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준비를 했다. 1년 동안 사용한 짐을 챙기려다 보니 상상 이상으로 엄청났다. 런던에 올 때 많은 짐을 가지고 오긴 했지만, 돌아갈 때는 그보다 배는 늘어 있었다. 항공 수화물의 허용 무게는 20kg으로 제한되어 지만, 감에 의존하여 무게를 가늠하기 어려웠던 나는 가지고 가야 할 것들을 빠짐없이 일단 이민 가방에 챙겨 넣었다. 다 챙겨 가서 공항에서 해결할 심산이었다. 이민 가방이 크게 부풀어 오르도록 한가득 짐을 실었다. 1년 동안 쇼핑을 많이 한 것도 아닌데 무슨 짐이 이렇게 많았을까?
짐을 싸는 일은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도 퇴근 시간과 맞물려 상당히 지체되었다. 5시 비행편이 예약되어 있었는데 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4시경이었다. 서둘러 항공사 데스크를 찾았지만, 런던 히스로 공항은 말 그대로 "full of people",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긴 대기 줄의 끝에 줄을 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대로 기다리다가는 비행기를 타지 못할 것 같아 안내원에게 내 비행편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나를 가장 끝 데스크로 데리고 가서는 서둘러 수속을 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일본인이었던 직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수속을 하기 위해 이민가방을 저울에 올렸다. 그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뭐? 50kg?"
이민 가방의 무게가 50kg였다. 제한 무게가 20kg이고, 유학생일 경우 추가로 20kg까지는 허용해 주지만 50kg 라니... 주변의 모두가 놀라 순간 정적이 흘렀다. 영국인 공항 직원이 이 상황을 보고는 이민 가방에 노크를 하며
"Hello! I know you are there. Come out now!"(여보세요! 거기 있는 거 알아요. 이제 나오세요!)
하며 장난을 쳤다. 그의 말대로 사람 하나가 들어가기에도 충분한 무게였다. 항공사 직원은 이 짐을 다 보낼 수는 없다고 이야기하며 서둘러 짐을 해결하라고 안내했다. 비행시간이 30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50kg의 짐을 정리해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나를 도와주기 위해 함께 간 친구와 공항 구석에서 이민 가방을 열었다. 우선은 무게가 가장 많이 나가는 학원 교재들부터 빼냈다. 빼낸 교제들은 친구가 우편으로 보내주기로 했다. 가지고 갔던 인라인을 다시 백팩에 매달아 기내에 가지고 타기로 했고, 두어 개의 두꺼운 옷을 입어 최대한 무게를 줄였지만 10kg을 줄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10kg을 빼고 있을 때 항공사 직원이 나에게 다가와 다급하면서도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지금 비행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더 지체하면 수속이 불가능합니다. 지금 서둘러 출발하면 비행기를 탈 수 있지만, 아직 정리가 덜 된 것 같으니 다음 비행기를 타는 게 어떨까요?"
"다음 비행기요? 다음 비행기가 언제인가요?"
"다음 비행기는 내일 오후 이 시간입니다."
하루를 더 런던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심란했다. 숙소도 모두 계산을 하고 나온 상황이라 민박집을 이용해야 하고, 이 무거운 짐을 들고 다시 시내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아득했다. 더구나 공항 한가운데서 진땀을 흘리며 짐의 무게를 줄이고 있었는데 말이다. 대답을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가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경유지를 변경하셔도 괜찮으시면 한 시간 뒤에 있는 도쿄 행 비행기를 이용하시는 것은 어떠세요?"
전화위복. 새옹지마. 일이 풀리려니 이렇게도 풀린다. 사실 런던에 오는 길에 오사카에 내려 하루를 머물렀는데, 짧은 시간이지만 경유를 하면서 여행도 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었다. 돌아가는 길도 오사카로 가게 되어서 더는 여행 할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도쿄로 가게 된다니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네! 좋아요!"
그녀의 제안에 당장 답을 하고는 서둘러 짐을 챙겨 수속을 진행했다. 기내에 들고 갈 짐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마음만큼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탑승권을 받아 들고 게이트를 지나 출국 심사대로 향했다. 어깨에는 여전히 무거운 짐이 지어져 있었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입국할 때와는 사뭇 다른 출국 심사대가 눈에 들어왔다. 심사가 입국만큼 까다롭지는 않아 보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국 심사대를 빠져나가려고 할 때, 터번을 두른 심사관이 나를 잡아 세웠다. 그는 나에게 여권을 보여달라고 했고 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여권을 내밀었다.
“저쪽으로 가세요.”
