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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Jul 19. 2024

나는 차별한다

차별은 본래 자연스러운 법

대체로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렇지 않은 편에 속하거든.

(갑자기 반말해서 미안하다. 원래 그랬나?)


그러나 나의 스타일을 바꿀 생각은 없다.

이것은 옳고 그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니

다르건 비슷하건 서로를 존중하면 되겠다.



질문을 하나 해 보자


당신이 항공권으로 500만원을 지불했고

당신 친구는 같은 항공편 120만원을 냈다.

둘이 나란히 이코노미석에 타면 평등할까?

500만원은 비즈니스, 120만원은 이코노미

탑승해야 평등하다고 생각되는가?


뭐 이런 질문을 하냐고? 죄송하다.


묻는 김에 하나만 더 묻겠다.


우리엄마 생신과 친구 엄마 생신이 같다.

나는 공평하게 같은 선물을 2개 준비할까?


그럴 리 없다.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정말.. (다른 의미로) 대단하다 볼 것이다.



차별의 의미


차별은 경우에 따라 필요하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작용될 수도 있는 요소라는 점.

이것을 짚어보고 싶을 뿐이다.


나는 10대부터 본능적으로,

우유부단한 남자를 이성으로는 꺼려했다.

이유는 이러했다.


'마음이 약하고 모두에게 친절한 남자 속은

알 수도, 알고 싶지도 않아. 그 남자가 본래

천성이 너무 착해서 나한테도 잘해주고 저

여자에게도 똑같이 잘해주면 과연 좋을까?'


물론 모든 것에 장단점이 있음을 인정하기에

그런 타입의 장점도 반드시 있는 것은 알지만

내게 괜찮은 경계선은 '친구로 최고다' 였다.


그들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남에게 상처를

여간해서 잘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위대한 장점일 것이다. 칭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혹 상처를 줄지언정

솔직하고, 차별할 줄 아는 사람이 더 편했다.

나의 본능, 내면에도 그런 면이 있던 것이다.



나는 사람을 차별한다


정말 인생의 친구라고 생각하는 소수가 있다.

그들은 나에게 다른 사람과 차원이 다르다.


저마다 추구하거나 허용하는 선이 제각기이듯

나에게는 그중 하나가 '늦은 밤에 연락하는 것'

에 대한 척도였다. 밤 늦게 연락이 오면 예의가

없어 불쾌했다. 심지어 문자에 일부러 당일에는

답을 보내지 않았다. 마치 문 닫은 상점처럼.


그러나 내 절친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새벽 3시에 ㅁㅊ놈처럼 전화한 베프가 있었다.

급한 일이었냐고? 아니, 그냥 취해서 한 것 같다.

그러나 전혀 화나지 않았고, 예의가 어쩌고 하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당연하다. 그들은 예외다.


나는 원래 결혼 외의 남녀의 성관계를, 이 시대와

달리 성경의 기준에서 '죄'로 구분함에 동의하며,

불륜은 물론 동성애 역시 성경의 뜻에 동의한다.

(성경은 혼외성관계, 불륜, 동성애 모두 죄라 함)

이 글을 읽고 혹 노할 이 있다면 미리 사죄드린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이 사안에 대한 각자

의견을 웹에 적을 자유가 다행히도 아직 남아있고,

다른 의견을 가진 이를 '존중'하는 것은 변함 없다.


아무튼 나 자신에 있어서는 혼전 성관계와 동성애

모두 무섭게 쳐내고 경계할법한 테마인데, 실제로

내 가까이에 그 둘의 경우가 다수 있었고, 그들이

나에게 자백 또는 고백했을 때 친구들에 대한 나의

마음이나 태도가 바뀌지 않았다. 그 역시 차별이다.

그 자체는 내가 싫어하나, 내 친구이니 나의 태도가

'예외'로 넘어가버린 것. 소중함에는 변함이 없기에.


당연하지!


최근 자꾸 마음에 한 친구가 떠올랐다.

하나님이 자꾸, '뭐라도 메시지를 보내 봐' 하시는

둘 중 한 명이어서, 미루고 미루다, 딱히 할 말까진

없어, 어울릴 만한 성경구절을 하나 보내었다.


읽고도 답이 없길래, 그런가 보다 하고 지냈는데

아까 메시지가 왔다.

