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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hoes Jan 21. 2024

구조와 도약

쌩초보의 피아노 연습

시간당 돈을 내는 연습실을 이용하다보니 실제 피아노를 치는  말고 다른 일에 간을 할애할 없다. 하지만 낮은음자리 음계를  잊어버려서 (물론 높은음자리도 옥타브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면 순간 헤매지만) 악보를 바로 보고   없으니 이거 외우는 연습을 따로 해야 한다. 오선지를 프린트해서 음표를 써놓고 계이름을 맞추는 연습을 한다. 연습실에서는 (편법이지만) 악보 없이 왼손 계이름만 따로 적어서 보고 쳐본다. 이렇게 해서라도 손에 익으면 대망의(?) 양손연주를 시작할  있겠지.  지금  수준은 오른손 따로 왼손 따로, 오른손만 겨우 끝까지   있는 단계입니다. 그것도 중간에 복잡한 부분은 헤매가면서. 양손 연주는 아직은 아주 느리게  마디밖에 못한다.


왼손이 특히 어렵다. 옥타브를 넘나들고 손가락을 두 개 세 개 한꺼번에 눌러야하는데 이것도 약간씩 달라지기 때문에 헷갈린다. 플랫으로 내리라던가 샵으로 올리라던가 플랫을 해제하라던가 하는 임시 표기도 많고. 오죽하면 내가 T에게 쇼팽은 왜 이 GR을 하냐고 했을 정도. 근데 이 GR 덕분에 너무나 섬세한 차이들이 만들어지니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유튜브 채널에서 바로 이 곡(야상곡 9-2번)을 다루던데 선생님이 이렇게 말해서 위안이 좀 되었다. 그래 내가 바보라서 못하는 건 아니었어… ㅎㅎ



곡이 어떤가를 떠나서 태어나서 한 번도 쇼팽을 쳐본 적이 없으니 어려운 게 당연하다. 소나티네에서 쇼팽으로 급 상승했고 긴긴 세월 동안 공백이 있었으니. 저 ‘도약’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왼손이 옥타브를 넘나들면서 건반 위를 날아야(?)하는데 이분은 이걸 도약이라고 표현한다. 그래 난 소나티네에서 쇼팽으로 도약하려고 애쓴다. 지금은 준비운동이지만 언젠가 도약할 수 있겠지.


왼손이 하도 복잡해서 규칙을 찾아보자 싶어서 한 데 묶여있는 8분 음표 3개의 첫 음(베이스라고 한다는 걸 알았다)의 계이름만 따서 적어보았다. 오 규칙이 보인다 보여! 그런데 와중에 조금씩 달라진다. 물론 베이스만 적은 거고 두 번째 세 번째 음의 조합도 계속 미묘하게 달라진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중심을 잡는 구조의 견고함과 도약의 탄력성. 구조 속의 도약 혹은 도약하는 구조. 쇼팽은, 아니 모든 작곡가는 곡을 쓸 때 저 수학공식 같은 구조와 그 속의 변이형들을 일일이 머리로 생각하면서 쓰는 걸까? 아니면 그냥 술술 흘러나오는걸까? 저 구조를 보면 무의식적으로 그냥 적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의식적 행위라는 것이 계산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해도, 저건 분명히 의식의 산물이다. 그런데 결과로 나오는 곡은 마치 자연의 창조물인 것처럼 솔기 하나 없이 물 흐르듯 들린다. 이것이 음악의 비밀일까? 원인과 결과 사이에 놓인 이 엄청난 간극이. (모든 예술이 이런 건 아니지. 특히 미술은 이렇지 않다) 물론 여기에는 훌륭한 연주자들이 필요하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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