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대학의 입학처에서는 기출문제를 무료로 배포한다. 그러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승인을 받아야 한다. 나는 적합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문의를 하고 브런치에 글을 실어도 되는지 묻는 것이 맞지만 번거로운 일이다. 시간을 아끼는 방법으로 대학교 입학처의 링크를 걸어두겠다. 관심이 있는 분은 아래의 링크에서 기출문제를 다운로드하신 다음에 다음의 글을 함께 읽어가시면 좋겠다.
경희대학교 입학처에서 "인문체능계"를 받으시면 된다. 기출문제와 해설이 하나의 파일로 되어 있다. 그럼 잠시 기다리겠다.
다운로드를 받으셨는가?
그럼 진행하겠다.
경희대학교 문제를 선택한 이유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내가 수험생 때에 경희대에서 논술 시험을 보았지만, 그것과 연관은 없다. 굳이 이유를 만들자면,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문학이 나온다. 시가 나오는데, (시는 다른 대학의 문제에서 나오기도 한다.) 철학적 해석학의 기본 특징들 가운데 "해석학적 순환"이라는 특징으로 문학을 대할 때 생기는 어려움을 상당부분 덜어낼 수 있다. 이 부분을 드러낼 수 있어서 경희대학교 기출문제를 선택했다. 그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 같다.
모의논술고사를 다루지 않는 이유
가장 최근 문제는 2020년 모의논술고사 문제인데, 모의논술고사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가장 최근의 형식을 다루어야 가장 적합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의 경험상(경험이기 때문에 과학적이지 않을 수 있다. 엄밀한 근거보다는 느낌에 가까운) 모의논술고사는 그 해에 시행되는 시험에 도움을 주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약간의 변형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그 변형이 그 해에 반영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 같다.
문제를 출제해 본 경험이 있다면 바로 알 수 있는 영역인데, 출제자는 피시험자의 반응을 살피게 된다. 그 반응이 의도한 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살피는데, 모의고사 논술은 그 정도에서 의미를 갖는 것 같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모의고사 논술보다는 기출문제가 더 중요하다.
문제 분석
앞의 글에서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문제가 바로 선입견의 역할을 한다. 제시문을 읽기 전에는 반드시 문제를 보고 그 다음에 제시문을 읽어야 한다. 기출문제의 논제를 여기에 옮겨보겠다.
"[논제Ⅰ]
제시문 [가]와 [나]의 내용을 요약하고, 논지의 차이를 서술하시오. [601자 이상 ~ 700자 이하 : 배점 40점]
[논제Ⅱ]
제시문 [바]의 관점을 바탕으로, 제시문 [다], [라], [마]에 나타난 상황을 평가하시오.
[1,001자 이상 ~ 1,100자 이하 : 배점 60점]"
제시문은 5개이다. 제시문을 먼저 읽으면 안 된다. 제시문을 먼저 읽으면 자신의 선입견을 사용해서 텍스트를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금지된다.
[논제]를 보고 알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앞의 글에서 나는 문제가 주제와 관련된 부분과 글쓰기 형식과 관련된 부분을 확인시켜 준다고 말했다.
1. 주제와 관련된 부분
- 키워드
- 방향성 제시
- 답안의 범위 제한
- 논의해야 할 부분
- 강조해야 하는 부분
2. 글쓰기 형식과 관련된 부분
- 문단의 구성
- 답안 작성의 순서
- 답안 작성의 시작
- 답안 작성의 맺음
- 글자 수 제한
항목별로 분석하기 (1) - 주제와 관련된 부분
위에서 정리한 항목별로 논제를 분석해 보자.
키워드
2019년 경희대학교 기출문제에서는 키워드를 확인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대학에 따라서 제시문에 키워드를 넣어주어서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학교도 있다. 키워드가 제공되면 더 강력한 선입견이 생겨서 제시문을 이해하는 데에 확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방향성 제시
[논제Ⅰ]에서는 "내용을 요약하고, 논지의 차이를 서술"하라고 주문한다. 논술은 자신의 생각을 쓰는 시험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쓰라는 말이 아니다. 논지의 차이를 서술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모범답안을 확인하면 알게 되지만, 논지의 차이를 서술하는 것은 일종의 비교(또는 대조)를 보여주라는 것인데, 논술 시험에서 요구하는 비교는 A에 대해서 기술한 다음 B에 대해서 기술하는 것으로, 이렇게만 작성하면 모범답안과 가까운 답안이 완성된다.
답안의 범위 제한
우리는 아직 경희대학교 기출문제의 제시문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논제만 보더라도 제시문 [가]와 [나]는 서로 다른 입장의 논의를 담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학생들 가운데에 차이점을 기술하라는 말을 들으면,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A와 B에서 비슷한 점을 찾고, A와 B에서 다른 점을 찾고, A와 B는 어떻게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써야 하는지 묻는다. 시험 시간에 제한이 없고, 분량에도 제한이 없다면 그렇게 써도 된다. 그렇지만 그렇게 작성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논술 시험은 창의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평가하는 조선시대의 문과 시험과는 다른 시험이다. 논술 시험은 에세이와는 다른 시험이다.
논의해야 할 부분
[논제Ⅱ]에서는 "제시문 [바]의 관점을 바탕으로,"라는 문제를 볼 수 있다. '바탕으로'라는 말은 그것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뜻한다. 이점은 글쓰기 형식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답안지는 문단의 시작을 제시문 [바]로 해야 한다.
