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
-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
- 뭔데요?
- 너는, 스트레스를 어떤 걸로 풀어?
- 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뭘 하는지. 그러나 대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 손 가는 대로 피아노 치며 노래하거나.. 글을 써요. 생각해 보니 글 적으면서도 스트레스 푸는 것 같아요. 둘 다 손으로 하는 거네요.
언젠가 독일에 살던 지인이 물어온 덕분에 알게 되었던 내 '스트레스 풀기용' 글쓰기.
오픈형인 것 같으면서도 매우 프라이버시를 추구하는 터라 브런치에 일기를 적기엔 한편 리스크가 있지만, 이제 모르겠다. 어차피 나를 아는 사람은 구독자 중 아마 거의 없고, 나를 가장 잘 알던 우리 엄마는 구독자 명단에 남아있지만 이 세상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고, 내 글을 모르기 바라는 대상들은 내가 글 쓰는 줄도 모르니. 한마디로, 괜찮을 법하지 않은가.
안 괜찮으면 또 어쩔 건가.
어차피 지금까지 '그러거나 말거나' 결국 써 왔으면서.
나는 원래 마른 체질에 속해서 종일 먹어도 살이 좀처럼 붙지 않았다. 특히 허리가 가늘고 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배 나온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았다.(미안하다)
살찌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먹는 것은 좋아하는데 어느 정도냐면, 내 신앙심이 아무리 목숨을 바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한들, 어이없게도 '금식'은 절대 못 하는 인간으로, 1일도 아니고 '한 끼' 금식도 엄두를 못 내는 사람이었다. 끼니와 끼니 사이에 하는 생각은 '무엇을 먹을까'와 같은 생각이며, 추구하는 것은 건강식이지만 먹는 게 다 건강식일 리는 없었다. 하여간 고든램지 또는 안성재 채널 구독은 당연한 것이고, 한동안 요리 서바이벌 채널에만 푹 빠져 있었다. 매우 기뻐하면서 보는 타입... 배달 음식을 고를 때에도 너무 신중을 가해 오래 걸려 나를 보시던 엄마가 "아직도 고르고 있냐, 바로 시켰으면 벌써 배달 와서 이미 먹고 있겠다!"라고 할 정도였으며, 그깟 배달 앱 리뷰조차 종종 혼자 세상 진지하게 장문을 적기도. 오죽하면 빵집 사장님이 내 아이디를 외울까...
그러던 내가 어머니를 위해 끼니 금식을 시도, 실패를 반복하던 중, 8월 19일 오전, 엄마의 '간암 말기' 판정을 들은 날부터 '음식을 씹지 않는 금식'으로 마시기만 하며 8월 27일까지 엄마 곁에서 신께 매달렸다.
엄마도 먹지 못했다. 엄마가 먹지 못하는데 내가 먹을 수 없었다. 먹으면 인간도 아니라고 생각됐다.
그동안 엄마가 해 준 음식을 평생 그토록 '처먹었으면서' 한 달 금식을 못 채운다면 어떻게 엄마를 사랑한다 할 수 있겠나 생각했다. 그 생각을, 처음 신이 나에게 요청한 3여 년 전에 이행했다면 참 좋았을 것이다.
28일에는 음식을 먹었다.
장례식장 밥이었다.
어머니는 생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금식기도 중 우리에게 밥을 차려주셨으므로, 금식 이후 위장을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들어 잘 알고 있었으나, 내 위장까지 정성 들여 관리할 여력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폭식했다. 장례식장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밥과 떡, 마른안주, 과일을 그냥 먹자, 사흘 내내 와 주던 한 친구가 나에게 일본 소화제를 여러 개 건네고 갔다. 금식 중에 살이 많이 빠진 것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 있었는데(코로나 이후 배달음식과 밀가루과다, 운동부족으로 사이즈가 달라져서, 물론 비만은 아니더라도 원래의 말랐던 내 모습이 이미 사라져 있었기 때문. 내 인생에서는 가장 살찐 시기가 코로나 이후부터 얼마 전까지), 장례식장에서부터 오늘까지 미친ㄴ처럼 먹자, 일단 소화가 안 되고, 몸이 힘들어하면서 불어나는 느낌, 아니 실제인 듯하다.
잘 찌지도 빠지지도 않고 늘 그대로이던 체질이
이 정도 몸이 달라지려면 거의 폭력 수준으로 해야.
내 몸에 욕을 하는 기분.
실제로 자신에게 쌍욕을 하고 싶었다.
아무도 나에게 욕을 하지 않았으므로 스스로 했다.
그러다 못 견디면 걸었다. 결국 찌는 게 싫으니까.
폭식을 해도 한계에 다다르면 견딜 수 없는 것일 테다.
꼴을 볼 수 없음에도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게 된 나를 보았다. 전에도 그런 면은 있었지만, 한국에 온 뒤 훨씬 심해진 것 아닐까. 혹은 요새 더 그런 것인가.
성경 속 성령의 열매 중 마지막 열매는 '절제'이다.
엄마는 3주 전까지도 나에게,
"음식을 좋은 걸 먹고, 꼭 건강을 신경 써.
엄마 부탁이야. 알았지?"라고 하셨다.
그러니 좋은 것을 먹고
나를 너무 욕하지 말고
엄마를 건강하게 애도하자.
예전처럼 피아노 치며 노래 부르기 어렵다면
지금처럼 무작정 적어 내려가기라도 해 보자.
이제 절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