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여행
경우에 따라 에어비엔비나 아파트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보통 여행지에서 3성급 정도 호텔에 묵는다. 한정된 예산에서 내가 최우선으로 선호하는 호텔은 창문이 큰 방! 물론 깨끗한 건 기본이고 방 크기도 클수록 좋지만 큰 창문이 있고 조명이 밝은 호텔이면 우선 찜해둔다(상황에 따라서는 위치도 매우 중요하지만). 오랜 시간 간헐적 여행자로 살아온 덕분에 숙소 고르는 눈은 꽤 발달했다고 자부한다. 호치민의 호텔도 좋았지만 지금 묵고 있는 달랏의 호텔은 찐으로 맘에 든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됐는지 번쩍거릴 정도로 깨끗할 뿐 아니라 서양풍과 동양풍이 묘하게 섞인 인테리어가 세련됐고 무엇보다 방에 천정에서 바닥까지 이어지는 큰 프랑스식 창문이 있다! 2층 방에서 창문을 열어놓으니 거리의 소음이 적당히 들려와서 여행지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소음에 예민한 사람은 시끄럽다고 느낄 수도). 방 크기도 28m2로 만족스럽다.
이 호텔에는 4개 층에 객실들이 있다. 슬쩍 보니 층마다 컨셉이 달라서 다른 층들도 구경했다. 옥상에는 특이하게도 온실 같은 것이 있었다.
로비 공간도 근사하다. 식당이 없는 게 특이하다면 특이한데 식당이 있어야 할 것 같은 자리도 휴게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어제 도착했을 때 웰컴티로 따뜻한 대추차가 나와서 소파에 앉아서 마셨다. 살짝 쌀쌀한 날씨에 반가운 서비스였다.
이 호텔의 유일한 단점은 뜨거운 물이 중앙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각 객실에 딸린 순간온수기에서 나온다는 것. 목욕을 마칠 때까지 온수 온도를 유지하려면 물을 너무 강하게 틀지 않아야 한다. 사실 이건 작지 않은 단점인데 다른 부분이 워낙 맘에 들어서 눈감아주기로 했다.
- 처음 앱에서 숙소를 찾을 때 달랏에 에어컨이 있다는 호텔이 없어서 의아했다. 여행 후기들을 보니 에어컨이 필요 없다고 한다. 실제로 와보니 과연 그 말이 맞았다. 실링팬으로 충분하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분다. 달랏은 정말 축복받은 기후를 가졌다.
추천하고 싶은 식당을 오늘 발견했다. 뜻밖에도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핑크 성당(Domaine de Marie) 구경을 하고 나서 저녁 먹을 곳이 마땅찮아서(여긴 구글맵 업데이트가 잘 안 되어 있는 듯… 식당을 골라서 가보면 없어졌거나 문 닫은 곳이 많았다) 헤매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들어간 곳. 한적한 골목에 있어서 아는 사람만 알 것 같은 식당이었다.작은 정원과 아기자기한 건물이 예뻤고 무엇보다 맛이 감동적이었다!
특히 라구 소스 파스타는 최근 몇 년 동안 먹은 이탈리안 음식 중에서 최고 수준. 진하고 고소한 소스와 적당히 탱탱한 면이 입에 착착 감겼다. 파머산 치즈를 넣은 닭가슴살 구이도 파스타만큼은 아니었지만좋았다. 닭가슴살을 맛있게 요리하기가 어렵지 않나(치킨이라고만 돼 있어서 모르고 시킴). 쫄깃한 풍미가 있었고 살짝 새콤한 소스가 잘 어울렸다. 식전빵도 고소하고 쫀득했고. 이 두 음식과 물 한 병이 한국돈 2만 8천원이라니. 달랏에서 한달살기 하겠다는 사람들이 나오는 이유를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