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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Jun 28. 2024

만날 인연은 만나게 되어 있다

안녕, 우주

5주간 안녕 우주를 원서로 읽었다. 혼자 읽는 것도 괜찮지만 매주 일요일 저녁 8시 줌으로 40분 정도 때로는 1시간가량 같이 소리 내어 읽는 것도 참 좋다.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로 어떻게 전달이 되어지는가를 들으면서 책에 빠지는 것은 전문 성우의 멋진 오디오북 파일보다 더 좋다.


네 명의 아이가 나온다. 제목에 '우주'가 들어가니 좀 더 거대한 컨셉일 것 같고 장대한 배경과 시간이 펼쳐질 것 같은데 실제로는 한 마을의 숲이고 고작 하루에 불과한 시간일 따름이다. 그 하루 동안 네 명의 아이가 어떻게 자라났는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어떻게 삶을 대하고 있는지가 찬찬히 교차되어 펼쳐지다 끝으로 가면서 촘촘하게 좁혀져 간다. 자극적인 스릴러도 아닌데 점점 궁금해져서 결국 못 참고 끝까지 읽게 만들어버리는 것이 이 작가의 매력이다. 내 친구들 몇몇은 열린 결말을 싫어하는데, 이 책은 열린 결말로 끝난다. 하지만 상당히 방향이 분명한 열린 결말이어서 앞으로 어떻게 전개가 될지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책이 좋았던 것은 어떤 극적인 사건 앞에서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삶의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후회하며 '만약'을 가정한다. 수많은 ifs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이것은 이렇게 하고 저것은 저렇게 하리라라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한다. 하지만 그 위기를 벗어나고 난 다음에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그 찌질하고 한심한 순간을 이 책은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어서 안타까울 정도로 공감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 우물에서 벗어나는, 그 껍질을 어떻게 깨려고 노력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절대 이해받지 못하던 아이들이 사실은 이해를 받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말로 전하기 어려운 뭉클함을 느끼게 한다. 우물에서 구해준 발렌시아에게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버질을 보며 발렌시아는 이렇게 생각한다.


"But I don't mind he's being quiet. Some people are shy, that's all. It doesn't mean he doesn't have manners. I know what it's like to have people waiting on you to say the right thing, even if you don't know what the right thing is. That's how I feel when people forget the how-tos."


"하지만 나는 저 아이가 조용한 것이 괜찮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수줍을 뿐이다. 그렇다고 예의가 없지 않은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뭔가 맞는 말하기를 기다리는 기분이 뭔지 않다. 때로 뭐가 맞는 것인지 모르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잊어버릴 때 내가 바로 그렇게 느끼니까."


어쩌면 버질은 이렇게도 자기를 잘 이해해 줄 아이를 이렇게 잘 찾아서 반해 버린 것인지 정말 보는 눈이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 책의 또 다른 백미는 뒤에 있는 저자의 말이다. 글이 아닌 말이라고 한 것은 수상식에서 저자가 한 연설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왜 자신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를 밝히면서 어쩌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만 다른 주, 다른 나라에 있어서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나 슬플까 생각했다고 말한다.


But that's why we have books, isn't it? So we can meet those people walk in their shoes. See our reflections. So we can discover that we never struggle alone.


Books are an incredible gift. But without you - the book people of the universe - they would never find their way.

Which bring us back to the present. To the universe we found ourselves in tonight.


"Once upon a time, there was a little girl. And all her dreams came true." But it isn't just my story. It's the story of you and me.


책을 통해서 우리는 만날 수 없던 사람들을 만난다. 서로의 가치관을 나누고 우리의 반영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서 고군분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니 얼마나 놀라운 선물이란 말인가. 그러니 책은 가치가 있는 선물이지만 책을 읽는 우리들이 있기에 그 길이 비로소 발견되는 것이다. 우리를 선물인 현재로 데려다주고 우리 자신을 찾게 하는 그 우주로 말이다. 그래서 제목이 '안녕, 우주'인 것이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우리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움직인다고 했던가. When you want something, all the universe conspires in helping you to achieve it. (파울로 코엘료 Paulo Coello,연금술사 The Alchemist) 이 책에서도 결국 간절한 바람은 전달되게 되어 있다고 그렇게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나와 같은 영혼의 파장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내 일상의 주변에는 이토록 많은 이들이 있는데 어쩌면 나와 같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좋아하는 것을 논하는 이들은 이토록 귀하단 말인가. 지금은 온라인상으로 그 부분은 조금 쉬워졌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는다. 그리고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이렇게 만나고 위로를 받는다.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이 망망한 외로움 가운데에서, 나를 반향이자 반영인 이들을 만나서 힘을 얻고 이해하며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또다시 힘을 얻어서 나아가는 것이다. 때로는 빠르게 일찍, 때로는 느리게 늦게. 이러한 만남은 일러도 좋지만 기다림이 길어도 괜찮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를 더 이해하고 서로를 더 기쁘게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간절함의 크기만큼 말이다. 그렇게 만날 인연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비록 다른 때 보다 조금 더 외롭고 조금 더 많이 슬프고 조금 더 많이 삶의 무게에 압도되더라도 그만큼 더 충만하고 더 감사하고 더 감동이 있는 인연이 올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삶은 실제로 그러하다. 진정한 벗이 될 이를 실제로 만날 수도 있고, 그리고 이렇게 한 단계의 다리를 거쳐서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오는 책으로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다리면서 또 말을 건네 본다. "안녕, 우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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