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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May 27. 2024

잘하지는 못해도 꾸준히 하다 보면

"엄마 미워!"

딸아이가 전화해서 울먹거렸다. 이번이 미술학원에서 열리는 두 번째 전시회인데 아직 가지를 못했다. 한 번은 결혼식, 한 번은 셋째 야구시합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는 꼭 가겠다고 하고 보니까 또 결혼식이 있다. 이를 어쩌나 고민하다가 결혼식 가기 전에 들리기로 했다.


전시작품들 보고 나서 같이 가면 되지. 수업은 하루 빠지기로 했다. 둘째는 2년 전부터 매주 토요일이면 오전에 미술학원에 나가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처음에는 웹툰 작가가 되고 싶은데 인체드로잉을  좀 더 배우면 좋겠다고 했다. 전문적으로 입시 미술을 준비하기엔 나이도 어리고 아직 변화무쌍할 나이라 그냥 취미로 가기로 했는데 그것이 벌써 2년이 되어 간다.


둘째는 뭐든 뛰어나지는 않다. 다만 성실하다. 꾸준하다. 그리고 이 성실하고 꾸준함이 사실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장점이 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아이는 가끔 투덜거렸다. 왜 나는 언니나 동생처럼 머리가 좋지 않지? 그래서 노력한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단점을 알아서 미리미리 끝까지 준비한다.


가서 아이의 그림을 보니 작년보다 훨씬 실력이 향상된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 마카롱은 정말로 사진을 찍어 놓은 듯 생생하고 딸기는 윤기가 좌르르 흘렀다. 선생님이 도와주셨다고는 했다. 그래도 나머지는 다 자기 힘으로 했다고 하니 대단하다. 이건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 어나더레벨이다. 학원에 가니 선생님은 딸기의 윤기 부분만 도와주었고 나머지 씨앗이나 음영 부분은 혼자서 했다고 칭찬하셨다. 다른 친구들 그림도 보고 아이가 그린 그림의 작은 액자판도 받아왔다.


나는 가서 보기만 했을 뿐인데 아이는 너무 좋아했다. 선생님들 드실 간식이라도 사갔어야 했는데 내가 잘못했다. 이번 주 토요일 아이 편에 간단한 간식 꾸러미라도 하나 들려서 보내야겠다. 조금씩 서서히 파간 아이의 우물이 어느덧 조금씩 찰랑찰랑 차오르는 것을 보니 대견하고 기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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