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채가 들려주는 영국 유학 이야기

2장 계획되지 않은 도전

by 쪼꼬

Chapter 22. 다시 시작된 준비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런던 행을 준비했다. 4학년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졸업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런던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적어도 대학은 졸업해야 다른 기회도 생기기 때문이다. 학교생활은 여전히 신선할 것이 없었다. 4학년이 되자 후배 녀석들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듯했다. 당연히 학교생활이 재미있을 리 없었다. 어떻게든 학교를 빨리 끝내고 런던으로 가고 싶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런던에 갈 수 있을 법한 여러 가지 경로를 찾아보았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살펴보았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대부분 단기 연수 정도였고, 해외 취업을 지원하는 곳은 대부분 전문직을 우대해 주었다. 지역에서 열리는 취업 박람회를 이곳저곳 다녀보기도 했지만 아무 보증도 되어있지 않은 나를 어느 누가 선뜻 영국으로 가서 일해보라고 보내 줄 수 있겠는가? 당연히 별 소득이 없었다.


상황은 여의치 않았지만, 마음은 이미 런던으로 향해 있었다. 편법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4학년이 되면 학교 수업보다는 취업 우선이어서 교수님들도 학교 수업에 반드시 출석하도록 강요하지는 않는다. 일단 런던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현지 취업을 하게 되었다는 핑계로 2학기를 건너뛰기로 했다. 사실 수업을 한 학기 더 듣는다고 해서 큰 배움이 있지는 않겠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1학기가 마칠 무렵부터 주임교수님들을 찾아가 운을 띄웠다.

"영국에 알던 업체가 있어서 취업이 될 것 같습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바로 들어갈 생각입니다."

사실 지난겨울 런던에 다녀올 때도 교수님들의 배려로 몇 과목의 정규 시험 일정보다 앞당겨 시험을 치를 수 있었기에 이번에도 교수님들께서 융통성을 발휘해 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마침 졸업을 위한 학점도 거의 다 채워두었기 때문에 마지막 학기는 3개의 과목만 들으면 졸업이 가능했고, 3과목 모두 담임 교수님들의 전공 수업이었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담임 교수님들께서는 내 도전을 지원해 주셨다. 자 해외에서 어려운 상황이 많을 것이니 힘을 내라고 용기를 북돋워 주시기까지 했다.


운은 띄워졌으니 이제 진짜 준비를 해야 했다. 우선은 비자부터 해결하자. 영국은 생각보다 비자 발급이 까다로워 이미 한 번 학생비자를 받은 사람에게 또다시 학생비자를 주지 않는다. 미국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미 어학연수를 마친 사람이 시 학생비자를 신청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일이 다반사이다. 불법체류가 의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지난번 받은 공식적 학생 비자가 1년이 아닌 6개월로 짧았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IELTS 점수가 5.5점으로 낮아 추가 어학연수에 대한 명분이 있었다. 런던에서 알아 온 가격이 가장 저렴한 어학원에 록한 후 스쿨레터를 발급받아 비자를 신청했다. 첫 번째 어학연수보다는 금액도 거의 절반 이하의 수준이었고 기간도 1년으로 훨씬 길었다. 아무래도 모든 준비를 혼자 하다 보니 번거로움이 많기는 했지만, 이 또한 나름대로 경험이 되었다. 큰 무리 없이 비자가 발급되었고, 이제 진짜 일자리를 구해야만 했다. 사실 일자리가 구해지는 것과 상관없이 런던에 가는 것은 기정사실이었고, 일단 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 있었지만, 우선은 경우의 수를 넓히기로 했다.

영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인터넷 웹사이트가 있다. 04uk라는 웹사이트인데, 벼룩시장, 구인·구직 등 다양한 정보가 공유되고 있는 교민들을 위한 사이트였다. 현지 업체들의 지리적 조건이나 근무 환경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 서칭으로도 충분히 지원하고자 하는 회사를 추려낼 수 있었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할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도 일정 부분 규모가 있는 곳을 위주로 몇 군데를 정해서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던 와중에 TV에서 우연히 런던에 진출한 한국 기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신생 물류회사인 A사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는데, A사는 중소 스타트업 기업으로 런던에서 나름대로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는 기업이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A사의 런던 진출 초기부터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해 그들이 펼쳐온 신화적인 영업활동에 대해 아주 긍정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A사의 채용공고를 04uk에서 본 것이 생각난 나는 바로 이메일을 보내 지원 의사를 밝혔고 A사는 답신을 보내와서 인터뷰에 응하라고 하였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돌아가는 듯했다. 머릿속에서는 런던으로 가서 A사에 취업해 5년의 경력을 쌓은 후 영주권을 받는 완벽한 계획이 이미 세워져 있었다.


A사의 제안을 바탕으로 교수님들과의 협의가 끝나자 본격적으로 런던으로 갈 준비에 들어갔다. 지난번 여행으로 경비도 많이 사용했거니와 언제 보게 될지 모르는 친구들과 술 잔씩 기울이고 나니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지도 않았다. 엄마는 내 런던 행 결정에 ‘무슨 돈으로 갈 거냐?’며 걱정을 하셨지만, 나에겐 최후의 보루가 있었다. 바로 오토바이였다. 나름 애지중지하던 오토바이였지만 대의를 위해서 희생해야 할 순간이 왔다. 마치 김유신 장군이 말목을 자르듯, 나는 런던 행의 굳은 의지를 다지기 위해 오토바이를 팔고 그 돈으로 런던 행 비행편을 마련했다. 학원아르바이트로 모아둔 돈으로 당분간의 생활비를 충당하기로 하고 그 이후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랑하는 애마를 팔아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이 없지는 않지만, 당시에는 그만큼 굳은 결심이었고 실패하고 돌아오지 않겠다는 배수의 진과도 같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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