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에게 엄격한 엄마였다. 다정함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섣부른 칭찬으로 교만해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싶었을 뿐이다.
야구를 잘 하던 아들은 중학교 두 곳에서 콜을 받았다. 고등학교 감독님들은 중학교 경기를, 중학교 감독님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의 경기를 보시면서 각 학교의 상황에 필요하거나 마음에 드는 학생들을 지명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들었다. 그 소식에 뜻하지 않게 기뻤지만 아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다른 아이들에게 자랑을 해서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또 마음이 높아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무룩한 표정으로 아이가 말했다.
"엄마, ㅈㅇ이는 ㄱ중에서 콜 받았다고 하고 ㅅㅇ이도 콜 받았다고 자랑해."
놀랐다. 모든 부모님의 마음이 나와는 다르겠지만 다른 야구부 친구들에게 자랑하면서 말 할 일인지는 몰랐다. 항상 겸손하기를 바라서 잘해도 조용히 칭찬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에게는 으스대지 말라고 당부하곤 했었는데. 그래서 나도 말해 주었다.
"사실은 너도 콜을 받았어. ㄱ중이랑 ㅅ중 감독님 두 분이 보내달라고 하셨대. 그런데 엄마 마음에 우리 아들이 교만해질까봐 말하지 않고 있었어."
아이는 그제야 안심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휴. 다행이다. 나는 내가 너무 못해서 아무데서도 나를 안 부르는 줄 알았어."
그럴리가. 우물 안 개구리지만, 객관적으로 우리 아들이 지금 초등학교 야구부에서는 제일 잘했다. 아. 물론 각자의 포지션이 다르니 포수나 타자와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투수로서는 정말로 손색이 없었다. 선발로 나가면 승리 투수였고, 선발이 아닌 경우에서도 위기 상황에서 난관을 타개하고 매듭을 말끔하게 짓는 구원투수였다. 다만 다른 부모님들이 옆에서 잘한다 잘한다 칭찬하시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니 굳이 나까지 나서서 그 마음을 높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아들은 콜을 받은 ㅅ중학교로 가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고된 훈련.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늘어난 통학 거리와 시간. 피곤한 아이를 깨우고 아침에 데려다 주고서야 출근을 한다. 최소한 40분은 더 걸리다 보니 나도 같이 힘들었다. 거기에 더하여 야구부 클럽 하우스 청소와 식사 당번도 돌아가면서 해야 했다. 모든 것에 야구부 일정이 우선이었다.
그럼에도 아이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기쁨이었다. 초등학교 만큼 경기가 많지는 않았지만 간혹 있는 저학년 경기에서 아들의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타자로 나설 때는 5~8번 순으로 나가서 잘 거르고 잘 쳤다. 투수로 나갈 때는 깔끔하게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간혹 앞의 친구가 노 아웃 만루 상황으로 만들었을 때도 1점 정도만 내어주거나 무실점으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무리 없이 2학년이 되고 3학년이 되어 고등학교까지 야구선수로 진학하겠거니 생각했다.
다만 아이가 기초적인 공부를 할 시간이 없는 것은 좀, 많이 아쉬웠다.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수업 시간에 공부한 것만으로 시험을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험을 보면 평균 70정 정도 나왔다. "한 시간 씩만 더 했어도 좀 더 잘 했을 것 같아."라는 말을 한 지 일 주일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곧 동계 훈련이었다. 집을 떠나서 한 달 정도 동계 훈련이 1월부터 시작된다. 동계 훈련이 시작되기 전에 나는 아이와 한 번은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었다. 한국의 엘리트식 교육은 한 가지에만 몰두하게끔 정말 혹독하게 단련한다. 밤 10시, 11시에 귀가하는 아이들에게 다른 여가나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주말에도 훈련과 경기가 종종 있으니 십대의 모든 생활이 야구 하나뿐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이는 야구를 그만 두겠다고 말했다. 사실은 계속 고민을 했다고 했다. 너무 빠른 결정에 내가 놀랐다. 최소한 일주일이라도 고민을 해 보길 바라는 마음에 일단 시간을 두고 생각하자고 했다. 우연하게도 그 다음 날은 내가 야구부 당번을 하는 날이었다. 열심히 설거지 마무리를 하는데 감독님이 부르셨다. "어머님, 저랑 잠시 이야기 좀 하시죠." "네?" 그렇게 마음의 준비 없이 갑자기 감독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지금 그만 두기에 너무 아깝고, 장학금도 생각하신다는 부분까지 들었다. 나도 아까웠다. 무엇보다도 지금 그만 두면 다시 시작하기 어렵다는 것이 제일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런데 아이는 생각보다 단호했다. 한 번 결정을 내리자 번복이 없었다. 나에게는 고민이 현재진행형이었는데 아이에게는 이미 과거형이었다. 생각해 보니 축구 선수 생활을 그만 둘 때도 그랬다. 아쉬웠던 것은 나뿐. 그 때도 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선수를 그만 두었다.
