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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중학생들의 사연사연사연 1

by 여울 Feb 07. 2025

모두가 싱숭생숭 애매모호한 학년 말. 특히 졸업을 앞두고 있는 6학년 교실은 다른 학년들보다도 조금 더 그 분위기가 있다. 6년이나 다닌 학교를 떠나는 것이다. 여기선 제일 높은 학년이고 익숙함의 극치를 달리다가 낯선 학교에서 완전 제일 막내 학년이 되는 그 순간을 앞두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이 어떨지는 상상이 간다.


교과서도 다 끝났다. 국어 시간에 아이들과 라디오 쇼를 진행해 보기로 했다. 아주 가끔 듣는 컬투쇼의 사연 일부를 들려주고 아이들에게 직접 사연을 적어보라고 했다. 이름을 꼭 밝히지 않아도 된다고. 1년 간 우리 반에서 있었던 일을 적으면 더 좋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무엇을 적어야 할지 난감해하던 아이들은 각자 적어가기 시작했다. 사연과 함께 노래도 같이 신청하게 했다. 신청 사유도 같이 적어보자고 했다.


금방 쓸 것 같았는데 한 시간을 꼬박 채웠다. 엄청나게 길게 적은 것도 아닌데 일 년을 돌아보고 거기서 사연으로 적을 만한 이야기를 꺼내고 정리하는 것은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이제 라디오 쇼를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진행자를 하겠다는 아이들이 여섯 명이나 있어서 세 팀으로 나누어서 진행하기로 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빵빵 터지고 눈물도 흘리고 감회에 젖기도 했다. 음악 선곡도 어찌나 찰지게 맞춤으로 했는지 탄성이 나왔다. 녹화를 했으면 좋았겠다 싶을 정도로 아이들은 진지하게 읽고 진지하게 들었다. 학년 말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이렇게 재미있게 집중력 있는 수업을 보여주다니. 나도 놀랐다. 동시에 한 번만 한 것이 너무 아쉽다. 내년에도 6학년 담임을 하게 되면 한 학기에 한 번씩 두 번 해 봐야겠다. 그렇게 사연과 음악을 듣고 있노라니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워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익명으로 글을 쓰는 채널이 있는데 거기에 실명을 언급하지 않고 적어도 되겠냐고 헸더니 다 좋다고 했다. 그래서 몇 개만 적어볼까 싶다.




안녕하세요. 곧 중 1이 되는 6학년 O반의 익명입니다. (실제로 익명이라고 씀) 지금부터 저의 사연을 소개하겠습니다. 어느 날 ㅅ 초등학교의 급식실에서 사건은 일어났습니다. 평범한 날처럼 줄을 서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친구가 "니 안에 OOO."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어쩌라고 니거보이야." 그 말에 빡친 그 친구는 나한테 욕을 했다고 욕이 아닌 말로 바꿔 말했습니다. "야, 이 니 붕어빵새끼야!" 그러며 발차기를 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나오시고 그 모습을 보고 "야!" 이러시면서 우리는 혼이 났습니다. 결국은 화해를 했고 앞으로는 "니거보이"라는 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신청곡은 태진아의 '미안미안해'입니다. 이유는 미안해서입니다.



이 친구는 피부톤이 좀 어둡고 눈이 커서 외모에 대한 부분이 좀 민감했다. 그 차에 니거보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해서 발차기를 급식실 앞에서 다른 반, 다른 학년들이 있는데 대차게 날린 것이다. 서로 목을 잡고 구르는 순간이 어찌나 재빨랐는지 내가 근처에 있었는데도 싸움은 순식간이었다. 눈물을 뚝뚝 훌리던 두 아이는 나중에 자초지종을 듣고 서로 오해해서 생긴 일임을 알고 화해를 했다. 학년 초니까 봄에 있었던 일인데 아직까지도 ㅈㅎ이 마음에 남아있었나 보다. 미안미안해가 나오는 순간 우리는 모두 빵 터지고 말았다. 지금은 웃고 넘어가지만 단어 자체도 모욕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니 그냥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엄중하게 경고를 했고 모두는 동의를 했다. 




안녕하세요. 졸업을 앞두고 있는 예비 중1인 ㅇㅊ입니다. 저는 졸업을 앞두고 핸드폰을 4번 이상 연속으로 뺏겼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엄마가 아빠 혼자 외로우니까 가끔 나와서 아빠랑 놀아주라 해서 늦은 시각에 나와서 안기니까 갑자기 아빠가 급발진하면서 핸드폰을 압수한 댔습니다. 하지만 하루 뒤에 가니까 돌려받고 다시 가니까 또 뺏기고 뺏기고 뺏기고 진짜 너무 빡쳤습니다. 가니까 왜 또 그러는 건지 참 피곤합니다. 언제는 안 나와서 폰압을 당하고 아빠 기분이 좋으면 경고로 넘어갑니다. 어쩌라는 건지 참 화나 났었던 기억입니다. 


신청곡은 다시 생각해도 짜증 나니까 그 벌레라고 소리 지르는 노래 해 주세요.라고 했으나 노래는 찾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6학년 학생 ㅅㅇ입니다. 이번 방학에 자궁에 큰 혹이 있는 걸 알고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하는 수술이라 많이 무서웠지만 의사 선생님이 작은 구멍이 생기는 거라고 무섭지 않다고 했습니다. 저는 전신마취라 금방 안 잠들 것 같았는데 필름이 뚝 끊겼습니다. 수술 후에 하루 종일 누워 있었더니 엉덩이에 멍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끝나도 수액을 맞는데 정맥을 못 찾으셔서 주사만 3번 맞았습니다. 앞으로는 운동하고 ㅁㅁ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겠습니다.


신청곡은 밤을 보는 눈 (잠뜰 OST)이고 용기를 주어서입니다.


이 친구는 갑자기 지난 학기 말부터 복통이 너무 심해서 결석이 잦았다. 충수염인가 싶었는데 안에 물혹이 생겨서 고생하더니 이렇게 수술까지 받았다. 어린아이가 자궁에 혹이라니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모른다.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 않다고, 위가 줄어서 먹는 양이 줄었다고 좋아했다. 음... 급식 시간에 바나나 13개를 먹는 풍경을 보여주기도 했으니 (밥 다 먹고) 먹는 양이 줄은 것은 좀 좋지만 이런 식으로 해결되기를 바란 것은 아니어서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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