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지막 날. 평소라면 여유가 조금 있을 금요일이지만 분주했다. 이별에도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편지를 쓴다. 읽을 사람을 미리 확인한다. 그동안 찍은 사진을 교생 선생님들마다 다르게 편집한다.
예상은 했지만 지난주 처음보다는 좀 덜 슬프고 조금 더 유쾌한 이별의 시간이 지났다. 여기가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교생 선생님들께 드릴 아이들 편지책을 마무리하기 위한 사진을 추가로 편집해서 출력하고 붙인다. 어제 퇴근 후 세 시간 동안 정성을 다해 만든 쿠키들과 그래놀라를 나누어 담는다. 세 분에게 드리는 편지도 짧지만 다르게 다 썼고 이제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린다. 한 번은 제대로 커피를 핸드드립으로 내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3시 반. 마지막으로 담임교사와의 시간을 가졌다. 만든 편지책을 나눠드리고 선물을 드리는데 한 분이 기대하고 있었다고 하신다. 네에? 알고 보니 지난주에 온 세 분 중 친구가 있어서 인스타를 보고 알고 있었다고. 아이코. 사실 어제 좀 힘들기도 하고 오늘도 정신이 없어서 선물은 건너뛸까 내 편지를 생략할까 하는 생각도 아주 잠깐 했는데 역시 다 챙기길 잘했다. 정성을 다해 안 만들었음 어쩔 뻔했나.
실습 종료식을 마치고 같이 사진도 찍고 교실로 와서 정리하는데 누군가 교실 문을 두드린다. 사실 이번 실습에는 동아리 후배들이 있었다. 세 명이 우리 학교로 왔다는데 그중 한 명이 우리 반에 배정이 되었다. 눈빛이 아주 따스하고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 찬 열정적인 후배였다. 그 후배들과는 어제 저녁을 먹었다. 그렇게 저녁을 같이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았다. 동아리 공연도 해마다 계속 보러 갔고 뒤풀이도 같이 했었는데 인원이 워낙 많으니 잘 모르다 이번에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동아리 후배와 선배로, 교생과 지도 교사로 인연을 맺게 되었으니 그 또한 각별하다.
후배의 손에는 편지와 선물이 들려 있었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편지를 읽으며 눈물이 났다. 지난주 선생님들도 예쁜 꽃과 편지를 주고 가시면서 나를 만난 것이 정말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때도 눈물이 났는데 오늘도 눈물이 난다. 글썽글썽한 눈으로 둘이 꼭 끌어안았다. 후배는 말했다. 아이들과의 시간도 좋았지만 선생님과의 시간이 정말 좋았다고. 집에서 열어 본 편지에는 멘토 선생님을 만나서 정말 감사하다고 적혀 있었다. 그 믿을 수 없는 두 글자에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 멘토라니. 내가 누군가에게 멘토가 될 수 있는 사람인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단어가 내게로 왔다. 이렇게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후배에게 과분한 호칭으로 불린다.
나를 돌아본다. 부끄러운 것도 많고 놓친 것도 많고 미숙한 점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 부분들은 다 고사하고 좋은 것만 골라서 보아주고 기억해 준다는 것을 안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인 그 어린, 어쩌면 내 큰 딸과 비슷한 나이의 젊음이 보여주는 성숙함과 깊이에 나는 이미 반했었다.
이 귀한 후배가 내게 각별한 인연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이 만남이 1회 성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계속 이어질 계기가 있다는 것에 나 역시 마음이 채워진다. 내가 속한 동아리는 정기적으로 졸업생 모임이 매달 있어 재학생들을 만난다. 11월 정기 공연 때는 함께 무대에 설 예정이니 우리의 인연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많은 경우를 겪게 된다. 내가 쏟아부은 만큼 애정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고 그 이상으로 과분한 애정이 돌아오기도 한다. 준 만큼 못 받는다고 서운해할 것은 없지만 가끔 더 많이 받게 될 때는 정말로 황송한 마음마저 든다. 너무나 절절할 것 같았는데 그대로 끝인 경우도 있고 기대치 않았는데 계속계속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이 예쁘다고 그 감정에 계속 묶여있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함께했던 소중하고 감사한 순간들의 감동이다. 살다 보면 귀한 만남들도 인연들도 의도치 않게 잊히고 이어가는 것을 놓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그 순간에는 의미가 너무도 컸던 인연들이 지속되지 않은다고 서운해할 것은 없다. 이렇게 순간순간 쌓여가는 감동과 기쁨의 조각들 그 자체가 의미로운 것이니 말이다.
이제 11월에 있을 두 번째 실습이 다가올 순간까지 이 무게를 잠깐 내려놓고 미루어 두었던 내 일들을 하러 간다. 한 고개를 잘 넘긴 홀가분함과 기쁨으로. 또 새로운 일상에 대한 익숙한 편안함과 설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