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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옷들과 이별 하던 날

by 여울

너무 더웠다. 더운 여름이면 가끔 민소매 원피스를 한 번씩 꺼내서 입었다. 20년 가량 된 옷이지만 크게 유행을 타지 않는 스타일이고 자주 입지 않아서 그럭저럭 입을만 하다. 2주 전부터 입고 싶어서 옷장을 뒤지는데 보이지 않았다. 벌써 여러 차례 안 입는 옷들을 솎아내었다고 생각했는데 좋아하는 옷을 찾을 수 없어 입지 못하다니.


혹시나 싶어 하나 남겨 두었던 옷 박스를 뒤지자 거기서 구겨진 채로 발견되었다. 급한 대로 대강 다림질을 했더니 입을 만했다. 오늘은 현관 신발장 위를 정리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저 옷 박스를 정리해야지. 이미 지난 번에 많이 비워낸 반 정도만 차 있는 옷 박스이니 간단하겠지.


저녁을 먹고 안방으로 와서 박스를 꺼냈다. 혹시 모르니 마스크를 끼긴 했다. 박스에서 옷을 꺼내면서 "어머"를 연발했다. 이 옷들이 여기 있었네? 20년 전에 너무 좋아했던 옷들이었다. 지금 봐도 옷감은 여전히 부드럽고 결이 좋았다. 그래서 차마 버리지 못하고 고이고이 간직했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은 입을 수 없는 옷들이다. 레이스가 자잘하게 달린 저 스타일은 지금과 맞지도 않거니와 지금 나의 분위기와 어울리지도 않는다. 짧은 볼레로와 민소매 세트를 큰 딸에게 보여주었다. "이 큰 단추들 떼어내면 입을 만 하지 않을까?" 큰 딸은 아니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당시에는 예뻐서 샀던 큰 나비 장식이 달린 허리띠와 꽃 모양 장식이 크게 달린 허리띠도 이제는 하지 않는다. 하늘하늘한 소재의 잠옷도 더이상 입지 않는데 빅토리아 시**이라는 브랜드가 아까워서 계속 가지고 있었다.짧은 소매의 니트 소재 가디건도 자주 입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잘 입지 않았다. 꽃무늬가 긴 줄로 놓인 블라우스도, 보슬보슬 독특한 디자인이 예뻤던 긴 머플러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런데도 차마 버리기가 너무 아까웠다. 잊고 있었던 청바지들이 줄줄이 나왔다. 언젠가 살을 조금 더 빼서 입어야지 싶었던 바지들도 많았다.


큰 딸을 다시 소환했다. "이것 좀 입어 봐봐." 나와 키는 비슷하지만 나보다 8kg은 덜 나가는 날씬한 큰 딸 아이에게는 살짝 허리가 남아 돌았지만 그럭저럭 입을만 해 보였다. 사실 대학생이 입으면 더 예쁠 옷들이라서 2년은 더 있어야 하긴 하지만 요새 부쩍 멋을 내면서 내 옷장을 뒤지는 큰 아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입으면서 아이는 하나씩 품평을 했다. "이건 영국 왕실 초상화에 나오는 옷 같아." 어깨 주름이 강조된 스퀘어 넥의 블라우스였다. "이건 연극할 때 입으면 어울릴 사모님 의상이다." 결혼식 예복으로 입었던 아이보리 색 바탕에 금색 자수가 놓인 정장 자켓이었다. "다리가 너무 길어." 내가 입어도 5cm는 남아돌아서 하이힐과 신어야 예쁘던 긴 기장의 청바지였다. "이건 뭐랑 입어도 이상한 걸." 카키색 체크무늬 치마였다.


지금도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지만 지금보다 4kg은 적게 나가던 시절에도 엉덩이와 허벅지가 꽉 끼던 머메이드 스타일의 롱스커트들은 큰 아이에게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그러니까 저 옷들을 입으려면 내가 최소한 8kg은 빼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서야 불가능한 현실이 눈에 들어오니 마음에서 재빠르게 포기가 되었다. 돈을 주고 샀으니 아까운데 입지는 못하는 옷을 옷장에 걸어놓고 몇 년을 마음만 끓이고 있었다.


당장 입을 옷들은 아이가 즐거운 마음으로 챙겨서 가져가고 2년은 더 가지고 있어 볼까 싶은 옷들 서너 벌만 남겼다. 그리고 앞으로 절대로 안 입을 것 같지만 다른 분들이 입을 만한 옷들만 모아서 옷걸이에 걸어놓았다. 당근에 일괄로 저렴한 가격에 올려 보아야지. 마음 같아서는 오늘 다 처리해 버리고 싶지만 참았다. 나에게는 할당량이라는 것이 있다. 하루에 과도하게 해 버리면 몇 날 며칠을 에너지 고갈로 끙끙거리며 앓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미 눈이 가렵고 콧물이 나기 시작했다. 마스크가 조금은 도움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먼지의 공격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옷 박스 하나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하니 간단하지 않았다. 외출에서 돌아와 샤워했는데 다시 땀 범벅이 되었다. 버릴 것과 나눌 것, 다시 쓸 것과 판매할 것을 구분하고 나니 기운이 빠졌다.


잠시, 옷장문에 기대어 늘어져 있었다. 추욱. 먼지가 아직도 풀풀 날아다니는 이 방에서 나가고 싶었지만 저기 반대편에 보이는 문까지 걸어갈 힘도 없었다. 코를 몇 번을 풀어내고 나서야 끙차 하며 몸을 일으킨다. 길이만 수선하면 그럭저럭 입을 수 있는 청바지들을 다시 옷장에 넣어두고 - 제발, 빨리 해결해야지 - 버릴 스카프에 옷들을 한가득 싸서 현관문을 나선다. 오늘 바로 버릴 예정이다. 옷 박스에서 하나하나 넣다가 마지막 옷에서 또 멈췄다. 안 입을 것 같은데 너무나 애정하던 잠옷 상의. 보들보들해서 진짜 좋아하던 옷이다. 이미 옷 박스 안으로 들어간 바지와 한 세트인데 바지는 안 입어도 이건 입고 싶다. 안 입어도 갖고 있고 싶다. 한참을 서서 고민하는 나를 사람들이 흘끗흘끗 쳐다보는 것 같다. 고민 끝에 착착 접어서 다시 가져온다.


젊은 시절 좋아하던 물건들을 정리해서 분리해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시절의 추억과 그에 담긴 소중한 감정들까지 다 들어내는 것 같은 기분에 마음 한 켠이 서운하고 때로는 아리게도 느껴진다. 유난히 애착이 가는 것들도 있어서 사실은 아까도 하나 슬쩍 빼냈었다. 그래. 너랑 너. 두 벌은 일단 남겨둘께. 이제 옷장은 정말로 빈 공간이 눈에 확 들어올 만큼 여유로워졌다. 겨울이 되면 아마 조금 더 빼낼 것이다. 그래서 정말 입을 옷들만 있는, 그래서 오늘처럼 이리저리 찾다가 구겨진 옷을 급하게 다림질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공간이 될 것이다. 좋아하던 옷들과 이별하는 그 순간은 조금 힘들었지만,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뿐했다. 조금씩 비어가는 공간들은 마음에도 그만큼의 비어 있는 자리를 확보해 주는 듯 싶었다. 꽉 차 있던 공간들을 비우면서 그 만큼 마음도 가벼워짐을 느낀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보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때에 맞게 보내는 이의 모습도 아름답다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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