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대학원 준비를 모두 마쳤다. 대학원 입학을 확정 짓게 된 마지막 두세 달을 제외하곤 지난 1년 중 대부분의 시간이 아주 여유로웠다. 나에게 주어진 짧지 않은 여유로 인해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한국에서 늘 경쟁에 쫓기며 치열한 하루하루를 살던 나였지만, 바쁜 와중에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가며,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더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되겠지만, 그래서 여유를 가질 시간이 전혀 없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브레이크를 밟아본 사람이야말로 진정 브레이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한국이라는 정서적, 문화적 제약이 있는 공간에서 스스로 여유를 만들어 내기란 여간해서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여유를 챙겨 주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가치 있는 것이 바로 여유이다.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주 단순한 일이다. 흔히들 여유가 돈이나 시간이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착각한다. 그들은 대게 ‘조금 더 많은 돈을 벌게 되면 여유로워질 것 같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직장을 구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는 것만으로 여유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직장인으로서 지금의 나는 하우스푸어로 대출금을 갚는데 급여의 절반 이상을 지출하고 있고 두 아이의 아빠로 항상 생활비에 압박을 느낀다. 여느 회사원들과 마찬가지로 여유를 누리기에 시간은 항상 없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처한 상황이 지옥이다. 하지만 나는 나름의 여유를 즐기는 방식을 알고 있다. 여유를 갖는 것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영국에서 사는 동안 가지게 되었던 인생의 브레이크 타임이 꾸준히 브레이크를 찾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덕분에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브레이크를 밟는 방법을 알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자동차도 사람도 브레이크를 하나만 가지고 있지는 않다. 자동차에는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풋브레이크와 사이드 브레이크, 그리고 때에 따라 엔진 브레이크를 사용하기도 한다. 정말 절박한 경우에는 주변 사물을 이용해 멈춰야 할 때도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환경, 다양한 조건에 따라 그에 맞는 브레이크를 밟아줘야 한다. 정말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여유를 가져야 할 때도 있지만 때때로 바쁜 일상에서 잠시의 여유를 찾아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여유를 찾는 것은 의외로 아주 간단한 일이다. 해가 지는 저녁노을을 보기 위해 잠시 가는 길을 멈추어 서는 것. 점심시간 혼자, 혹은 동료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회사 주변을 거니는 것. 고된 운전 후 도착한 주차장에서 시동을 끄고 잠시 눈을 감아보는 것. 이런 사소하면서도 작은 행동들은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여유이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 가치가 없어 보이거나 시간 낭비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어떤 일이든 결과를 위해서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여유 또한 시간을 내서 만들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만들어주지 않는다.
몇 년째 나는 아침 5시에 일어난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는 시간은 대략 5시 반. 사무실에 도착해 노트북을 켜고 대략적 업무 준비를 하면 6시 반이 조금 안 된다. 여전히 이른 시간이다. 커피 업계에 일하는 만큼 모닝커피를 한잔 마시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약 한 시간이 내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여유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 가끔 짐이 될 때도 있지만,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는 이 시간이야말로 나에게 진정한 여유가 아닐 수 없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야 하고 그래서 더 일찍 잠들어야 하지만, 시간을 내지 않으면 시간이 알아서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산다'는 표현을 쓰는지 모른다. 여유를 즐기려 해도 시간이 없다는 사람이 많다. 만일 자신이 '시간이 되면 해봐야지.' '시간이 되면 가봐야지.' '시간이 되면 좀 쉬지.'라고 반복적으로 말하는 사람이라면 특히나 의식적으로 여유를 찾아야 하는 사람이라 생각해야 한다.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내는 것처럼, 필요한 여유를 즐기기 위해 가지고 있는 시간을 쪼개서 짬을 내기 바란다. 여유를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일이고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여유가 무엇인지, 일상에서 가질 수 있는 쉼표인지 하루씩 쉬어가는 징검다리인지 혹은 멀리 떠날 수 있는 긴 휴가인지, 필요한 것을 확인한 후 그에 맞는 시간을 내기 위해 주변 환경을 조정할 것을 권한다. 남들의 여유를 앞으로도 글로만 읽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