확고했다. 초등학교 감독님과 코치님을 만나서 상담을 받아도 변함이 없었다. 담임 선생님도 만났다. 결국 아들은 결정을 내린지 일 주일 째 되는 날 포기 각서를 제출했다. 같은 날 오후 야구부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짐을 빼고 그렇게 정말로 야구부 생활을 정리했다. 아이는 괜찮은데 내가 힘들었다. 나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나고 심란했다. 4년 가까이 야구에 쏟은 시간과 애정은 아들의 것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최소 2주 정도는 그렇게 가라앉지 않는 마음으로 생활을 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실연하는 아픔 같았달까.
이성으로는 알았다. 지금 그만 두는 것이 낫다는 것을. 전국에 야구하는 중학생이 최소 1300명. 그 중에서 100명만 프로 야구 선수로서 생활을 시작한다. 그렇게 지명을 받아도 앞으로의 여정은 불투명하다. 아들에게 개인 레슨을 해 주시던 코치님들 모두 전직 프로야구 선수였지만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그만 둔 경우였다. 심지어 전국 13위 타자인 고등학교 선배도 지명을 받지 못했으니 이 얼마나 가혹한 세계란 말인가. 그렇게 치열하게 노력을 해도 할 일이 없다는 것은 너무 슬픈 현실이다. 그러니 잘 안다. 지금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맞다는 것을. 다만 정리하는데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생각보다 더 많이.
아이는 2주 가량을 좀 느슨하게 있었다. 밀린 공부를 위해 학원을 가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자 엄마와 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아들의 개인 과외가 시작되었다. 중학교 1학년 1학기 수학과 영어를 하루에 각각 2시간 이상씩 가르쳐 주다 보면 가끔 스트레스가 치솟았다. 왜 분배법칙을 이상하게 적용하는지, 현재진행형과 미래를 표현하는 be going to를 왜 자꾸 혼동하는지. 헷갈려하는 부분의 설명을 반복하다가 나도 모르게 화를 낼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엄마랑 공부하겠다고 하고 과학은 인강을 들으면서 중학교 1학년 내용을 다시 공부하고 있다. 그만 두겠다고 하고 다시 야구부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아이는 "절대 아니야."라고 했다.
그 속내를 나도 잘 몰랐는데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피아노 레슨을 받는 영상을 같이 보다가 아들이 불쑥 말했다.
"쟤도 언젠간 그만 두겠지."
"아니 왜? 잘 하는데!"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짓눌러서 견딜 수 없을 때가 올 거야."
그랬구나. 좁은 길에 대한 막막함이 너를 눌렀구나. 어쩌면 가을에 큰 부상을 입었던 것이 또 다른 원인이었을 수도 있겠다. 투수 형이 던진 공에 눈을 맞아 안과와 정형외과를 몇 번을 방문했는지 모른다. 부어오른 눈을 보면서 시신경에 손상이 있을까 얼마나 초조했는지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항상 있는 부상에 대한 두려움과 잘해도 보장받을 수 없고 알 수 없는 그 막연한 미래에 대한 막막함. 계속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을 그 마음이 더 와 닿았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노력한다.
퇴근 후 아이와 저녁을 준비하고 집안 일을 마친 후 함께 앉아 공부를 한다. 내가 해야 할 다른 일들을 내려 놓고 아이가 문제를 푸는 과정을 지켜 보며 피드백을 준다. 내일 엄마가 일하러 간 시간 동안 해야 할 과제를 내 준다. 날마다 반복되는 이 길이 쉽지는 않다. 그래도 같이 간다. 하루는 나도 뻐기듯 말했다.
"이거 시간 당 최소 3만원 짜리 과외다."
아들이 지나가듯 쓰윽 말한다.
"나중에 잘 할게요."
그렇게 야구와 함께 했던 4년의 시간이 지나간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봄이 시작된다. 힘겨웠던 겨울이 어찌어찌 지나가고 오늘은 햇살이 참 따스한, 그런 완연한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