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채가 들려주는 영국 유학 이야기

1장 도전하는 자에게 허락되는 것

by 쪼꼬

Chapter 15. London Bombings

그렇게 여름이 되어 가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기차를 타고 복스홀역에서 버스를 갈아탔다. 버스를 타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평일 아침 출근 시간에 차가 막히는 것이 그리 어색한 일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도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통 신호와 상관없이 차들의 움직임이 거의 없다. 항상 기차나 버스의 정체에 관대한 영국인들이지만, 이날만큼은 지독한 차 막힘 때문인지 버스 안의 사람들이 기다리지 못하고 하나둘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다. 나 또한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앞뒤로 꽉 막힌 도로를 확인하고는 버스에서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버킹엄 궁전 앞의 호스 가드 주변으로 많은 경찰이 있어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고 학원을 향해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약 30분을 걸어 학원에 도착했다. 학원에 들어서자 선생님 중 한 명이 나를 맞았다. 나는 길이 막혀 늦었다고 설명하려 했으나 그녀는 내가 설명할 틈도 주지 않고 나를 교실로 인도했다. 교실에는 아직 도착하지 못한 학생들이 더러 있었다. 잠시 후 선생님이 우리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조금 전 킹스크로스역 근처에서 폭탄 테러가 있었습니다. 우선 부모님들께서 걱정하실 테니 모두 리셉션으로 내려가 각자 집에 전화를 걸어 안전하다고 알려주세요. 오늘 수업은 없지만 지금 집으로 가는 것은 아주 위험한 상황이니 안전해질 때까지 이곳에 머물러 주세요."


그랬다. 'London Bombings'이었다. 2005년 7월 7일 일어난 폭탄테러로 약 700명이 다치고 56명이 사망한 아주 심각한 폭탄 테러였다. 이슬람 계열의 소행으로 알려진 이 자살 테러 사건은 911 테러 이후 또 한 번 국제사회를 공포에 떨게 한 무서운 사건이었고, 그 사건이 일어난 곳에 내가 있었다. 킹스크로스역은 우리 학원과 불과 2.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아침 9시경이니 한국시간으로는 저녁이었는데, 부모님은 테러에 대해 아직 들은 바가 없는 듯했다.

"엄마, 저예요. 여기 사고가 났는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고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어, 알았어."

짧은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사실 이 전화를 할 때만 해도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지 못했다. 조금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카페로 내려가 뉴스를 시청했다. 뉴스에서는 내내 사건에 대해서 생중계를 하고 있었는데, 사태는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런던의 주요 지하철 2곳에서 자살 탄 테러가 있었고, 버스 한 곳에서도 동시에 폭발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버스였다. 30번 버스. 그날 오후 내가 타기로 한 버스였다. 나는 그날 오후 30번 버스를 타고 해크니(Hackney)에 있는 쇼핑몰에 갈 예정이었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폭탄테러 시간이 오후였다면? 아찔한 일이었다. 불특정 다수에게 일어난 테러였기에 누구라도 희생자가 될 수 있었다.


학원에서 추가 소식을 기다렸다. 아침 9시 반 정도에 도착해서부터 오후 4시가 다 되어서까지 학원 근처에 살던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학생이 학원에 갇힌 채 들려오는 소식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늦은 오후까지도 이제 안전하니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말을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선생님들에게 문의해보았지만, 아직 안전하지 않으니 조금 기다려보라는 같은 대답만 들려줄 뿐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학원에서 기다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었다. 런던 중심에 있는 학원이었기에 집보다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라는 판단이 들었다. 몇몇 학생들과 이야기하여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테러범을 소탕했다는 소식을 듣지는 못했지만, 아침 시간 이후로 몇 시간 동안이나 추가 위협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기에 학원 선생님들도 집으로 가겠다는 무리를 막지는 못했다. 다행히도 뉴스를 통해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는 운행 중이라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몇몇 학생들과 학원 문을 열고 나왔다. 거리는 평소와 180도 다르게 변해있었다. 아마 실제로 전쟁이 나면 그러한 광경일지 모른다. 거리는 텅 비어있었고 상점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제복을 입은 경찰관을 제외하면 거리에 행인이라곤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 우리는 버스를 타보려 했지만, 이 난리 속에 버스가 다닐 리 없었다. 게다가 이번 테러의 주 배경이 버스였으니 하는 수 없이 도보로 워털루역으로 향했다. 학원에서 걸어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거리였지만, 지금 우리의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경찰이 거리에 가드 라인을 설치하여 행인들이 지나다닐 길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그나마 조금은 안전하게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버스로 20여 분이나 걸리는 거리를 걸어 워털루역에 도착한 나는 기차에 오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영화에서나 볼만한 테러라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세계 제일의 도시 런던에서 말이다. 천만 다행히 나와 내 주변의 누구도 다치지는 않았지만, 공포 분위기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최근에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세계 곳곳의 테러 소식을 접할 때마다 그때의 두려웠던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아마 당시 런던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가 나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불특정 다수에 대한 테러는 해외에서 살면서 겪을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일 가운데 하나이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고 예방도 어렵다.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절로 생각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 참 안전한 나라이니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러한 일을 겪는 것은 아니고, 설령 이와 비슷한 일을 겪는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절망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위험(리스크)이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 때문에 무언가를 도전하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위험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전쟁 중 총알이 오고 가는 위험한 곳이 아니라도 말이다.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나 스스로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사고가 일어나려면 언제건 어디서건 일어날 수 있다.


정신없이 시작된 나의 어학연수 생활은 정말 다이나믹함의 연속이었다. 극단적으로 가난해 보기도 했고 남들이 겪어 보지 못한 위험에 놓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절대 맛보지 못했을 마음의 여유도 즐겨 보았고 영국이라는 나라에서 신나게 놀기도 했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난했기에 즐기지 못한 영국의 다른 면모도 많다. 이 기간에는 여행도 많이 다니지 못했고, 한 번쯤은 가볼 만한 축구경기장도 가보지 못했다. 심적인 여유보다는 물질적 여유가 없었기에


결국은 영국도 사람 사는 동네였다. 결국은 영어도 사람들의 언어였다. 한국에서와 다를 것은 거의 없다. 사람들을 만나고 운동을 좋아하던 나는 한국에서처럼 운동을 통해서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즐겁게 사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는 나였기에 그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런던이라는 곳에 적응하게 되었고 영어도 제법 익숙해졌다. 한국에서의 내가 영국에 와서 전혀 다른 내가 되지는 않았다. 무수히 많은 불안함과 두려움으로 소심해질 때도 있었지만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본래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나로 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디에서 누구와 사느냐가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사람 자체가 일순간에 바뀌지는 않는다.


무언가 완전히 다른 삶을 생각했다면 그건 착각이다. 사람 사는 것이 어디서나 똑같다고 하듯이, 살던 환경, 사귀던 사람, 사용하던 언어가 달라질 뿐, 삶의 방식은 내가 지금껏 가지고 있던 것과 같다. 나라는 사람이 외향적이고 활달한 사람이라면 조금 쉽게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 것이고, 내가 조심스럽고 신중한 사람이라면, 또 그 방식대로 천천히 차근차근 환경에 적응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 다 살아진다. 내가 적응하고 싶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시간은 인간을 살아가게 한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불편하고 불안하고 위험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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