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채가 들려주는 영국 유학 이야기

1장 도전하는 자에게 허락되는 것

by 쪼꼬

Chapter 12. 도움닫기로 시작

무거운 이민 가방을 옮기고 이리저리 정신없이 이사를 마치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지만, 현실이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수중에 남은 5파운드의 압박감은 아주 무서웠다. 내일부터 무얼 먹어야 할지 몰랐다. 아니, 당장 오늘 저녁부터 말이다. 눈치도 없이 배는 고팠다. 민박집에서는 별도의 비용 없이 음식을 제공해 주고 있었기에 잘 느끼지 못했지만, 막상 혼자되니 먹는 게 문제였다. 잠시 후 노크를 한 집주인분께 집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들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그중에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밥솥은 포함되지 않았다. 보통 밥솥은 세입자들이 각자 준비한다고 했다.

'맞아, 여기는 영국이지. 밥솥이 없는 건 당연한 거구나.

또 한 번 깜깜해졌다. 엄마의 집안일을 자주 도와주긴 했지, 아직은 자취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아직 요리라는 것에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당황하고 있는 나에게 집주인이 제안했다.

"아직 밥 해먹을 기구들이 하나도 없으니까 원하면 100파운드에 우리랑 밥을 같이 먹는 건 어때요? 비용이 싼 건 아니지만 우리는 아기가 있어서 혼자 해 먹는 것보다는 잘 먹을 거야."

그의 말대로 100파운드면 싼 건 아니지만 지금 내가 만들어 먹을 재료들이나 주방 기구를 마련하면 아마 100파운드 이상 나올 것 같았다. 밥솥만 해도 가장 저렴한 것이 30파운드를 훌쩍 넘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바로 답을 줄 수 있는 총알이 사실 나에겐 없었다.

"한번 생각해 보고 말씀 드릴게요."

쿨한 척 기회를 열어두긴 했지만, 돈만 있었으면 당장이라도 그렇게 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고 생각을 해보았지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최후의 수단까지도 생각했다. 최후의 수단이라고 하면 보증금을 돌려받지 않는 대신 2달 정도만 머무른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정말 최후의 수단이다. 지금 당장은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사 먹을 돈도, 해 먹을 준비도 안 되어 있었기에 식사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집을 나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제야 정말 본격적인 유학 생활이 시작된 듯했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국제전화 카드를 들고 공중전화로 가서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엄마는 걱정 섞인 목소리로 나의 안부를 물었고, 나는 아주 담담한 척을 하며 통화하려 애를 썼다.

"밥은 먹었어?"

"네, 먹었어요."

"학원은 어떡하기로 했어?"

"환불이 안 된데요. 그냥 돈 버리느니 조금이라도 다녀볼까 생각 중이에요."

"그래. 돈 필요하면 엄마가 조금 더 보내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

어렸을 때는 누구보다도 무섭고 강한 엄마였는데, 아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아시고는 금세 소녀처럼 눈물을 흘리시는 엄마였다. 마음은 아주 무거웠고, 입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지금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는 당장의 식비도 해결할 수가 없었다.

"엄마, 정말 죄송해요. 한국 가서 제가 드릴 테니까 저 백만 원만 더 보내주실 수 있어요?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조금이라도 더 있어 보고 가려고요."


사실 백만 원이란 돈으로 많은 시간이 보장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당장의 생활비와 한두 달의 방값은 보장이 될 것 같았다. 집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것도 알고 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의 부탁을 냉정하게 뿌리치고 관두라고 말할 만큼 엄마는 냉정하지 못했고, 선뜻 백만 원을 입금해 주리라 약속하셨다. 마음속에서는 '그래, 백만 원 정도는 더 받아도 되겠지. 누나는 나보다 더 많이 썼잖아.'라며 나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


일단 추가 자금이 확보되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생겼다. 정말 한숨 돌렸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스스로 정해놓은 예산보다여유가 생겼지만, 비행기 표와 학비를 제외한 생활비로 200만 원이라는 금액도 살인적인 물가의 런던에서 넉넉한 금액은 아니었다.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나에게 있어서 이미 엄청난 도전이었기에, 아주 조금의 실패 정도는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추가 자금으로 남은 기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일만 남았다.


