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속해 있는 초등학교 야구부는 지는 경우가 많았다. 어쩌다 이기면 그날은 축제 분위기였다. 정말 가뭄에 콩 나듯 겨우겨우 그렇게 한 번씩 이겼고 대부분은 "오늘도 졌어."가 당연했다. 이기는 것이 욕심인 것이 당연했다. 올해 6학년은 7명. 그 중에서 야구를 제일 오래한 아이도 그래봐야 2년 남짓. 심지어 세 명은 아직도 채 만 2년이 되지 않는다. 거기에 함께 가야할 5학년은 2명 뿐이다. 다른 저학년들도 학년 마다 두 세 명씩이니 정말 인원이 적다.
그런데 올 가을 고학년 야구는 패전보다 승전의 소식이 더 자주 들려오기 시작했다. 6주간 강원도를 정말 자주 갔다. 10월 동안 세 번, 그리고 이제 끝인가 했는데 11월 들어 2주 만에 또 인제에 다녀왔다. 이제는 강원도의 각 군마다 어디가 맛집이고 어디가 좋은 숙소인지 훤히 꿸 정도로 2년간 강원도를 수없이 들락날락했다. 아예 회원 가입해서 포인트까지 적립하는 카페까지 있을 정도이니 말 다 했다.
지난 번 경기에서 아들은 선발로 나가 무실점으로 3이닝을 깔끔하게 소화하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다른 친구들의 성장도 눈부셨다. 예전에 잦았던 수비 실책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상대편 투수의 공을 보고 볼인지 스트라이크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눈도 길러졌다. 투수로서의 성장만 한 것이 아니라 타격과 수비수로서의 실력도 성장했다.
아이는 오늘 타석에 네 번 섰는데 모두 타격을 잘 했다. 세 번은 안타를 쳤고 홈 베이스를 두 번 밟았다. 마지막은 땅볼로 잡혔지만 3루에 있던 친구가 홈을 밟아서 득점으로 이어졌다. 다른 친구들은 홈런을 몇 번을 쳤는지 모른다. 우리 아들만 아직 공식 경기에서 홈런 기록이 없는 것이 두고두고 아쉬워 했다. 4번 타자였는데 홈런을 치라고 감독님이 순번을 앞으로 빼주었는데 홈런에 근접한 타격을 하긴 했지만 결국 홈런은 나오지 않았다. 아쉬움은 그 뿐. 아이는 할 만큼 했기 때문에 나도 아이도 미련이나 별다른 아쉬움은 없다.
매번 지는 경기만 보다가 이제는 가끔씩은 압도적으로 이기는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유쾌한 경험이었다. 결국 들인 시간과 노력은 보답을 받는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기도 하다. 하루에 보통 서너 시간을 연습하니576 3시간이라고 해 보자. 학교에 오는 날은 평균 192일. 그러니 576시간이다. 거기에 방학 중 훈련을 줄이고 줄여서 대강 6시간을 한다고 하면 (실제로는 그 이상이지만) 여름과 겨울방학을 합쳐서 40일, 240시간이다. 일년이면 800시간. 2년이면 1600시간을 야구에 쏟은 셈이다. 전문가가 되기 위한 일만 시간에는 턱없이 모자라다. 물론 누군가는 일만시간의 배신을 논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의 시간을 제대로 쏟아 붓는 다면 성과를 거두기 마련이다. 일만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은 최소한 10년. 그 중 대략 6분의 1을 지나는 지점에서 아이의 성장이 보인다.
계속 야구를 얼마나 더 할지는 모른다. 지금 예정되어 있는 중학교에서는 감독님이 작년에 아이를 보고 콜을 하셨다. 두 곳에서 콜이 왔고 그 중 한 곳을 정했다. 감독님의 선택을 받아 가는 것이니 잘 되었다고 현재 감독님은 말씀하셨지만 그럼에도 막상 진학 후 어떻게 될지는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번에는 회전근개에 손상이 와서 선발투수로 많은 이닝은 소화하지 않았다. 첫날과 마지막날 한 이닝씩만 백업으로 던졌다. 베이스에서 베이스로 가다가 손가락을 부딪혀서 오늘은 아예 구부리지도 못했다. 인대가 찢어져서 당분간은 손가락에 깁스를 하고 있어야 한다. 저학년 경기에서 상대편 투수는 라인 드라이브로 된 공에 얼굴을 맞아 구급차에 실려가기도 했다. 다행히 골절이거나 손상된 곳은 없어서 타박상으로 그쳤다고 하지만 정말 그 광경을 목격한 우리 모두는 마음이 너무 아파서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아이는 노력을 하고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우리집은 넉넉한 형편도 아니거니와 아이가 넷이나 되니 다른 가정처럼 비싼 개인 레슨에 고급 장비를 사 주며 지원해 줄 수도 없는 환경이다. 교육청에서 감독님의 월급을 지원하는 전임코치제가 아니었다면 야구는 꿈도 못 꾸었다. 거기에 부모가 야구를 잘 알아서 다른 집들처럼 코칭을 해 주지도 못한다. 그러니 아이가 스스로 해 나가야 할 몫일 뿐이다. 어느 때 그만 둘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묵묵히 걸어가는 아이의 길을 응원한다. 매번 지다가 가끔씩 이기는 경기를 보여주는 그 노력의 결실은 무엇을 하던지 또 나타날 것이라 생각하기에, 나 역시 아이의 길에서 힘을 얻고 용기를 내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