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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May 25. 2024

예쁜 옷은 딸에게 양보하세요

둘째랑 쇼핑을 했다. 정말 오랜만이다. 전부터 바지를 사달라고 하는데 그 바지가 어떤 종류인지 정확히 뭔지 설명을 들어도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우선 야외에서 파는 코너부터 들렸다. 야외 가판대가 가격이 저렴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장당 무조건 만원을 외치는 곳에서 무려 네 벌이나 골랐다. 하얀색을 기본으로 예쁜 스퀘어넥의 반팔 티와 리본으로 허리를 묶을 수 있는 연출이 되는 긴팔 셔츠, 그리고 아이보리색 라운드 넥 티에다 검은색 치마바지였다. 싸고 여러 번 확인해 봐서 굳이 반품할 것 같지 않아 영수증을 받지는 않았다. 스퀘어 넥 티는 내가 입으려고, 나머지는 딸아이에게 어울릴 것 같아 둘이서 열심히 골랐다.


야외 가판대에는 아이가 원하는 바지가 없어서 2층으로 올라갔다가 청소년이 입으면 좋을 속옷도 여러 벌 샀다. 2층은 주로 20대 여성의류가 많아서 직원분께 여쭈어 보니 캐주얼 의류는 지하 2층으로 가라고 하셨다.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딸이 원하는 바지를 찾았다! 바로 회색의 헐렁한 트레이닝 바지였다. 중고등학생들이 헐렁하게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다니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중2인 딸아이도 그렇게 입고 싶었던 것 같다. 거기에 어울리는 검은색 헐렁한 티셔츠도 하나 같이 사서 입어보니 정말 요새 길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흔한 중학생 1이 되어 있었다. 아이는 매우 만족스러웠고 나도 괜찮았다.


마침 나도 트레이닝 바지가 하나 필요해서 딸과 똑같은 사이즈로 검은색을 샀다. 직원 분이 "어머니는 이렇게 같은 디자인의 하얀색 티셔츠 어떠세요?"라며 하나를 들어오시길래 손사래를 쳤다. "커플룩으로 좋을 것 같은데요." 아니요.... 아니에요... 딸이랑 둘이 대각선으로 커플룩 입어서 뭐 하겠어요 하하하.... 아마도 한 벌을 더 판매하실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을텐데 약간 아쉬워하셨다. 


집에 와서 둘이서 다시 입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입으려고 산 스퀘어 넥 블라우스는 생각보다 작았다. 요새 운동을 열심히 해서 괜찮지 싶었는데 애매하게 꽉 끼었다. (끼면 끼고 아니면 아닌 거지 애매하게 꽉은 뭐냐..... 싶지만 여하튼 그랬다.) 거울을 보니 일단 옷 자체는 예뻤고 어울리긴 했다. 약간 작은 듯 아닌 듯 그럭저럭 입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딸이 입은 옷도 약간 끼었다. 프리사이즈여서 괜찮지 싶었던 것이 패착이었다. 거기에 치마바지인 줄 알았던 옷은 그냥 치마였다. 일단 둘째와 나 모두에게 맞기는 맞았으나 이 또한 애매해서 제일 날씬한 큰 딸에게 피팅을 시켜보니 맞았다. 큰 아이는 본인이 입겠다고 했다. 영수증 없이 반품하러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다행이다.


그리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스퀘어 넥 블라우스를 둘째에게 입혀보니.... 세상에..... 너무 예쁘게 잘 맞는 것이다. 디자인도 색상도 찰떡처럼 잘 맞았다. "우와! 나 이쁘다!"라고 순수하게 좋아하는 딸을 보니, 그래.... 역시 임자가 따로 있구나 싶었다. 거기에 어깨선이 끈으로 된 청원피스를 입히니 내가 봐도 어쩌면 이렇게..... 너무 잘 어울린다. 맨날 헐렁한 티셔츠에 헐렁한 청바지만 걸쳐서 몰랐는데 이렇게 입혀 놓으니 세상 소녀소녀한 것이 오랜만에 다시 딸 키우는 즐거움이 느껴졌다. 내가 입으면 입겠지만 굳이 조이는 팔뚝살을 느껴가면서 불편하게 입고 싶지는 않았다. 아주 안 어울린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중고생에게 더 예쁘게 어울리는 옷을 굳이 40대 아줌마가 입어서 뭐 하겠는가!!! 거기에 아까 의도치는 않았지만 커플룩처럼 샀던 검은색 트레이닝 바지도 막상 입어보니 내게는 안 어울렸고 ㅡ.ㅡ;;; 그래서 둘째가 냉큼 집어갔다. 아주 잘 어울렸다. 오늘의 쇼핑 아이템은 하나 빼고 모두 둘째에게 갔으니 아이는 성공(?)한 날이었다. 비록 나를 위한 선택은 실패했으나 딸이 득템했으니 당분간은 쇼핑을 안 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나도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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