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스텔 Jun 29. 2020

오는 말이 고우면 가는 배달 빠르다

나를 지칭하는 말은 짜증 섞인 '저기요'와 웃음기 가득한 '라이더님'

대부분 사람은 타인의 말 속에 담긴 행간을 캐치할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 오죽하면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해)'라는 말이 생겼을까. 자신이 듣고 싶은 대답을 교묘하지만 누구나 알아 들을 수 있게 숨겨서 타인에게 전달한다. 그런데 그걸 그 답을 눈치 못 챈다? '넌씨눈(넌 씨X 눈치가 없니?)'이 되기 쉽다.


물론 이해 속도의 차이는 있다. 곰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한 친구는 의외로 그런 능력만큼은 귀신같이 발달해 놀라움을 안겨주는가 하면 모든 면에서 똑부러지는 다른 친구는 어쩜 그리도 느린지, 빠르면 다음 날 심지어는 며칠 뒤에 알아채는지. 더러는 내가 하나하나 해석해주면 그제야 영구 박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게 그 뜻이었구나” 하며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는 데는 지독히도 둔하지만, 희한하게 말 속에 담긴 뜻은 꽤나 명민하게 알아채는 편이라 무슨 뜻을 담아서 건네는지 정도는 기가 막히게 읽어낸다. 아마도 언론 홍보라는 본업의 특성으로 다져진 능력치가 아닐까. 기자가 원하는 지점을 일찌감치 파악해 정확하고 신속하게 답변 혹은 자료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민 커넥트를 하고 나서는 굳이 머리 써서 해석하지 않으려고 해도 알아채는 경우를 자주 만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사례 1. 


요즘 배민 라이더스로 주문하면, 주문 전표에 정확한 주소지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고객에게 전달할 음식을 받으러 가면 “라이더입니다. 음식 찾으러 왔습니다. (가격) 짜리입니다” 라고 해야 한다. 다만, 바쁠 때는 나도 모르게 "라이더인데 음식 찾으러 왔어요" 라고만 할 때가 있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저기요. 다음부터는 금액 먼저 말씀하실래요?” 

“아, 네. (음식을 받아가며 쓴웃음)” 


사례 2. 


어느 정도 자주 보면 얼굴을 익히게 된다. 사장님이나 나나 마찬가지다. 내가 들어갈 때부터 웃으며 인사를 해주신다. 일단 서로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바빠 보이면 나도 모르게 자리를 피하게 된다. 왠지 내가 앞에 서있으면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다.


“(웃으면서)라이더님, 여기 음식 나왔습니다. 잘 부탁 드려요!” 

“감사합니다.”


사례 1은 듣자마자 온몸으로 느껴진다. ‘배달이나 하는 여자’ 정도로 보고 하대한다는 뉘앙스가 마음에 팍팍 꽂힌다. 물론 나의 착각일 수도 있고, 그 의도가 아니길 바라지만 매번 갈 때마다 나를 지칭하는 단어가 짜증 섞인 ‘저기요’ 인 걸로 봤을 때 내가 받은 감정은 아마 맞을 것이다. 


직업에 귀천이 있나? 없다는 말, 실은 우리가 마치 계몽 운동하듯 그저 누군가의 신념만 담겨있고 실천은 없는 문장이라 생각한다. 의식적으로는 젠체하며 부정하지만, 우리 사회 속 사람들 무의식 속에서는 여전히 직업에 대한 귀천이 뿌리깊게 박혀있는 게 틀림 없다. 막상 시선을 받아보니 알겠다. 


솔직히 나도 마찬가지다. 하대 받으면 순간적으로 울컥 ‘저 이건 주말에만 n잡으로 하는 거고, 본업은 따로 있거든요?’ 라는 말이 목젖까지 차오른다. 그런데 왜 울컥하지? 나 스스로도 직업의 귀천을 따지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누군가의 멸시와 무시가 기분 나쁜 것도 있지만, 단순 배민 커넥트라는 직업만으로 나를 정의내려지는 것이 싫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각 사례에 언급된 음식점이 바빠서 그런 건 아니냐는 반문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사례1은 포장이 그리 어렵지 않은 빵집이고, 사례2는 장사가 무지하게 잘 되는, 요즘 유행하는 달걀을 이용하는 샌드위치 가게다. 내가 직접 다양한 가게를 돌아보면서 느낀 건 바쁜 가게가 훨씬 더 친절하다. 바쁘다고 해서 불친절 한 거 아니고, 한가하다고 해서 친절한 거 아니란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 역시 '친절한 집은 배달을 더 빨리 가야겠어!' 하고 기존에 가야 하는 동선을 꼬아가면서 배달하진 않는다. 배차 받았던 순서대로, 고객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배달하는 것은 절대 어겨선 안 되는 원칙이다. 하지만, 친절한 그 집은 나도 모르게 걸음이 조금 더 빨라지는 것 같다. 그리고 불친절했던 그 집은 아무리 배달 음식이 가볍고, 빨리 나와도 3번 배차 받을 걸 1번만 배차 받는다. 


내가 불친절 할 수 없으므로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작가의 이전글 n잡에 있어 꼭 필요한 세 가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