쏘냐! (내 노어 이름이다. 상대가 러시아인)
답이 늦어져서 정말 미안해!
성경말씀 고마워!! 잘 지내?


여기까진 예상한 반응이지만 하나가 더 있었다.

혹시 요즘 많이 바빠..?


이런 걸 왜 묻지? 이유 없이 물어볼 애가 아닌데..


알고보니, 자기가 짓게 된 찬양 멜로디가 있는데

타인의 도움으로 악보화는 했지만 종이에 쓴 것이라

혹시 사보하여 파일로 보내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만일 이 사람이 나의 인생의 친구가 아니었다면,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걸 하지 않아"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차별한다.

당연하지! 이메일로 보내 봐. 아님 여기로 직접.
이야, 대단하네! 작곡가네! ㅎㅎ
곡이 거의 20개 정도 되...
그런데 아직 가사를 다 못 썼어.


미친 거 아니야? 20개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차별한다.

20개를 썼다고? 대단하다!
네가 악보만 원하면 바로 만들어 보내줄 수
있고, 가사도 입력된 악보를 원하면 다 짓고
이메일로 압축해서 보내줘. 20개니까.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줄게.


나는 좋은 사람일까?

그렇다. 그녀에게는 말이다.


그러면 나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까?

아니다. 절대 아닐 것이다.


좋은 것 같아요
그런 거 저는 좋은 것 같아요.


이 말을, 소위, 모두에게 친절한 타입의 친구로부터

들은 적 있다. 그 남자애는 마음이 참 몽글몽글해서

한때 내 인생의 친구에 들어올래? 내가 물어봤더니

좋아요! 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뭐랄까, 이 세상에

장점만도 없고 단점만도 없다고, 좋고싫음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것이 그 애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나는 잘 하는 사람한테만 잘 해.
모두에게 잘해주지 않아. 그럴 겨를이 없어.
1대 1로 대할 때 깊이 들어가기 때문에, 한 명에
쏟는 에너지가 너무 많아서, 소수로도 충분하고,
상대가 너무 많으면 감당 못 해 나는.
두루두루 많은 사람과 잘 지내는 사람도 있지만
나한테는 그렇게 많은 사람은 별로 필요 없어.
뭐, 다 다른거지.
좋은 것 같아요. 그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어쩌면, 그렇게 말한 그 친구의 마음 속에는,

그간 다수에게 친절한 사람으로 살아오며 겪었을

말 못할 고충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여러 친구를 두는 자는 반드시
자신을 다정한 자로 보여야 하나니
형제보다 더 친밀한 친구도 있느니라
Proverbs 18:24


긍정적 차별


엄밀히 구분해 보면

내가 하는 차별은 그렇게 나쁜 차별이 아닐 수 있다.


다수에게 불친절하고 소수에게 친절하겠다 가 아닌,

다수에게 보통이고, 소수에게만 특별하겠다 이니까.


결혼한 남자가 자신의 아내와 가족에게 가장 잘 하고

남의 아내와 가족에게는 그보다는 못 해도 되지 않나.

똑같이 잘 하면 좀 이상하고, 더 잘 하면 의심이 된다.

물론 여자도 마찬가지.


차별 좀 해도 괜찮다.

물론, 일부러 억지로 할 것은 없지만 말이다.

그냥 나에 대한, '일종의 합리화' 정도로 여겨도 좋다.


그러고 보니, 국회에 끊임없이 올라오는 법안 중 하나

바로 '차별금지법'인데 자세한 내용은 적지 않겠으나,

'그 법안이 왜 모순되고 왜곡되며 위험한지' 조목조목

나열하며 알려주는 내용을 쫙 보면, 그 국회의원들이

장점보다 치명적 단점이 난무하는 법에 저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비극과, 무관심한 다수를 이용해 결국에

성사시킬 것까지 보여 한편 참 씁쓸하고 안타깝달까.

차별금지법 이름은 그럴싸하나 역시 탈탈 털어봐야..




칼이 목적에 따라 전혀 다른 도구가 되고

소중한 이에게 요리를 만들어 줄 수 있듯


차별이 적절하게 쓰인다면 누군가를

북돋아주고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다.


비행기 업그레이드 받아 일등석 탄다 생각해 보라.

차별 받아서 기분 좋을 확률 100%. 그게 사람이다.


차별은 본래 나쁜 것이 아니다.

내가 잘 사용하면 된다.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은 여전히 대단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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