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채가 들려주는 영국 유학 이야기

1장 도전하는 자에게 허락되는 것

by 쪼꼬

Chapter 1. 도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때는 2004년 여름이었다. 1년여를 만나오던 여자 친구에게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받았다. 우리는 단순히 만나고 있던 사이는 넘어서 있었다. 결혼을 전제로 서로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자는 제안이 이미 오고 간 사이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헤어지자는 한 마디로 서로의 관계를 정리하기에는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오빠랑은 아니야."


설마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사실 이별의 전조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잘 만나고 있던 두 사람 중 하나가 1년 넘게 해외에 다녀오겠다고 하면 이미 말 다 한 거 아닌가? 나만 몰랐고 나만 순진했다. 이별하기 3개월 전 그녀는 호주로 어학연수를 다녀오겠다며 떠났고, 정확히 한 달 만에 연락이 끊겼다. 두어 달이 지난 후 말도 안 되게 그녀가 귀국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를 만나러 달려갔지만 나에게 들려온 건 당연하면서도 냉정한 대답이었다. 이 이별이 나에게는 큰 변화가 되었다. 한동안의 방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걱정을 끼친 건 가족이었다. 나와 그녀의 사이를 탐탁지 않아하셨던 엄마는 당신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었음에도 자식이 아파하는 것을 보며 병이 날 정도로 함께 아파하셨다. 부모님은 그랬다. 나에게 있어 엄마란 존재는 언제나 무섭고 엄하신 분이었고, 당신의 뜻대로 나를 키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셨다. 나와 그녀의 사이를 뜯어말릴 때는 도무지 이해도 되지 않고 밉기만 하던 어머니였지만, 막상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가장 아파하는 것 역시 어머니였다.


아파하는 나에게 변화의 제안을 한 사람 또한 가족이었다. 바로, 두 살 위 누나. 누나는 집안에서 뭐든지 나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었다. 집안에서는 누나의 말만 잘 들으면 최소한 엄마한테 혼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특히나 스무 살이 넘어가면서 엄마는 먼저 대학에 간 누나에게 무한 신뢰를 보이고 있었다. 사실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4년제 대학에 간 것도 말하자면 전부 누나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별로 아파하고 있던 가을학기 시작 즈음에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누나가 제안을 했다.

"요즘 어학연수 1년은 기본이야. 내가 엄마 아빠한테 잘 이야기해 드릴 테니까 너도 어학연수 한번 다녀와."

사실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평소 (수학보다는) 영어를 좋아했고, 사실 동네에서 아르바이트로 학원 강사를 할 정도의 실력은 있었기 때문에, 영어가 내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어학연수가 나에게 절실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돈이 어디 있어? 누나 미국 갔다 온다고 돈 많이 썼잖아."

"나는 미국으로 가서 돈이 많이 들었는데, 영국은 돈 많이 안 들어. 내 친구가 지금 영국에 가 있거든, 근데 갈 때 100만 원밖에 안 가지고 갔다더라."

"100만 원? 100만 원 가지고 돼?"

"미국은 어학연수 가면 일을 할 수 없거든. 근데 영국은 학생도 일을 할 수 있어. 그러니까 100만 원 가지고 가서도 살 수 있다는 거 아니겠어?"


누나의 말을 반은 믿고 반은 흘렸다. 사실 아무런 고민을 해보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크게 마음에 와닿지도 않았다. 하지만 감동이 있지 않았다고 해서 법을 어길 수는 없었다. (누나의 말은 법이었기 때문이다. 가라면 가는 거였다.) 일단 누나가 말한 친구라는 분에게 메일을 보냈다. 보낸 메일의 내용은 단순하면서도 일반적인 것이었다. '어학연수를 저렴하게 다녀오고 싶고, 학교도 중간 정도의 평범한 학교였으면 좋겠다. 외국인들 많이 사귀고 싶으니 한국인은 없으면 좋겠다.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으면 도움이 되겠다.' 등등 처음 어학연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흔한 질문들이었다. 심각하게 고민한 것도 아니고, 진짜로 가려고 생각했던 것도 아니다. 누나도 다녀왔으니까, 누나가 다녀오라고 하니까 한번 물어나 보자는 생각이었다. 며칠이 지나 그분에게서 답장이 왔다. 대답은 솔직히 다소 성의 없어 보였다. 잠시 짬이 나는 동안 일을 해치운 것처럼 아주 간결하고 무성의한 답변이었다.

"먼저 어디서 공부할지 결정하시고요, 그다음엔 돈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얼마나 머무를 건지도 생각하시고요. 지금 수업이 있어 가봐야 하니 또 궁금하신 거 있으면 물어보세요."

큰 기대를 하지도 않았지만 너무 뜬구름 같은 답변이 돌아오니 오히려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시 메일을 보냈다.

"런던으로 갈 생각인데요, 저렴한 학교 하나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저렴한 학교는 얼마나 하는지......"

두 번째 회신 메일에서 내 안일한 마음가짐과 생각이 모두 그에게 간파당했다. 그는 아주 자세한 정보를 보내 주면서도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위험함과 안일함을 냉철하게 비판하였다.


"런던에 학교는 천차만별입니다. 저도 리즈(Leeds)에 있는지라 제가 추천드리기는 어렵겠네요. 한 가지 비밀을 말씀드리자면, 6개월 정도 어학연수한다고 영어가 눈부시게 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저의 예를 들어볼까요? 한국에서 나름 영어 좀 하는 편에 속했습니다. 외국인 친구도 만들고 영어학원 강사도 하곤 했습니다. 어학연수를 와서 시간이 조금 지나자 확실히 실력이 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6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 상황을 보면 아직도 영어는 많이 부족하고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주변에 1년 가까이 공부한 친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이고요. 주변에서 다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다녀오고 자연스럽게 영어가 느는 것처럼 보이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할 겁니다. 하지만 1년 다녀온 친구들, 물론 토익 성적은 늘었겠지만 영어실력은 글쎄요. 제 생각에 어학연수 1년이 영어실력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철저한 준비 없이 덤비는 어학연수는 이력서에 한 줄 적기 위해 1년 동안 시간만 죽이는 게 아닌가 싶네요. 큰 의지를 가지고 덤벼든 사람들도 6개월 1년이란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거죠. 사실 주위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와서 놀다가 가는 사람 부지기 수로 있습니다. 그들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만, 뚜렷한 목표 없이 덤비면 시간 낭비일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빨리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게 나중에 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네요.”


상당히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이야기였다. 순간 아주 큰 잘못을 하고 있던 어린아이처럼 움츠려 들었다.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다. 누가 봐도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남들 다 가는 어학연수 길에 오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아, 그렇구나. 안 되겠네.' 하고 나가떨어지면 나는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 것 같았다. 비록 시작의 결심이 확고하거나 굳은 의지가 있지는 않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의 근성이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왠지 모를 도전정신과 오기가 생겨 다음날 아침 해가 밝자마자 유학원으로 뛰어가기로 결심했다. 진지하게 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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