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가는 게 제일 빠른 길이다

by 여울

마음이 급했다. 연주회에 올리려면 빠르게 완성해야 했다. 남은 기간은 불과 한 달여 남짓. 그런데 연습할 시간은 없고 마음은 초조해졌다. 결국 나는 연주회 신청을 취소했다. 내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은 성인전문학원으로 갓 대학교에 입학한 학생들부터 머리가 지긋하게 하얗게 세신 어르신들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그리고 일 년에 4~5회 정도의 연주회가 열린다. 조금 부담이 없는 미니연주회와 정식 홀을 빌려서 연주하는 정기연주회가 있다. 그러니 본인이 준비만 되어 있다면 언제든 연주할 기회는 주어져 있다. 문제는 곡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대학생 때도 일 년에 두 번 무대에 섰다. 같이 연습하는 에뛰드 한 곡과 무대용 독주곡, 그리고 포핸즈나 투피아노를 위한 듀엣곡 정도로 보통 서너 곡을 한 학기에 배웠다. 그때는 연습실이 학교 안에 바로 있어서 언제든 틈만 나면 음악관에 가서 피아노 연습을 마음껏 했다. 나는 소속은 영어교육과인데 음악교육과 친구들과 더 친할 정도로 음악관에서 살았다.


작년부터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다시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완성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늘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만족감이 있어야 한다. 내가 이 곡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나? 의구심이 들고 확신이 서지 않았다. 시간에 쫓겨서 마음만 급해졌다. 그렇게 몇 곡을 무대에 올리고 나면 허탈한 마음에 조금 더 곡을 심도 있게 완성해 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번에 연습하는 곡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7번이다. 나는 베토벤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연습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베토벤의 곡들은 엄격함을 가지고 있다. 박자가 철저하게 정확해야 한다. 물론 모든 피아노 곡들이 박자를 중시하지만 조금의 느슨함이 허락되는 곡들이 있는가 하면 미세한 빠르기의 차이조차 용납이 되지 않는 정밀함을 요구하는 곡들이 있는 것이다. 어쩌면 베토벤을 피해왔던 것은 제대로 피아노 곡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비겁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몇 곡의 소나타와 변주곡을 이후로 나는 베토벤은 듣는 것으로만 만족해 왔었다.


그러다 작년 가을부터 용기를 내어 마주해 보기로 했다. 원곡의 빠르기는 프레스토. 악보도 딱히 어렵지 않았다. 며칠 만에 악보를 다 읽었다. 쇼팽이나 슈만과 같은 복잡함도 없이 단순한 2분의 2박자. 그런데 미치도록 어려웠다. 아주 어릴 때부터 배워온 기본 알베르티 형식의 반주도 그냥 펼쳐지는 단순한 선율도 매끄럽지 않고 울퉁불퉁 튀어나왔다. 레슨을 받는데 받을 때만 좋을 뿐, 연습할 시간도 정신도 없이 12월이 지나갔다.


1월. 나는 이 곡을 다시 들여다보기로 했다. 좀 느리게 시작해서 속도를 올려갔다. 선생님 앞에서 오랜만에 친 이 곡은 그러나 참담했다. 연습을 안 한 것도 아닌데, 속도를 올리면 어느 순간 템포가 흐트러져 치면서도 엉망인 것이 확연히 들어왔다. 선생님과 나는 속도를 아예 느리게 잡아가기로 했다. 0.4배로 느리게 잡았는데 나중에 나 혼자 할 때는 0.25배의 속도로 아주 느리게 음을 하나하나 잡아갔다. 음 하나를 치고 소리를 듣고 두 음씩 연결해 보고 그다음에는 4개, 그렇게 해서 음 8개를 쳐야 겨우 한 마디가 완성이 되었다. 메트로놈을 2씩 올려가면서 수없이 반복을 했다. 조금 되는 것 같았다. 이 정도로 했으니 0.8배 속까지는 올려도 되겠지.


자신 있게 녹음을 해서 들어보았다. 아니었다. 속도를 올린 순간 다시 음들은 비죽비죽 튀어나왔다. 박자 역시 고르지 않았다. 울고 싶었다. 문득 노다메 칸타빌레(Nodame Cantabile)가 떠오른다. 악보 읽는 것을 귀찮아하고 듣는 귀가 좋은 노다메는 청음으로 곡을 익힌다. 천재지만 악보를 제대로 마주해 본 적이 없다. 그녀는 난생처음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의 음들을 하나씩 들여다본다. 내 마음대로 가고 싶은 박자와 음들을 꾹 참고 악보대로 치는 연습을 힘겹게 한다. 그러다 보면 슈베르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나는 베토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을 의사가 있는가? 들을 준비가 되었는가? 다시 원래 시작했던 속도로 돌아왔다. 손가락 힘을 빼고 박자를 정확하게 가고자 집중에 집중을 더한다. 1번과 2번인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치는 부분은 나도 모르게 조금 더 빠르고 3번과 4번 손가락인 중지와 약지 손가락으로 치는 부분은 느려지면서 고르지 않다. 느려지는 부분을 다잡으면 소리의 울림이 거칠고 난폭해진다. 스타카토에다가 포르테시모니까 끝까지 세게 쳤더니 너무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들린다. 영롱하면서도 힘이 있게 울림을 전달하는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선생님은 템포를 100까지 만들어 오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 마음도 나는 버렸다. 템포를 80까지만 가져가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충분히 도전적이고 버거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연습한 후 다시 녹음해서 들어보았다. 여전히 거칠고 여전히 고르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전보다는 훨씬 듣기가 편하다. 겨울방학이 끝나가고 있다는 마음에 조급했다. 아파서 연습을 많이 하지 못했다는 것도 한 몫했다. 템포 100도 느렸기 때문에 어떻게든 빨리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 마음을 내려놓고 느리게 가기로 했더니 음색도 한결 편안해지고 나 역시 즐거웠다. 마음을 비우고 80의 속도에 충분히 익숙해지면 조금 더 조금 더 그렇게 끌어가 보기로 한다.


그제야 베토벤이 어떤 마음으로 이 곡을 작곡했을지, 어떤 이야기를 나는 들을 수 있는지 살펴볼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 느껴 본 베토벤은 좀 아름다운 듯했다. 그동안 밀어내서 미안했다. 왜 수많은 피아니스트와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베토벤을 그렇게 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 기교가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마음으로 느끼며 그렇게 베토벤을 알아가는 것으로 이미 충분한 기분이었다.


여전히 매일매일 몇 시간씩 연습은 못한다. 오늘도 못했고 모레도 불투명하다. 미처 완성하지 못한 다른 일들이 눈에 밟힌다. 심지어 그제는 다른 방에서 나보다 훨씬 잘 치는 7번 소나타를 들으며 기가 죽었다. 다시 마음이 급해지려고 했다. 겨우겨우 그 서두르려는 마음을 또 내려놓는다.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가기로 했다. 아마 계속해서 기가 죽고 의욕이 사그라드는 순간들을 마주하겠지만 그래도 급하게 가지 않겠다. 최소한 그런 마음으로 가겠다. 느리게 갈 때 제일 빠르다는 것을 다른 곳에서도 배워 오고 있으니까. 재능은 없어도 노력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의 지점까지는 갈 수 있다는 것을 겪어서 체험해 왔으니까. 그러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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