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중심법칙
가우스 법칙, 만유인력의 법칙, 보편 법칙 등
여러 법칙이 있지만 그중 어쩌면 가장 와닿는
법칙은 바로 [자기중심 법칙]일는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이 자기중심적이지만
아기만큼 자기중심적인 인물이 또 있을까.
생각하는 방식과 기준들이 아기 같은 사람은
'악의 없이'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한다.
모든 것이 오직 자기중심으로만 돌아가기에
모든 문제는 주관식이며 본인만이 정답이다.
나는 아기나 아이를 좋아한다.
아기가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것은 정상이다.
배고프면 울고 불편해도 우는 아기의 행동은
아기다운 것일 뿐 고쳐야 할 행동일 리 없다.
아직 말 못 하고 걷지 못하는 아기가 아무래도
부모님께 송구하여, 몸을 굴려서라도 이동해
분유도 타고, 본인 기저귀도 갈며 배려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변이며 아기답지 않은 것이다.
아기에게는 전쟁이나 파산보다 굶는 게 무섭다.
수능 하루 전날이라도 아기는 긴장하지 않으며
계엄령이 발동해도 아기는 눈 깜짝하지 않는다.
전쟁, 파산, 수능, 계엄은 중대한 일에 속하지만
아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설득 아닌 보호를 한다.
선물을 받아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잘못을 저질러도 "죄송합니다" 사과하지 않는
이 모든 것은 오직 말 못 하는 아기에게만 친히
허용되는 '아기다움'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어른이란 무엇인가. 아니, 몇 살 때부터
'성인'이라 정해야 사회에 논란이 없어질 건가.
백 세 시대이니 백 번 양보해서 30대 이상이면
아기는 아니다. 확실히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본인의 정신과 사고기준에 대한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귀속되는 것이다. 아니한가.
본인이 어릴 때 어떤 삶을 살았고 무슨 상처가
많고 이런 것은 안타깝게도 사회에서 대접받고
해결받을 사안이 아니다. 모두에게 아픔은 있다.
우리는 그것을 딛고 상대를 존중하며 살고 있다.
그러므로 고마운 일에 "고맙습니다" 하지 않고
잘못한 일에 "죄송합니다" 하지 않는 인물들은,
올바른 유아에 못 미치는 '아기 같은' 사람이다.
감사와 사과의 표현은, 눈빛이나 마음뿐 아니라
'말 한마디', '글 한 줄'에서 표현되는 행위이다.
사람이 아무리 속으로 고맙다고 생각했다 한들,
절대 입 밖으로 말을 하지 않았다면 갓난아기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여쭤본다. 무엇이 다른가?
사과는 더 중요하다. 깨닫지 못하는 건 둘째이고
알게 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택하는
합리화, 어쩌면 울어 젖히는 아기만도 못한 행위.
실수로 남의 옷에 커피를 쏟아놓고 마음속 깊이
미안함을 느꼈다면 그것이 '진실함'이 되는가?
이에 동의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궁금해진다.
갓난아기가 아니라면 커피를 쏟은 이는 고의든
실수였든 사과를 하는 것이 '정상적인' 행동이다.
고의는 아니라 하니 연장자인 당신이 이해해줘라
라고 한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1살로 돌아가보자.
1살이라면 지금 원하는 그 '이해'를 받을 수 있다.
나이 들었으면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감사와 사과 같은 기본적 책임조차 회피하겠다면
적어도 누구에게든 섭섭한 것이 없어야 정당하다.
이미 비교적 높은 비율의 민폐도 끼쳐왔을 것이고.
왜냐고 묻는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떠나자.
다시 태어나보도록 하자.
아기를 계몽시키려 설명하는 행위는 넌센스이다.
그러므로 아기같은 사람을 설득하기는 불가하다.
차라리 아기는 키우면서 가르칠 기회가 있지만
'아기를 낳은 아기'는 결코 배우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당신을 가르치려 들것이다. 경험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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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어떤 게시물에도 '좋아요'를 언급한 적이
없지만 왜 자연스럽게 적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공감한 사람들끼리 위로가 되었으면 해서이다.
아, 혼자가 아니구나,
계몽도 설득도 어렵겠지만 다들 그 속에서 나름
견디어 내고 있구나, 힘내고 있구나, 하시라고..
또 반대로 뒤집어서,
내가 누군가에게 혹 어떤 순간에 그 '아기짓'을
하지는 않았는지 자신도 경계하고 돌아보자고..
한분이라도 공감했다면 오늘 나에게는 충분히
위로가 되었으므로 감사가 늘었다. 좋은 오후.
비웃는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염려하노라. 지혜로운 자를 꾸짖으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Proverbs 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