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채가 들려주는 영국 유학 이야기

2장 계획되지 않은 도전

by 쪼꼬

Chapter 20. 흘간의 뉴욕

반갑게 누나와 재회하고 3박 4일의 뉴욕 생활을 즐겼다. TV와 영화에서만 보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비롯해 911테러로 무너져버린 쌍둥이 빌딩, 그리고 '나 홀로 집에'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센트럴파크까지 뉴욕의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한때 프렌즈라는 미국 시트콤에 흠뻑 빠져 있던 때가 있었는데, 마치 내가 그 세트장으로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여행하는 동안 뉴욕이 확실히 매력적인 곳이라는 데 동의하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차갑고 삭막한 곳이었다. 빌딩은 높아 하늘을 바라보기도 힘들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저녁 늦은 시간 술에 취한 사람들에게만 무언가 신나는 일이 벌어지는 듯했다.


가 느낀 이런 느낌을 정작 뉴욕에 살고 있던 누나가 느끼지 않을 리 없었다. 뉴욕에서 처음 누나를 만났을 때 누나의 모습은 완벽에 가까웠지만, 누나의 생각은 그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누나는 Homesick(향수병)을 앓고 있었다. 항상 밝은 모습으로 나를 대해주었지만, 사실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내가 다녀간 후 누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귀국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런 누나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이미 해외에서 1년 이상 거주하면서 해외 생활이 어떠한지는 살아봐서 알 텐데, 이제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자 한국으로 들어온다는 게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흘 동안 누나와 함께 지내면서 누나가 보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경험한 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타지생활은 쉽지 않다. 익숙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설령 익숙해진다고 하더라도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몸이 아프거나 무언가 신상에 문제가 생길 때는 더구나 그렇다. 한국이라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들도, 외국에서는 최소한 두세 단계는 더 거쳐야 해결된다. 일단 문제를 설명하는 것부터가 도전이니 말이다. 대사관이나 영사관 및 각종 단체 곳곳에 있어 현지 교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는 있다지만, 실제로 해외에서 살다 보면 내가 직접 해결해야 할 일들이 수도 없이 많다. 어떻게 매번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이유로 해외에서는 향수병을 조심해야 한다. 향수병이 내 마음대로 조절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절한 대응으로 예방은 할 수 있다고 본다.


누나의 경험을 토대로 분석해보면, 첫 번째로 주변에 친구가 없었다. 누나는 같이 근무하던 교포인 Amy씨와 시간을 많이 보냈다. 하지만 정작 누나는 주변에 마음을 나눌만한 친구가 턱없이 적었다. 그 때문에 뉴욕이라는 도시를 늘 타지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던 같다. 반면 나는 런던에서 친구를 많이 만들어두었다. 운동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과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은 던이라는 생소한 도시를 편하게 느끼도록 해주었다. 향수병은 결국 외로움과의 싸움인데 나는 상대적으로 외로움을 덜 느끼고 살았다.


두 번째 포인트는 Vision의 차이이다. 누나는 뉴욕에 살면서 더 명확한 비전이 없었다. 뉴욕에서 자기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누나는 어느 정도 성공에 다가간 것처럼 보였지만, 더 큰 비전이 없었기에 그곳에서의 생활이 무료해졌을 것이다. 얼마나 오래 뉴욕에 살 것이며,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에 대한 명확한 목표 의식이 부족했다. 누나의 선택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면 누나는 그곳에서 그 목표를 분명히 이룰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막연히 기회가 되어 혹은 다들 다녀오기 때문에 해외로 나가고자 한다면(물론 그 도전만으로도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게 되어 성장할 것이라 확신하지만) 해외에서의 생활에 지치고 힘들어 향수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향수병에 대한 궁극적 치료는 귀국이다.


향수병에 걸리는 세 번째 이유는 언어이다. 선천적으로 언어능력을 타고난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국어를 구사하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우리가 모국어(Mother tongue)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히 엄마의 말이어서가 아니라, 본능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모국어는 엄마의 배속에서부터 들었던 언어인 만큼, 쉽고 편하게 알아들을 수 있고, 쉽게 전달할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모국어를 쓸 수 없는 곳에서는 모든 것이 불편하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내 생각을 이야기하기 위해 두세 번은 더 생각해야 하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하더라도 내 이야기의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해외에서의 시간이 길어지면 자연히 그 나라 말에 익숙해지지만, 단순히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만으로는 불편함과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스스로 불편함이 없을 만큼 현지 언어의 실력을 늘려야 한다. 현지 언어 실력을 우는 유일한 방법은 이미 앞서 설명한 '노출'이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노출)를 증대시키고, 꼼꼼한 계획하에 명확한 비전을 갖추는 것이 해외 생활을 지치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외국인 친구를 만드는 것을 권하고 될 수 있으면 한국인이 적은 곳으로 가라고 흔히 이야기하는데, 나는 어떤 목적이냐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언어능력을 키우기에는 외국인 친구만 한 것이 없지만, 사실 마음을 터놓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향수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주변에 다양한 친구를 두는 것을 권한다. 또한 그렇게 만난 다양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비전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나 자신의 머릿속에 비전을 각인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뉴욕에서 나흘간의 휴가 동안 누나와 함께 시간을 즐겼다. 누나는 여전히 나에게 친절하고 유쾌한 사람이었지만, 향수병 때문인지 누나의 말과 행동에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뉴욕이라는 세계 최고의 도시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아가고 있는 누나가 다시 한번 대단해 보이고 부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해서 가능하다면 이곳에서 함께 살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나 자신이 이미 런던에 푹 빠져 있었다. 뉴욕의 삭막함 때문에라도 서둘러 런던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누나도 나와 같은 느낌으로 향수병에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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