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개월 만에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게 되자 집부터 해결해야 했다. 이번에는 하이스트릿(번화가) 근처의 집을 구해 다른 유학생들과 방을 쉐어하기로 했다. 이렇게 집을 쉐어하게 되면 다소 신경이 쓰이는 일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지만 비용면에서 훨씬 절감된다. 일을 시작하게 되면 여유가 생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직은 아껴야 할 상황이었다.
집을 렌트하고 방을 쉐어하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번거로웠다. 다행히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은행 계좌와 SI Number(한국의 주민등록번호와 비슷한 사회보험 번호)로 세금 관련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을 채워 넣는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공고를 올려서 쉐어할 사람을 구하면 되지만, 매월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이 있는 반면, 잠시라도 사람이 구해지지 않아 방을 놀리게 되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되었다. 상당한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방이 비어있지 않게 유지하는 것과 렌트한 집의 유지 관리가 중요한 부분이었다. 한국인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방을 채웠지만, 때에 따라서는 외국인을 받아야 할 때도 있었다. 생활방식이 우리와 다른 외국인과 함께 지내는 것은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생각처럼 쉽지 않다. 비록 처리해야 할 행정업무가 많고 신경 쓸 것이 많았지만 확실히 렌트를 하면서 비용적으로는 많은 이득을 보게 되었다.
A사와의 예정된 인터뷰를 위해 회사로 찾아갔다. A사는 런던 외곽에 있어 교통편이 좋지 않았다. 물류회사의 특성상 차고지와 창고를 가지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임대료가 저렴한 곳에 자리한 듯했다.직원의 안내에 따라 사무실로 들어가 담당자를 기다렸다. 역량 있는 회사라는 평을 받고 있었기에 내심 기대가 되었다. 잠시 후 인터뷰를 보기 위해 담당자가 왔는데, 다름 아닌 A사의 대표이사였다. 그가 자신을 소개할 때 이미 TV에서 본 그의 얼굴을 내가 먼저 알아보았다. 면접이 진행되고 그는 내 이력서를 살펴보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일반적 신상에 대한 질문을 던진 후에 그는 A사와 이곳의 환경에 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일은 아닐 수도 있어요. 그리고 당신이 생각한 미래가 되지 않을 수도 있고요. 이쪽 일이 상당히 터프 하다는 건 알고 있나요?"
사실 물류회사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어머니께서 콜벤을 운영하실 때 잠시 도와준 적이 있을 뿐이었다. 그가 설명한 물류회사는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16시간 이상 일을 해야 하고 특히나 중소기업이었기 때문에 여러 분야의 일을 모두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정해진 퇴근 시간도 없다고 했다.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각오를 한 상황이지만, 결정적인 것은 다른데 있었다.
"지금 비자가 학생비자네요. 학생비자가 끝나면 비자는 어떻게 할거에요?"
"가능하면 취업비자를 받고 싶습니다."
나의 말에 대표는 난색을 보였다.
"취업비자를 받으려면 사실 회사에서 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이건 내가 장담을 하지는 못하겠는데. 우리가 현지 채용을 할 때는 대부분 영주권자나 워크퍼밋(취업허가증)이 있는 사람을 뽑아서요."
취업비자를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내가 정말 열심히 해서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를 수 있겠지만, 현지에서는 영주권자나 워크퍼밋을 소유한 사람을 채용해야 비자에 대한 비용적 부담이 없다. 그들로서는 당연히 나를 고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번 잘 생각해보고, 그래도 일단 도전해보겠다고 하면 다시 오세요. 일은 시켜드릴 수 있어요."
그의 말을 듣고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머리가 복잡했다. 고민이 되었다. 취업비자가 담보되지 않는 회사에 계획대로 취업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하루 16시간 동안 근무하는 것도 겁이 나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 후에 비자가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혼란이 왔다. 그러고 보면, 대표는 나에게 어느 것 하나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주지 못했다. 일하는 시간에 비하면 월급이 많지도 않았다. 차라리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대학원을 준비하는 것이 더 수월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내 커리어가 물류회사로 굳어지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듯하다.
결국 다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일자리에 대한 공고는 많지만, 대부분은 식당 종업원이나 단기 아르바이트였기 때문에 정규직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몇몇 업체에 지원서를 제출했지만, 면접을 보러 오라는 곳조차 드물었다. 그러던 중 한 업체의 공고를 보았다. 해외에는 나라마다 교민들로 구성된 한인회가 존재한다. 영국에도 재영한인회라는 단체가 있었는데, 마침 인터넷에서 직원을 구하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어떤 일을 하는지, 보수가 얼마나 되는지 등 자세한 것은 알지 못했지만, 사기업이 아닌 공기업의 느낌이어서 우선은 지원했고 곧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면접 장소는 한인회관이었는데,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자신을 한인회 실장이라고 소개한 면접관은 알고 보니 현재 한인회장의 아들이었다. 실장은 근무 조건과 하는 일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는데, 마음이 확 끌릴만한 그런 조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선 사무직이라는 점과 근무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점 때문에 일을 해보기로 했다. 당장은 이 일이 아니면 먹고살기도 막막해 보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영국에서의 취업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영국에서의 생활도, 계획도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했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교수님들에게는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한 것이 되었고, 화려할 것 같았던 나의 런더너 생활도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내 도전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어찌 되었건 런던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적어도 생활비는 충당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나에겐 학생비자로 1년이라는 시간이 있으니, 1년 동안 일이 어떻게 풀리는지 지켜보고 그 이후의 일은 내가 만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 젊고 잃을 것이 없었다. 런던에서의 생활 자체가 나에게는 배움이었고 도전이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처음 계획했던, 혹은 처음 예상했던 그 길은 아닐지라도 결국 나를 돌이켜보면 목표로 한 대부분은 이룬 셈이다. 만약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 목표에 대한 나 자신의 확신이 모자랐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