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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hoes Jan 04. 2021

마법의 땅 뉴멕시코

미국여행



산타페의 조지아 오키프 미술관 옆에 있는 한 갤러리에서 더글러스 켄트 홀(Douglas Kent Hall)이 촬영한 짐 모리슨의 이 사진을 보았다. 오키프의 작품이 뉴멕시코의 자연과 어느 정도 밀접한지를 실감하면서, 그래서 짐 모리슨도 뉴멕시코 이야기를 그렇게 자주 했나, 라고 중얼거렸던 참이라 이 만남이 무척 반가웠다.


짐 모리슨은 플로리다에서 태어났고 파리에서 사망했지만, 뉴멕시코는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었다. 모리슨이 노래, 시, 인터뷰 등에서 되풀이해서 언급했던 인디언 가족의 죽음이 뉴멕시코의 한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사건이었기에. 모리슨은 뉴멕시코에서 산 적도 있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면서 살았는데, 그중의 한 곳이 앨버커키였다고 한다.



뉴멕시코의 자연은 황량하면서도 극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 드넓은 하늘과 강렬한 색채는 너무 기가 센 느낌이라 두려웠지만 한편으로는 매혹적이었다. 채도가 높고 콘트라스트가 강한 곳이었다. 연한 갈색의 사막에 듬성듬성 나 있는 녹회색의 키 작은 관목들, 검정 물감을 섞은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짙은 청색의 나무들. 흐리고 비 오는 날이면 구름의 안무가 땅의 에너지와 함께 어우러졌다. 산타페와 앨버커키 사이를 오가는 도로변 풍경은 거대한 황야에 가까웠고, 조지아 오키프의 집이 있는 아비쿠는 넓게 펼쳐진 산이 있는 곳이었다.



미국 서부의 자연은 얼핏 인간 세상과 무관한 장소처럼 보였는데, 인간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는 듯한 그 냉엄함이 오히려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뉴멕시코에서 처음 발견했다. 목가적인 경치 때문에 작품의 편안한 소재가 되는 곳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냉엄한 경계선에서 인간적 세계의 한계를 알려주는 곳. 푸에블로 인디언들은 오랫동안 이 땅에서 살아왔기에, 그들에게 정신 수양법을 배우겠다는 히피들이 생겼던 것도 이해가 간다. 마법의 땅(Land of Enchantment)이라는 주의 별칭이 너무 잘 어울린다.


미국 서부의 자연은 대체로 이렇게 냉혹하고 광막한 느낌이지만, 뉴멕시코에는 뉴멕시코만의 색채와 분위기가 있었다(주 전체를 구석구석 다 가본 건 아니지만). 이건 다른 주도 마찬가지였다. 자를 대고 대충 그은 것 같은 주 경계선이 매우 합리적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놀랐다.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 “US 285, New Mexico”는 매력적인 작품이지만 사실 뉴멕시코의 지역성을 잘 드러내주지는 못한다. (외국인으로서) 미국을 보는 그의 시각이 우선적이기 때문일 것이고, 무엇보다 색채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Robert Frank, “US 285, New Mexico”, 1956


- 올리버 스톤의 영화 <도어스>에서 모리슨 역을 발 킬머가 맡자 도어스 팬들의 항의가 빗발쳤다고 하던데, 실제 영화를 보면 킬머의 몸짓만큼은 모리슨을 닮았다. 영화는 불친절하고 혼란스러워서 호불호가 갈렸지만, 나는 좋아한 편이었다. (사실 도어스와 짐 모리슨이 생각났던 것은 <퀸스 갬빗> 때문이었다. 이 드라마가 60년대를 21세기식으로 다시 쓰려는 시도라는 해석에 공감하면서, 60년대에 그야말로 ‘들어가보려고 했던’ 영화 <도어스>가 생각난 것)


내 방에 붙어있던 이 포스터를 인터넷에서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이 프랑스판 포스터가 오리지널 미국 포스터보다 더 인상적이다. 파리 여행에서 이 포스터를 발견해서 사 왔고, 꽤 오랫동안 방에 붙여 두었다(모리슨은 페르 라 셰즈 묘지에 묻혀있다).


- 오랫만에, 도어스의 “Riders on the Storm”.

https://youtu.be/8Y6ruIXYm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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