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es
누군가 물었다. 사막에서 일하는 것과 극지방에서 일하는 것 중 하나만 고르라면 무엇을 택하겠냐고. 극과 극의 상태에서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어렵다. 이 질문이 나온 것은 책 구덩이, Holes의 주인공 스탠리가 사막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 고가 도로 아래를 지나가다 떨어진 스니커즈 두 짝을 들고 스탠리는 달린다. 낡은 스니커즈로 실험을 하는 아버지 생각이 나서 갖다 주려고 한 것이다. 급하게 달리는 스탠리를 수상하게 생각한 경찰이 스탠리를 체포한다. 그런데 그 스니커즈가 바로 유명한 운동선수 리빙스턴이 자선모금을 위해 기증했던 것임이 밝혀지고 스탠리는 유죄 판결을 받는다. 정직하게 말해봤자 소용이 없었고 감옥에 가거나 캠프 그린레이크에 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다.
말은 Green Lake이지만 실제로는 물 한 방울 없는 메마른 땅. 텍사스에는 실제로 이런 사막이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스탠리는 매일매일 삽 한 자루 길이의 깊이만큼, 너비만큼 구덩이를 파야 한다. 단순하게 구덩이를 파면서 머리를 비우며 불량 청소년들을 교도하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캠프 소장이 뭔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걱정하실 부모님께 편지를 쓰는 스탠리는 캠프엔 온 아이들 중에서도 좀 독특하지만 그럭저럭 강자에게 숙이며 나름의 적응을 해 간다. 글을 배우고 싶었던 흑인 소년 제로는 구덩이를 파는 속도가 느린 스탠리에게 글을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하며 대신 구덩이를 한 시간 동안 파 줄 것을 제안한다. 모두가 멍청하다고 무시를 한 제로는 사실 배움의 기회가 없었을 뿐, 영리한 아이였고 그렇게 스탠리와 제로는 우정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둘의 관계를 다른 아이들은 못마땅하게 여겼다. 캠프 진행요원들에게서도, 캠프 아이들에게서도 무시를 받던 제로가 견디지 못하고 폭발해 사고를 내고 사막으로 도망가 버리자 스탠리는 고뇌에 빠진다. 저대로 두면 제로는 죽을 텐데. 하지만 캠프 소장과 요원들은 제로의 기록을 삭제하고 없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한다. 수색대를 보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결국 스탠리 역시 사고를 치고 제로를 찾아 사막으로 향한다.
우연히 제로를 발견한 스탠리는 제로에게 돌아가자고 설득하지만 제로는 차라리 여기서 죽겠노라고 버틴다. 그대로 둘 수도 없는 스탠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Big Thumb을 향해 제로와 함께 발걸음을 옮긴다. 이 죽을 것 같은 황무지에서의 여정을 어찌나 세밀하게 묘사하는지, 그 갈증이, 그 고통이 생생하게 들어온다. 혼자라면 가지 못할 길을 둘이라서 어떻게든 간다. 메마른 호수 바닥을 건너자 이제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등장한다. 직선도 아니고 이리저리 돌아가야 하는 험난한 길이다.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한 아이들은 보트 아래서 발견한 백 년 전의 복숭아 절임을 먹는다. 상했는지 어쩐지 상관없이 뭐라도 먹어야겠으니 말이다.
그러다 결국 제로가 쓰러진다. 백 년 전에 만들어진 복숭아 절임은 제로에게 힘을 주었지만 동시에 격렬한 복통과 구토를 수반하게 했다. 쓰러졌다 걸어가다를 반복하던 제로는 결국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이 제로를 스탠리는 어깨에 들어 올리고 걷기 시작한다. 스탠리가 이토록 절박하게 큰 엄지를 향해 걸어가는 이유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 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 때문이다. 황무지에서 강도를 만났던 고조할아버지는 큰 엄지 아래에서 살아났다고 한다. 큰 엄지가 무엇인지는 할아버지도 기억이 안 난다는 황당한 이야기. 그런데 어쩐지 할아버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저 큰 엄지가 이 큰 엄지 같단 말이다.
힘도 거의 빠져서 탈수 직전의 스탠리는 제로를 둘러메었기 때문에 이제는 발 밑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He couldn't see his feet, which made it difficult to walk through the tangled patches of weeds and vines. 발 밑에는 잡초와 가시덩굴이 엉켜 있어 헤치고 걸어가는 것이 몹시 어렵다. He concentrated on one step at a time, carefully raising and setting down each foot. 그러니 조심조심 한 발씩 들어 올려 걷는 수밖에 없다. He thought only about each step, and not the impossible task that lay before him. 저 앞에 있는 목적지까지 가는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 그저 한 발자국을 떼고 옮기는 것만 생각한다.
Higher and higher he climbed. 그렇게 조금씩 더 높이, 더 높이, 스탠리는 올라갔다. 이제는 깊숙이 안쪽 어딘가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힘이 오는 것 같다고 여겨진다. His strength came from somewhere deep inside himself and also seemed to come from the outside as well.
그리고 그렇게 포기하지 않았던 그 걸음걸음이, 이제는 정말 아닌가 싶었던 그 마지막 순간에 보이지 않던 희망을 보여주었다. 아무것도 아니게 될까 봐 마음은 무겁고 길은 막막하다. 희미한 빛조차 보이지 않는데 겨우겨우 벌레의 습격을 벗어났더니 이제는 가시덩굴이 발을 찌른다. 저 멀리 있는 큰 목표는 생각도 못하겠고 내 어깨에 있는 친구는 죽어간다. 그래도 한 걸음을 옮기는 것에만 집중했다. 결과로 얻은 것이라고 해야 고작 진흙투성이 물이다. 죽어라 고생을 했다고 뭔가 굉장한 결실이 바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약간의 결실은 다시 힘을 주고, 그 힘으로 조금 더 일어나서 조금 더 찾아보고 나아간다.
루이스 섀커의 소설 Holes는 세 개의 이야기가 과거와 현실을 오가며 절묘하게 이어지는 퍼즐 같은 즐거움이 있는 소설이다. 너무 재미있어서 번역이 되기도 전에 원서로 읽었다는 이 책은 세 번째 읽는데 읽을 때마다 새로운 힌트를 찾게 되어 나도 모르게 'Ah moment'(아 하는 순간)을 갖게 된다. 혼자 사막에서 헤매다 죽는 것은 그러려니 하지만 남겨질 부모님이 너무 걱정이 되어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스탠리를 보면서 나도 생각한다. 나도 일단 내 앞의 한 걸음만 생각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