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분리수거 하는 날
얼마 전 소소적으로 베란다를 비워내었다. 버리려다 다시 들고 온 할머니의 돗자리 (brunch.co.kr) 대대적이라고 쓰려다 소소적이라고 바꾼 것은 목표했던 바의 반도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베란다를 막고 있던 길을 전부 다 내려고 했는데 반 정도만 내었으니 정리의 물꼬는 튼 셈이라 한결 마음이 가뿐하다.
버릴 것들이 너무 많아서 아이들 네 명을 총동원해서 바리바리 싸 들고 분리수거장으로 갔다. 우리 아파트는 경비원 아저씨들께서 분리수거도 같이 챙겨서 봐 주신다. 계약 사항에 들어있는 부분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분리수거함이 차고 넘치지 않도록 늘 신경 써 주심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 그렇게 해 주시는 분들 중에서도 유독 정성으로 해 주시는 분이 계신데 평소에는 그냥 "감사합니다."라는 한 마디로 지나치곤 했다. 그리고 이런 소형 가전이나 물건들은 우리 집에서 정리할 부분이니까 사실 기대도 없었다.
그런데 "이리 주세요." 하시더니 하나하나 분리를 해 주시는 것이다. 아이들이 들고 있는 분리수거함을 받아서는 비닐 칸에 넣어주시기도 하셨다. 내가 유리병을 하나하나 넣고 있으니 달라고 하시면서 넣어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부분인데 너무 죄송하고 감사했다. 거기에 소형가전 같은 것도 말릴 사이도 없이 그냥 가져가셔서 정리를 하시겠다면서 놓고 올라가시라고 했다. 괜찮다고 해도 그냥 가져가셨다. 더운 날 감사한 마음에 냉장고를 뒤지는데 시원한 음료수는 두유 밖에 없었다. 냉장고에 넣지 않은 다른 건강음료와 곡물바를 몇 개 챙겨서 같이 들고 내려갔다. 내려가서 본 것은 더 이상 못 쓰게 된 진공청소기 같은 것을 플라스틱과 고무, 그리고 스테인리스로 일일이 공구로 잘라가시면서 정리를 하시는 모습이었다. 입주민이 보건 말건, 총관리자가 보건 말건, 그분은 정말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시고 계셨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자신의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말없이 하시는 모습은 백 마디 분리수거를 잘하라는 권고보다 훨씬 와닿았다.
이상하게 우리 동 앞은 분리수거날이 되면 다른 동보다 유난히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 처음 이사 와서는 잘 몰랐는데, 다른 동을 지나다니다 보니 알게 되었다. 사람의 많고 적음의 문제도 아닌 것 같았다. 다른 동은 박스가 항상 가지런히 펴져서 정사각형 형태로 차곡차곡 놓여있는데 우리 동 앞만 박스채로 던져져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플라스틱과 기타 폐지를 모아놓는 마대자루는 더 어수선해서 분리수거하는 날은 우리 동 앞을 지나가기가 참 싫다는 마음이 들었다. 심지어 아파트 공동현관에는 "박스를 펴서 배출해 주시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라는 문구까지 어느 날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큰 차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사 온 지 벌써 7년. 올해 여름은 지나온 시간들보다 좀 더 가지런하게 정리가 되어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박스채로 내어놓는 경우가 많지만 예전보다 더 깔끔하다. 이것은 내놓으시는 분들의 변화일까 아니면 정리하시는 분들의 수고가 더해진 결과일까. 나는 둘다라고 생각한다. 열과 성을 다해서 말없이 정리하시는 경비원 아저씨의 모습이 은연중에 더해지면서 그냥 내놓으려다가도 '아차' 싶은 마음으로 배출하기 전 한번 더 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한 번이지만 이틀간 너무나 큰 수고를 해 주시는 분들께 작은 마음을 드렸을 뿐인데 감사하다는 말을 너무나 많이 하셔서 오히려 부끄러웠다. 사람이 세 명 가면 반드시 배울 것이 있다고 했는데, 이름도 잘 모르는 그분께 나는 오늘도 배운다. 그래서 누가 보지도 않고 뭐라고 하지도 않겠지만 또 한 번 책상을 정리한다.
증자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써 나 자신을 살핀다. 일을 하는 데 최선을 다했는가? 벗들에게 신의를 지켰는가? 배운 것을 제대로 익혔는가?' 유독 마지막 문장이 와닿았다. 나는 배운 것을 제대로 익혔는가. 이 말은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가'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자세를 반듯하게 하면서 내가 배운 것을 제대로 익혔는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