전화를 끊고 공중전화 부스를 나오자 눈앞에 보인 건 지난번 지원서를 받아둔 맥도날드였다. 배가 고파서인지 취업이 간절해서인지 나도 모르게 발길은 그곳을 향해 있었다. 이미 저녁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서인지 매장은 한산했다. 가장 저렴한 햄버거를 찾아 주문하고 음료는 주문하지 않았다. 햄버거를 먹으며 혼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한고비를 넘기고 난 후 내 손에 쥐어진 햄버거 하나가 세상에서 가장 여유로운 식사가 되었다. 여유로운 식사 중에도 직원들의 동태를 계속해서 살피게 되었다.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한국의 맥도날드와 어떻게 다른지 등등. 그렇게 그들을 관찰하면서 얼른 이곳에 취직해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무르기로 한 후에는 떠나야 할 때를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집으로 돌아와서 집주인 분에게 당분간 식사도 쉐어를 하겠다고 했다. 말하자면 하숙이 된 셈이다. 20만 원에 점심을 제외한 달 식비가 해결되니 나쁜 거래는 결코 아니었고, 기본 재료를 사는데 더 큰 비용이 들 것 같은 계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 맥도날드에 지원할 입사지원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양식이었지만 모든 것이 영어로 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담감이 들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적어 내려갔다. 신상 정보를 적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작성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경력까지 모두 작성한 후 한걸음에 맥도날드에 다시 방문하여 지원서를 제출했다. 지원서를 받은 매니저에게서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듣고 돌아서 집으로 왔다. 이제부터가 진짜 도전인 것 같았다. 한국에서 직업을 구하던 때처럼 ‘뽑아만 주면 뼈를 묻어 일하리라’ 각오를 다지는 나였다.


그렇게 나의 런던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직 일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학원과 집을 오가며 런던이라는 곳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학원에 다니는 루트를 찾아야 했다. 이미 한번 찾아가 본 학원이었지만,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그리고 가장 저렴하게 다닐 수 있을지 지도를 보며 연구했다. 런던은 어떤 교통수단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동 시간과 거리가 달라진다. 물론 비싼 비용을 내면 빠르게 갈 수 있지만 가난한 유학생에게 시간보다는 돈이 중요했다.


학원 주위에 유명한 곳들을 방문하는 재미로 하루하루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학원은 런던 중심에 있어서 대영박물관이나 내셔널 뮤지엄, 트라팔가 스퀘어 등 대부분의 관광지를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이 얼마나 행운인가! 오전 수업을 마친 후 나보다 오래 학원에 다닌 친구들에게서 주변 정보를 얻어 유명한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 여간 재미있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어찌 되었건 앞으로 한 달 동안은 식비와 교통비(monthly pass를 끊었으므로)는 거의 들지 않지 않는다. 시차 적응이 끝나가는 시점부터 런던의 매력에 푹 빠지기 시작한 나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는 동안 룸메이트도 구해졌다. 제주도 출신의 나보다 한 살이 많은 형이었는데, 서글서글하고 모나지 않은 성격에 나와 죽이 아주 잘 맞았다. 형 또한 런던이 처음이었고, 단기로 짧게 다녀가는 코스여서 주말이면 룸메이트 형과 함께 런던 여기저기를 구경 다녔다.


약 1주일 정도가 지났을까? 맥도날드에서 연락이 왔다. 집주인 분의 전화번호로 지원서를 써놨기 때문에 집주인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그 주 목요일 오후 3시에 올 수 있냐는 물음에 'Yes'라고 대답했다. 시간을 맞춰 맥도날드에 찾아가 알려준 이름을 댔다. 그녀는 지난번에 나에게 입사 지원 양식을 전해준 베버리라는 여자였다. 아주 뚱뚱한 여자가 사무실에서 나와서는 나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안내받은 테이블에서 잠시 기다리자 그녀는 어떤 동양인 남자를 데려오더니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 또한 오늘 나와 같이 면접을 보는 사람이었다. ‘첸’이라는 홍콩에서 온 남자아이였는데 나보다 두세 살 어렸고 성격은 조용한 듯했다. 베버리는 우리 둘을 앉혀놓고 면접을 진행했다. 첸은 옆에서 아주 유창한 영어로 베버리의 질문에 대답했지만 그들의 대화 중 절반 이상은 알아듣지 못했다. 이제 내 차례가 되자 베버리는 나에게 몇 가지 질문과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녀의 발음 때문인지 나의 듣기실력 때문인지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나는 아주 자연스러워 보이려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영어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면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well' 과 'you know'다. 이 두 표현 뒤에 굳이 어떤 표현을 붙이지 않아도 내가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서 'you mean......'을 포함시킨다. 이 세 가지 표현이면 대부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나는 이 세 가지 표현을 번갈아 사용하며 나의 미천한 영어 실력이 들키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무사히 면접을 마칠 수 있었다. 면접이 끝날 때쯤 베버리는 나와 첸에게 다음번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할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었고 수첩에 받아 적었다.


그렇게 면접을 마친 후 직원 매뉴얼 북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자 감격이 몰려왔다. 왠지 금방이라도 일을 하게 될 것만 같았다. 겨우 아르바이트, 그것도 맥잡이라 불리는 아주 힘든 일이지만 어쨌든, 나에게도 수입이라는 것이 생길 것 같았다. 수입의 정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매뉴얼 북을 펼쳐보자 또다시 영어라는 장벽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다. 아주 촘촘하게 적혀있는 매뉴얼 북은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어떤 내용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그에 더하여 한 가지 더 고민이 생긴 것은 막상 일하러 가서 마주치게 될 어마어마한 장벽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머지않아 현실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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