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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Nov 22. 2024

아이들도 월급을 받으면 플렉스 한다

우리 반은 학급 화폐 제도를 운영한다. 예전에는 스티커나 도장을 활용해서 보상 시스템을 운영했는데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참여도가 낮았다. 도장을 모으는 것이 귀찮았던 아이들은 그냥 대충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스티커는 떨어지거나 몰래 떼기도 했다. 거기에 잘못을 했을 경우에도 애매했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학급화폐제도이다. 우리 반에서만 통용되는 가상 화폐이다. 단위는 '콩'. 예전에는 '냥'을 사용했는데 이왕이면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 복직 후에는 '콩'으로 바꾸었다. 성장과 잠재력을 품고 있는 씨앗의 의미를 담고 싶었다. 아이들은 다 잊어버렸겠지만 나는 볼 때마다 생각한다. (아, 매번은 아니고 가끔씩.)


숙제나 과제를 제시간에 해 오면 1 콩씩 받는다. 1인 1역 등 자신이 맡은 일을 해 내면 1 콩씩 받는다. 매일매일 기본으로 쓰는 3 줄 쓰기나 매주 2편씩 써오는 일기를 검사받아도 콩을 받는다. 모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또 콩을 받는다. 이렇게 모은 콩으로 아이들은 사업을 하기도 하고 원하는 물품이나 티켓을 구입한다. 일기 면제권이나 자리 교환권, 급식 우선권, 간식 교환 같은 매일매일 사용이 가능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티켓도 있고 선생님과의 데이트 티켓이나 짝꿍 선택권 같은 고가의 티켓도 있다.


솔직히 일기 쓰기는 귀찮다. 그리고 검사하면서 한 마디씩 댓글을 달아주는 것은 정말 톡 까놓고 말하면 교사로서도 엔간한 에너지가 소요되는 일이다. 하지만 나의 생활을 글로 옮기는 과정은 다른 무엇보다도 큰 배움과 결과물을 주기 때문에 선생님도 귀찮고 아이들도 귀찮아도 매주 2편은 쓴다. 물론 어린이날 같은 때는 1편으로 줄여주거나 일기를 면제해 주기도 한다. 이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일기 면제권이 있는 것이다. 일기 면제권은 매주 연속으로 쓸 수 없다. 그래서 일기가 너무 힘들거나 그 주에 뭔가 일이 많아서 일기를 쓰기가 어려운 아이들은 한 번씩 일기 면제권을 사서 일기장에 붙인다.


한 달의 마지막 날. 우리는 자리를 바꾸고 새로운 짝을 만나기 전에 정산을 한다. 한 달간 모둠 활동 점수를 보면서 어느 모둠이 제일 적극적으로 활동했는지를 본다. 발표를 모두 한 번씩 하거나 과제를 모두 다 완성하거나 협동을 잘할 때 등등마다 자석이 붙는데 그 자석의 수가 순위를 결정한다. 그리고 순위대로 자리 뽑기를 먼저 할 수 있다.


그런데! 자리 선택권이라는 것이 있다. 이 자리 선택권은 고가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한 시간 자리 교환권은 20 콩으로 조금만 모으면 쉽게 구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 달간의 자리를 선택하는 것은 400 콩이나 되기 때문에 드물게 사용되는 편이다. 그럼에도 사용하는 아이들이 가끔씩 나온다. 400 콩도 생각보다는 모으기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콩으로 사업을 하는데 그에 따른 소득도 쏠쏠하다. 그 소득은 세금과 월세를 내고도 수익이 남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따로 다루겠다. 아무튼 한 달간의 자리를 선택하는 것은 선 듯 지출하기 어려운 고비용이기에 아이들은 주로 한두 시간 짧게 친구와 함께 할 수 있는 자리 교환권을 사용한다. 이 또한 옆의 친구의 동의를 얻어야 사용이 가능하다. 누군가가 자리를 옮기는 수고를 해야 하기 때문인데 그 수고를 내가 단지 돈을 지불했으니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건을 달았다.


9월과 10월에 쉬는 날도 많고 모둠별 프로젝트도 많아서 조금씩 밀리다 보니 11월 중반에 자리를 바꾸게 되었다. 그 말은 아이들이 월급을 받는 날이라는 뜻이다. 1등 한 모둠은 한 사람 당 최대 60 콩까지 받았다. 사업자는 세금을 내지만 이 경우는 세금도 면제니 정말 기분이 최고다. 주머니가 넉넉해진 아이들은 고민을 한다. 목돈을 모으는데 보탤 것인가 아니면 약간의 호사를 누려볼 것인가. 선생님과의 데이트로 방탈출, 보드게임카페, 영화관람이 차례로 예정되어 있는데 여기를 가 보고 싶다. 그런데 지금 당장의 소소한 행복도 중요하다. 6명의 아이들은 각각 40 콩씩 내고 2시간의 미술 시간 동안 함께 앉기로 결정했다. 동그랗게 둘러앉아 함께 색칠을 하고 수다를 떨고 싶은 것이다. 결국 내 급여 상자에서 나간 콩은 생각보다 많이 돌아왔다. 넉넉한 주머니에서 인심이 난다고. 금요일이라 행복한데 월급도 받고 친구와 플렉스를 누리니 조금 더 행복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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