강조하는 부분
[논제Ⅱ]의 문장의 뒷부분은 "제시문 제시문 [다], [라], [마]에 나타난 상황을 평가하시오."이다. 상황을 평가해야 하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쓰면 안 된다. 논술 시험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뜻과는 조금 더 좁혀서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내가 말하는 일반적이라는 말은 70~80% 정도인 것 같다.) 이해되는 단어의 뜻과는 조금 다르게 이해하는 게 좋다. 그렇다면 어떻게 단어의 뜻을 좁혀서 받아 들여야 할까?
출제자의 입장에 서 보면
출제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보자. 조금이라도 이견이 제시될만한 단어가 시험 문제에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매우 곤란해진다. 왜냐하면 평가가 객관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여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논술 시험의 문제에서 사용되는 단어의 의미는 내가 여러 차례 강조한 방향, '자신의 생각을 담지 않는 방향'으로 수용해야 한다. 이것은 논술 시험의 전제와도 맞닿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담지 않고 평가를 한다는 것은, 제시문의 있는 내용을 풀어서 쓰라는 말과 같다. 강조하는 부분이 제시문 [바]이기 때문에 평가는 제시문 [바]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논술 시험의 문제에서 나오는 단어와 문장 부호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의미는 글쓰기 형식으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항목별로 분석하기 (2) - 글쓰기 형식과 관련된 부분
글쓰기 형식은 매우 중요하다. 글쓰기 형식이 제시되는 이점은 여러 가지이다. 그것은 시험을 보는 학생이 원하는 글을 작성하지 못하게 하고 출제자가 원하는 글을 작성하는 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문단의 구성
[논제Ⅰ]는 두 개의 문장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쉼표로 연결해 놓았다. 쉼표는 생김이 마침표와 닮았다. (마침표를 포함하고 있는 모양이다.) 쉼표는 마침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하면, 쉼표는 [논제Ⅰ]에서 주문하는 내용이 두 가지임을 확인시킨다. 이것은 두 개의 문단으로 답안을 작성하라는 주문이다.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보편적으로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보편은 100%를 의미) 피시험자는 글자 수를 염두에 두고 답안을 작성해야 하는데, 논술 시험에서는 일반적으로 400자 내외를 한 문단으로 작성한다. 이것도 역시 경험적으로 알게 된 점인데, 보편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논제Ⅱ]에서 사용된 쉼표의 역할도 동일하다. 답안 작성은 4개 문단으로 구성해야 한다.
답안 작성의 순서
자신이 이해하고 정리한 논리적인 순서에 따르지 않는다. 답안 작성의 순서는 오직 논제에서 서술한 순서를 따른다. 다른 순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시험을 보는 사람이 채점자의 역할을 담당한다고 가정해 보자. 수십 명에서 백 명이 넘는 답안지를 채점해야 하는데, 순서에 맞지 않는 답안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점수를 주고 싶겠는가?
답안 작성의 시작
답안 작성의 시작은 "답안 작성의 순서"에 따른다. [논제Ⅰ]에서는 "제시문 [가]와 [나]의"라는 주어로 문제를 시작하고, [논제Ⅱ]에서는 "제시문 [바]의"라는 관형구로 시작한다. 답안 작성은 문제에서 제시한 것으로 시작하면 된다.
답안 작성의 맺음
글쓰기 형식에 맞추어서 진행한다. [논제Ⅰ]은 "서술하시오."로 문제를 맺고 있고, [논제Ⅱ]는 "평가하시오."로 문제를 맺고 있다. 마지막 문단의 마지막 문장에서 사용해야 하는 서술어는 논제에서 제시한 것을 따르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글자 수 제한
시험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글자 수도 제한된다. 한 시간에 작성할 수 있는 분량은 대략 600-800자 사이이다. 작성하는 시간이 그렇다는 뜻이 아니고, 제시문을 이해하고 답안지에 옮겨 적는 시간을 포함한 시간이다. 그래서 1,600자 이상 작성하는 시험의 경우 시험 시간은 2시간이다. 그 이하는 90분이 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10%로 분량을 조절하면 된다. 글의 분량은 대학교 답안지 형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말 그럴까?
위에서 내가 이야기한 부분을 보면, 내가 꼭 모범 답안을 보고 답안에 맞추어서 문제를 분석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그렇다. 그리고 이 훈련이 반복되면 실제로 모범 답안을 보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모범 답안을 보고 분석을 한 것이나, 분석을 하고 모범 답안을 본 것이나 똑같다. 모범 답안을 보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글을 쓰기 전에 나도 모범 답안을 몇 차례 보았다. 그리고 여러 차례 수업을 진행하면서 더욱 명확해지는 것을 확인하였다. 우리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지름길로 가야 한다. 지름길을 이용하는 방법은 요행을 바라는 마음과는 다르다.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면 순서가 다르니까 다른 방법을 사용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경험적으로 말하면 순서가 바뀌었어도 똑같다. 학생들은 시험을 보고 나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준다.
"시간이 엄청나게 남았어요. 이게 말로만 듣던 이상윤 효과예요?"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방식으로 말을 바꾸면,
"시간에 쫓기지 않았어요. 철학적 해석학이 제시문의 정확한 이해를 도와주었어요."
철학적 해석학은 텍스트의 이해를 돕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제시문을 접근할 수 있게 돕는다.
다음 글에서는 제시문을 분석하는 구조주의적 방법과 철학적 해석학을 사용해서, 제시문을 이해하는 과정에 대해서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