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강퍅한 마음 vs 겸손한 마음
강퍅하다 剛愎하다
adj 성격이 까다롭고 고집이 세다.
Synonym 괴팍하다 까다롭다 완고하다
문맥상 '강렬한, 심한, 거친' 정도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Standard Korean Dict.
성경에 '강퍅하다'라는 표현이 곧잘 등장한다.
국어사전에서 그 의미를 처음 찾아보았다.
까다롭다거나 고집이 세다는 표현은, 경우와
뉘앙스에 따라 긍정적으로 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절대 선'인 하나님 앞에서 강퍅할 땐
어떤 의미로도 '죄'에 밖에 해당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왜 강퍅한가.
교만하기 때문이다.
강퍅한 마음은 교만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겸손하면 절대로 강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만은 인간의 '원죄'를 발생시킨 뿌리였다.
절대신에 대한 마귀의 반역도 그 교만이었다.
거만한 마음은 눈가리개의 역할을 한다.
눈이 멀었으므로 위험을 감지할 수 없다.
마귀가 세워둔 칼날을, 눈 뜨고 본 사람이
눈가리개를 한 이에게 "멈추라" 권하여도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짜증날 뿐이다.
영적인 교만이 깊어질수록 문둥병과 같아서
손가락이 부러지고 발이 으스러져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 신은 가장 기초적이고 필요한 것들 중
눈에 보이지 않거나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창조하였을까.
공기, 빛, 어두움, 바람, 소리 그리고
사람의 마음과 같은 것들 말이다.
당신이 없다고 해도 그것은 있고
당신이 무시해도 그것은 작용한다.
영혼 뿐 아닌 육의 세계에서도
중요한 것일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다.
피부보다는 내장과 혈관이 더 중요하나
그것이 평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을 때 전자기장이
어떤 수치로 튀며 장기와 적혈구, 두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실체를 본다면
폰을 쥐는 것이 소름돋게 되고 통신사 또는
제조사에 대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에
관심을 가지며 그에 좌지우지 당하고 산다.
미국이나 유럽의 소수 고위층 공무원이나
과학자들이 아무리 외쳐도 깨닫지 못하므로
군사무기이던 5G 도입에 박수만 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도
미디어를 통해 보고 들은 반복학습에 반드시
성과를 낸다. 당신은 코로나를 눈으로 한 번도
본 적은 없으나 그것이 있다고 믿지 않는가.
안타깝게도 훨씬 중요한 것들은 미디어에서
친절히 알려주지 않는다. 그것이 이 세상이다.
세력에게 개미가 중요하지 않듯이 말이다.
진실은 언제나 소수의견이었고
대개 권력에 의해 묵살당해 왔다.
병들어가는지 모르고 죽어가는지 모르는
영적인 문둥병도 이와 같다.
응급차에 신호를 지키라 호통치지 않으려면
겸손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
우리 중 이 땅에 영원히 살 사람도 없고
우리 중 누구도 죄 하나 없는 이 없다.
부드러운 마음은 겸손함에서 비롯된다.
영의 눈을 떴다면 떴기에 겸손해야 하고
뜨지 못했다면 못 떴기에 겸손해야 한다.
나의 강퍅한 마음이 화살이 되어
상대의 부드러운 마음을 찌르면 안 된다.
화살은 급한 기도에 사용할 수 있는
적군인 마귀에게만 쏘는 도구여야 한다.
오직 오늘이라 불리는 때에 서로 날마다
권면하여 너희 가운데 아무도 죄의 속임수를
통해 강퍅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하라.
Hebrews 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