은 부유한 상공업자들이었다. 이 상공업자들이 원한 것은 더 나은 세상이었다. 더 합리적인 세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론적인 작업이 선행되어야 했다. 그 작업을 맡은 곳이 바로 대학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대학은 이탈리아 근대 대학의 전통을 잇는다. 그래서 사회적인 이슈를 논술 시험에서 다루고, 그런 문제들에 대한 감각이 있는 사람들이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란다. 대학은 우리가 처한 시점의 사회 문제를 구체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그리고 제시한 대안을 행동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을 요구한다. 그런 사람이 대학에 들어오길 대학에서는 바란다.
너무나도 이상적인 이야기를 했다. 암튼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논술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논술 시험의 준비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논술 시험을 준비하는 데에 사회적인 이슈와 관련된 배경지식을 강조하는 수업이 주를 이루는 이유는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원에서는 배경지식을 꾸준히 주입하는 준비 방법을 사용한다. 지식을 많이 알고 있고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 민감해지기를 원한다. 그런 감각을 갖추고 있으면 논술 문제의 접근이 용이해진다고 주장한다. 나도 이 부분에는 십분 공감한다. 적어도 논술 문제가 다루고 있는 영역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시문의 편집 의도 알아내기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제시문의 편집 의도를 알아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많은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시험에 나올 확률은 낮기 때문이다. 낮은 확률에 목숨을 거는 것은 위험하다. 게다가 내가 한 번이라도 봤었던 글이 시험에 나온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해하고 기억하고 있는 방향으로 제시문이 나올 확률은 더욱더 낮아진다. 낮은 확률 X 낮은 확률 = 극히 낮은 확률 + 시간 낭비.
문제를 출제한 사람에게는 원하는 답이 있다. 우리는 정해진 답안을 도출하는 작업을 시험이라고 부른다. 시험에는 모범 답안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답안을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더 우선된다. 대한민국 논술 시험의 역사에서 초반에는 중구난방 같은 답안이 무척 많았을 것인데, (이것은 순진한 나의 추측이다, 과학적인 가정도 아니다. 나와 처음으로 수업하는 학생들이 거의 대부분 자기 마음대로 답안을 작성하는 것을 미루어본다면.) 대학은 여러 해 동안 학생들의 답안을 채점을 하면서 시험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여긴 것 같다. 그 변화는 '문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논술 시험의 문제는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우리는 철학적 해석학에서 이해는 선입견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다머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근거로 삼아서, 말하는 존재의 현존재가 시간과 관련이 있고 존재는 세계-내-존재이기 때문에 이해에 대한 형이상학적 근거가 필요 없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이해는 전통의 전승과 관련이 있고, 이해는 선입견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논술 시험은 객관적인 평가를 해야 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강력한 선입견을 제공한다. 나의 선입견이 시험에 들어갈 수 있는 여지는 단 1%도 없다. 내가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논술 시험은 자기주장을 작성하는 시험이 아니다. 논술 시험은 제시문을 이해하고 해석한 것을 작성하는 시험이다. 가다머와 리쾨르의 논의를 통해서 해석은 자의적인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 두었다. 텍스트를 읽고 텍스트와 관련이 없는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해석이 아니다.
그렇다면 논술 시험에서 문제의 역할은?
다음의 것들을 알려준다.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주제와 관련된 부분
- 키워드
- 방향성 제시
- 답안의 범위 제한
- 논의해야 할 부분
- 강조해야 하는 부분
2. 글쓰기 형식과 관련된 부분
- 문단의 구성
- 답안 작성의 순서
- 답안 작성의 시작
- 답안 작성의 맺음
- 글자 수 제한
(성균관대와 일부 다른 대학에서는 글자 수 제한을 두지 않지만, 문제가 글자 수를 알려준다. 이 부분은 다음의 글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다음의 글에서는 철학적 해석학의 관점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에, 제시문을 이해하는 데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기출문제를 통해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