그는 한편에 마련된 방을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어리둥절했지만 그가 시키는 대로 그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가자 몇몇 사람들이 출국 심사관들과 이야기를 하며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나처럼 출국 심사에서 무언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곧이어 한 남자가 들어오더니 나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영국에 얼마나 있었죠?”
“6개월 있었습니다.”
“당신 비자가 8월에 만료됐군요. 8월부터 지금까지 영국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런던 여행을 했습니다.”
나의 이러한 대답에 그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했다.
“6개월의 학생비자가 모두 끝났는데 다시 비자를 받아서 들어온 이유가 뭡니까?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습니까?”
심문하듯 쏟아지는 그의 말에 나는 한순간 범죄자가 된 기분이었다. 지난 7월 발생한 런던 테러로 영국 전체가 비상에 걸렸고, 평소에는 입국심사만큼 까다롭지는 않던 출국 심사도 훨씬 더 강해진 것이었다. 이를 예상하지 못했던 나는 너무도 안일하게 불법으로 비자를 연장한 범법자가 된 것이다. 적어도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말이다.
“사실 영어 공부를 했습니다. 시험 일정이 잡혀 있어서 관광비자를 받았습니다.”
심사관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자 심사관은 비자에 관해서 한참을 쏘아붙였다. 강한 인도식 발음으로 그의 말 중 상당 부분을 알아듣지 못한 나는 상당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또 비행기를 놓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면 됩니까?”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그에게 화를 내자 그는
“정식으로 비자를 받아서 들어오세요. 그렇지 않으면 추방당할 수 있습니다.”
라고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지금 가서 비자를 받아오라고? 난 집에 갈건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그에게 다시 물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Get your flight!”(비행기 타세요.)
이 말을 남기고 그는 다음 사람의 여권을 살피러 떠나버렸다. 사실 내가 저지른 범죄 행위가 심각한 것도 아니었고 더구나 출국하는 상황이었으니 적당히 주의를 준 것으로 해석된다. 나처럼 불법으로 비자를 연장받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었으니 말이다.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그가 거세게 쏘아붙일 때는 쇠고랑을 차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잘 해결이 되었고 결국 나는 도쿄 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끝까지 쉽게 보내주지 않는 영국인 듯했다.
비행기가 이륙했고 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전함과 진한 아쉬움이 교차했다. 다시 이곳을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서글픈 눈물이 흘렀다. '마지막'이란 단어는 언제나 나를 슬프게 만든다. 무언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게 무엇이든 나를 더 집착하게 만드는듯하다. 특히나 공항은 이 세상에서 '마지막'을 가장 많이 간직한 곳일 것이다. 물론 마지막은 곧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지만 말이다.
이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런던의 밤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본 런던의 야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웨스트민스터를 바라보면서 생각한 City of Gold라는 표현을 또다시 떠올렸다. 영국은 정말 조명 하나만큼은 잘 관리하는 것 같았다. 한국이나 일본의 야경과는 다르게 어지럽거나 흐트러지지 않고 노란 불빛 하나 만으로 야경을 꾸민듯했다. 마치 한 사람의 작가에 의해 그림이 그려진 것처럼 통일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아름다운 모습이 작아질수록 아쉬움은 커져만 갔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도쿄에 도착해 항공사에서 제공해준 호텔 리무진을 타고 시내로 이동한 나는 호텔에 들러 짐을 푼 후 도쿄 시내로 향했다. 이미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거리는 많이 붐비지 않았고, 준비 없이 온 여행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이리저리 길을 물어 돌아다니기를 몇 시간 정도 했던 것 같다. 일본에서 내가 길을 물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나 역시 일본어를 할 줄 모르니 무언가 정보를 얻는 것이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은 낯선 곳에서, 귀에는 익숙한 한국 노래가 흐르는 이어폰을 끼고, 무언가 익숙하지 않은 장면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색함과 익숙함의 경계에 있는 듯했다. 여행은 아주 많은 부분에서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들어버리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1년 동안의 유학 생활, 그리고 앞으로 내가 걸어야 할 길.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과 이야기의 조각을 하나하나 맞추어 나가며 일본에서의 밤이 흘렀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말이 통하는 사람도 없는, 그래서 온전히 나의 의지에 의해서만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그날 도쿄의 밤은 타인들에 의해 정신적, 관념적 간섭을 받지 않는 마지막 날이 되었다.
이제 내일이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 많은 사람의 관심과 걱정 속에서 나만의 길이 아닌 모두가 바라는 길을 걸어야 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1년 동안의 해외 생활을 통해 나라는 사람이 많이 강해졌고, 이제는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해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어학연수를 통해 영어라는 무기를 가져서가 아니라, 많은 경험으로 나 자신이 무장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넓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수히 많다. 이 교훈 하나만으로도 1년의 노력은 충분히 보상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