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막 커튼을 영어로
"이제 좀 안심이 되는구나."
'초원의 집'에서 새로 이사 간 집에서 커튼을 달고 난 뒤에 로라 엄마가 하는 말이다. 로라네 가족이 새로 이사 간 집은 주위에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인 초원 한가운데였다.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 주위의 시선을 가리기 위한 용도로서 커튼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특정 누군가의 시선에서 나만의 공간, 나만의 사생활을 지키고 싶은 것은 같은 마음인가 보다.
새로 이사 온 집은 3층. 앞 뒤로 감나무가 있고 완전히 투명한 창문도 아니고 베란다로 한 겹 씩 둘러싸여 있으니 나 역시 시선에 직접적으로 노출이 된 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사 오자 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커튼을 빨아서 단 것이다. 제일 먼저 거실에 달았고 다음으로는 안방과 작은 방 두 곳에 달았다. 방들은 그렇다 치고 예기치 못했던 공간에도 커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사 와서 알게 되었다.
바로 주방이었다. 이전에 있던 집 싱크대 위에는 상부장이 달려 있어 시선이 차단되었는데 여기는 통창으로 되어 그대로 보이는 공간이란 것을 깨달았다. 소위 '바란스'라고도 불리는 상단에 고정하는 커튼이 필요했다. (정확하게는 밸런스balance라고 무대 위편에 가로로 길게 놓인 커튼을 생각하면 된다.) 그냥 사도 되지만 이왕이면 집에 있는 커튼을 활용하고 싶었다. 예전에 블라인드가 고장 나면서 천으로 된 부분만 따로 보관한 블라인드용 커튼이 있었다. 다 쓰기에는 컸기에 반으로 쓱쓱 잘라서 끝을 대강 손바느질로 마무리하고 봉이 들어갈 만한 공간도 바느질했다. 현주 작가님처럼 재봉틀을 잘 다루면 좋겠지만 그냥 급한 대로 손바느질도 할만하다.
기 주문했던 압축봉이 파손되어 배송되었기에 새로 주문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튼튼한 것으로 한다고 했는데 그랬더니 바느질 사이로 봉이 들어가지 않았다. 뜯고 다시 하기엔 힘도 없고 시간도 없고 눈물이 난다. 하여 남은 반을 이번에는 크게 크게 여유 있게 바느질해서 공간을 만들고 끝단 처리까지 했다. 찍찍이로 붙여도 되는데 굳이 압축봉에 끼운 것은 커튼의 가로가 창문보다 길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디자인과 재질이라서 두고두고 쓰고 싶었다. 둘째는 보더니 "구려!" 하고 외쳤다. 할머니 집에 가면 있을 듯한 디자인 같다는 것이다. 뭐, 내 집이니까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했다. "내가 세대주고 내 이름으로 이자를 내고 있으니까 내 맘이야! 굳이 원한다면 네가 커튼을 사 오렴."이라고 했더니 "흥!" 하면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둘째의 방에는 본인의 취향을 반영한 하얀색 옅은 시폰 커튼을 달아주었다.
마지막으로 남자아이들 방에는 블라인드를 하나 달아주기로 하고 주문을 마쳤다. 빛에 예민한 신랑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암막 커튼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덕분에 비용도 거의 들지 않았다. 새로 산 것은 커튼 봉 2개와 시폰 커튼 한 쌍, 블라인드 하나뿐이다. 그렇게 열심히 커튼과 블라인드 작업을 하다가 문득 우리말 '암막'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암막 커튼은 영어로 blackout curtain이라고 한다. 가끔 우리말 단어와 영어 단어의 뜻이 일대일로 맞는 경우도 있고 다른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암막'은 빛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방 안을 어둡게 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검은 막 혹은 두꺼운 장막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말 암막커튼은 순수하게 그대로 검은 막 커튼이라는 의미이다.
일단 영어 단어 blackout, 블랙아웃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용어이다. 일단 제일 익숙한 상황은 음주에 관련된 것이다. 술을 과도하게 마시고 정신을 잃을 때, 기억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소위 '필름이 끊긴다'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이때 쓰는 영어 표현이 블랙아웃이라고 한다. I blacked out last night. (어젯밤에 필름이 끊겼어.)
또 정전일 때도 blackout을 쓴다. 영어 사전에서 blackout을 치면 제일 먼저 등장하는 뜻이 바로 이 '정전'이라는 뜻이다. 조금은 낯선 '등화관제'라는 말이 있다. 전시 중 야간 공격으로부터 시선을 차단하기 위하여 일정 시간, 일정 구역의 조명을 제한하는 행위인데 이 역시 블랙아웃이다. 정부나 경찰에 의한 보도 통제 및 정지도 블랙아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blackout의 본래 의미는 전기 공급이 끊겨서 정전이 된 상태를 가리킨다. 이를 비유적으로 사용해서 두뇌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필름이 끊어진 것처럼 사용해서 우리는 '필름이 끊긴다'라고 말하는 것이고. 지금은 디지털화되었지만 예전 시대에는 영사기로 필름을 돌리면서 영화를 상영했고 여러 번 상영하다 보면 필름이 닳거나 망가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때 망가진 부분을 잘라내고 이어 붙여서 상영했는데 당연하게도 잘라낸 부분의 내용은 알 수 없기 때문에 필름이 끊긴다라는 말은 (존재했지만) 기억에 없다, 알지 못한다의 의미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암막커튼은 정전을 하듯 모든 외부의 빛으로부터 차단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커튼을 말한다. 호기심으로 검색해 보니 블랙아웃커튼의 장점이 무려 다섯 가지나 있다. 수면의 질 개선, 사생활 보호, 소음 감소, 에너지 효율, 눈부심 방지까지! 그래도 아침에 일찍 아이들과 일어나서 출근하려면 역시 나는 일반 커튼이 좋다. 그러니 암막커튼은 당분간 없어도 되는 것으로!
구글에서 알려주는 암막커튼의 장점들 (benefits)
Improved sleep: By blocking out light, they can help you sleep better, especially during the day or in cities with light pollution. This is particularly useful for babies, shift workers, or light-sensitive sleepers.
Enhanced privacy: They provide a high level of privacy, as they prevent people from seeing through the window.
Noise reduction: The thick, layered fabric can also help to muffle some external noise.
Energy efficiency: They can provide a moderate level of insulation, helping to keep a room warmer in winter and cooler in summer.
Reduced glare: They are effective at reducing glare on screens, making them suitable for media rooms or home offi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