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와 작별 후 런던으로 돌아왔다. 런던에 도착하자 ‘집’에 온 느낌이었다. 하지만 계속 런던에 머물 수는 없었다. 방학이 끝나면 곧 돌아가야 했다. 그래도 이번 방문으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어느 정도 확실해진 듯했다. 뭐가 되었건 런던에서 살아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선은 런던에서의 취업을 1차 목표로 두었다. 취업이 되려면 런던에 있어야 했고, 런던에 머무는 동안 학생 신분을 유지하여야 하였기에 일단 추가로 어학연수를 하기로했다. 어학연수 기간이 마칠 때쯤엔 취업이 되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고, 여차해서 취업이 안되면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도 있었다. 물론 대학원 진학 비용의 압박이 있긴 했지만, 부모님께 한 번 더 도움을 청해볼 여지가 있었다.
아무튼 일단은 또다시 도전이었다. 익숙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또 한번의 도전을 시작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한 차례 어학연수를 마쳤기 때문에 사실 결정은 한결 쉬웠을지 모르겠다.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이미 한 번의 낯섦에 대한 경험으로 막연하게 겁이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런던에서 살기로 마음이 정해진 순간 그것은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처음 어학연수에서 느꼈던, 안되면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머릿속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더는 Do or Die(죽느냐 사느냐)의 게임이 아니었다. Do well(잘하기)만 남았다.
누구라도 갈림길에 서게 되면 망설이게 된다. 나약함이나 결정력의 부족 때문이 아니다. 그 결정으로 인해 야기될 미래를 모르기 때문이다. 갈림길에서 찰나의 결정으로 인해 큰 변화가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인생은 게임 속 상황과는 달리 한번 결정을 내리면 되돌릴 수가 없다. 더구나 그 결정에 스스로 책임도 져야 한다. 누군가의 말대로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이 크게 변하기도 하고 무거운 책임과 의무가 뒤따르기도 한다. 예를 들면 결혼과 같이 말이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껏 해왔던 결정을 돌이켜 생각해보자. 물론 몇몇 결정은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하고 후회를 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러한 결정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결정은 당신이 걱정한만큼 심각한 결론을 초래하지 않는다. 특히나 예상되는 이익과 손해가 비슷해서 그 결정을 내리기가 아주 힘든 경우라면 더구나 그렇다.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큰 차이를 가지고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일단 결정을 내리면 뒤를 돌아보거나 그 결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결정이 내려지는 순간부터 당신은 Do well만을 생각해도 모자랄만큼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사실 런던에서 살겠다고 결정하는 것이 나에게는 불확실함 뿐인 모험이었지만, 일단 결정을 내린 순간 그 결정은 나에게 있어 아주 당연한 것이 되었다. 이제는 잘하는 일만 남았다.
당신이 만약 어학연수나 유학을 두려워하고 있다면 무엇이 당신을 고민하게 만드는지 먼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금전적 부담일 수도 있고, 언어의 장벽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일 수도 있다. 혹은 세 가지 모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당신을 고민하게 만드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자. 그리고 그 부담에서 벗어날 방법도 찾아보자. 금전적으로 부담이 된다고 하면 지금 당장 일자리를 구해 돈을 모으자. 가고 싶은 국가를 선택할 때 일을 할 수 있는 나라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의외로 학생 신분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적지 않게 있다. 가까운 일본부터 멀리 호주나 뉴질랜드까지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국가들이 많다. 정부와 민간단체에서 진행하는 여러 프로그램으로 해외 유학을 지원받을 기회도 있으니 이 또한 찾아보길 권한다.
언어에 대한 두려움으로 망설이고 있다면 나는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한다. '일단 가라.' 수년 전 친한 친구를 영국으로 보냈다. 영어를 전혀 못 하던 친구였기에 어학연수나 유학 자체가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런던에 처음 도착해 걸려온 전화로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아 난색을 보이던 그 친구도 지금은 뉴캐슬 대학원을 졸업한 후 국내 최고 기업인 S 사의 터키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다. 일단 가보자. 한국에서 그 나라의 언어에 대한 두려움으로 망설이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그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다. 호랑이를 잡으려고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 아닌가!
위의 두가지는 그나마 쉬운 편이다. 가장 어려운 것이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일지 모른다. 당신의 나이가 얼마가 되었건,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루어낸 익숙함이 있다. 사람, 돈, 배경, 학벌 등의 익숙한 것들에게 이별을 고해야 한다. 해외에 나가면 그런 것들은 모두 필요가 없다. 전혀 모르는 사람, 전혀 모르는 공간, 전혀 모르는 환경과 마주치려면 두려움이 앞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신이 이루어놓은 익숙한 것들은 쉽게 당신을 떠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당신이 1년 정도 친구들 곁을 떠난다고 해도 주위 사람들이 당신을 영영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주위의 사람들이 당신을 그리워하는 만큼 돌아왔을 때 더욱 당신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당신이 이루어 놓은 것을 포기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더 다양한 익숙한 것들이 생기게 될 것이다.
뚜렷한 목표가 있고, 갈 수 있는 제반 환경이 갖추어져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도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계기가 어찌 되었건 당신이 도전을 시작한 그 자체만으로 이미 보상 받고 있다. 아무런 계획도 없었던,막무가내식인 나의 어학연수가 결국은 나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준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가고, 어떻게 살지에 대한 ‘How to’는 결국 새로운 비전을 준비하기 위한 준비운동인 셈이었다. 런던에서의 도전을 통해 얻은 새로운 목표들로 내 인생은 이전과는 아주 달라졌다. 무언가 변화의 시점에 서 있는 당신이라면, 비록 꼼꼼하게,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일단 길을 떠나 보길 바란다. 이야기 속 많은 주인공이 뜻하지 않게 길을 떠나게 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