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채가 들려주는 영국 유학 이야기

3장 치열함이 가져다주는 것

by 쪼꼬

Chapter 34. Pre-sessional(1)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무렵 나는 본격적으로 학기를 준비해야만 했다. 사실 여느 대학생이라면 한창 여행을 가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여전히 여유로운 방학을 보내고 있을 테지만, 나는 Pre-sessional 코스를 들어야 했기 때문에 그들과 같을 수 없었다. Conditional Offer(조건부 입학)로 입학이 허락된 나는 4주간의 Pre-sessional 코스를 미리 들어놓지 않으면 학교에 입학조차도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퀸메리대학은 런던 동쪽 2존에 Mile End라는 곳에 있는데, 내가 사는 곳은 남서쪽 4존이었기 때문에 런던 중심을 지나쳐 가야 했다. 처음 학교를 다녀온 후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일하고 있던 커피숍을 그만두는 것이 아쉬웠다. Pre-sessional에는 4주간 주 5일을 학교에가야 했지만, 대학원은 수업 일정이 어떻게 편성될지 몰랐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등교해야 하는 게 아니라면 구태여 비싼 돈을 내고 학교 근처에 살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일단 Pre-sessional 기간은 비싸더라도 1존을 포함한 monthly 교통카드를 구매해서 정석대로 다녀 보고, 본 과정이 시작되면 수업 일정에 따라서 비용을 조금 절약해보기로 했다.


드디어 Pre-sessional코스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서둘러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날은 이미 환하게 밝았지만, 나에겐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었다. 아침 9시까지 학교에 가서 과정에 대한 안내를 받아야 했기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이른 아침 등교가 나름 상쾌하기도 했고 설레기도 했다. 런던은 출근 시간에서도 여유를 찾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매우 번잡스러울 수도 있으련만, 러쉬 타임이라 할지라도 기차건 지하철이건 사람들이 서로 밀거나 당기지 않는다. 기차나 지하철에 공간이 있으면 당연히 타겠지만 만원이 될 경우에는 스스로 포기하고 다음 기차를 기다린다. 그만큼 여유 있게 집을 나서기도 하고, 교통상황 때문에 지각하게 되더라도 본인의 업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는 용서가 되는 문화 덕분인 듯했다. 출근 시간이면 어떻게든 지하철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밀고 당기며 끼어 타는 한국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그런 영국인들 사이에서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학교를 향하는 내 모습이 흐뭇해 절로 웃음이 났다.


일찍 출발했음에도 먼 거리 탓에 9시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서둘러 리셉션으로 달려가 학기 시작에 대한 안내를 받고 교실을 찾았는데, 넓은 학교에 여러개의 건물로 어디가 어디인지 알기 힘들었던 나는 수업이 진행되는 건물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맬 수밖에 없었고, 조금 늦게 수업에 참석했다. 교실로 들어서자 이미 열댓 명의 학생들이 자신을 소개하고 있었다. 얼핏 보니 절반 이상은 동양인이었고, 한국인도 더러 섞여 있는 듯했다. 내 차례가 돌아와 가볍게 소개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서너 명의 중국인, 서너 명의 한국인 그리고 나머지 러시아, 폴란드, 남아공, 대만 등 다양한 곳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어학원이랑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수업은 어학원과 비슷하게 진행되었지만 다들 영어에 익숙하다는 전제 덕분인지 읽기와 쓰기의 비중이 컸다. 더구나 퀸메리가 의과대학과 법학이 유명한 학교여서 Pre-sessional코스에도 법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많았다. 법학의 IELTS 기준은 7.5점이었기 때문에 이곳에 모인 법전공자들의 영어성적은 기본적으로 7.0 이상이었던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학부지원한 학생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본국에서 신청한 유학프로그램으로 영국에 처음 온 터라 대부분 Speaking 실력이 좋지못했다. 지원한 전공이나 과정에 따라 영어실력이 상이하긴 했지만, 학기중 겪게 될 읽기와 쓰기를 연습하는 것에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대학생과 대학원생이 읽기와 쓰기에서 차이가 나면 안될 일이긴 하다.


첫날 자기소개를 마치자 반에 나를 포함해 세 명의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중 한 명은 기계과 전공의 학부생이었고, 또 한 명은 병훈이형이었다. 병훈이형은 한국에서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퀸메리의 법학대학원으로 진학했다. 다소 작지만 다부진 체구에 똘똘이 스머프를 연상케 하는 병훈이형은 대학원 생활 내내 나의 정신적 지주이자 든든한 지원자로 나를 보살펴주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병훈이형을 만나 식사도 같이하고 때로는 잠도 같이 잤다. 기숙사를 이용하던 병훈이형은 시험 기간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나를 위해 기꺼이 방바닥을 내어줄 정도로 정이 많았다. 그런 날이면 둘은 런던 생활에 대한, 혹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밤이 새는 줄을 몰랐다. 덕분에 정작 시험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말이다.


병훈이형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친해진 사람들은 중국인인 옐린과 츄, 그리고 대만에서 온 메튜였다. 다들 영국에 처음 왔거나 혹은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영국이라는 나라가 마냥 신기한 상태였다. 그런 그들에게 런던 소개를 자처하며 그들의 호감을 얻었다. 학교 수업이 마친 후면 버스를 타고 런던 시내로 나가 런던 구경을 시켜주었다. 그들 역시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금요일 저녁 같은 날에는 그들 중 한 명의 기숙사 부엌(대부분의 기숙사는 별도의 방이 주어지고 부엌은 쉐어한다.)에서 포틀럭 파티(각자의 음식을 준비해 와 함께 즐기는 파티)를 하곤 했다.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하지 않던가? 런던에서 파티를 빼면 서운하다.


Pre-sessional과정은 생각보다 상당히 타이트하게 진행됐다. 주로 어학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었지만, 읽어야 할 것들이 계속 주어졌고, 읽은 것들을 바탕으로 토론이 이어졌다. 수업의 한 예를 들어주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하루는 선생님이 censorship(검열)을 주제로 한 다양한 기사와 에세이를 읽어오라 했다. 1970년대 한국에서도 군부 독재로 인한 검열이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세계 각국에서는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는 검열 제도가 공공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러한 언론 통제와 그 영향에 대한 다양한 글을 읽어야 했다. 그 분량이 상당해서 거의 책 한 권의 수준에 육박했고 주어진 시간은 고작 하루였다. 자료에는 censorship(검열)에 대한 다양한 케이스가 실려있는데, 이 케이스들을 바탕으로 개인적 견해와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다음날의 토론 과제였다. 어떻게 보면 censorship에 대한 평소 개인적 견해를 이야기하면 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선생님이 제시해준 케이스를 읽어보지 않았다면 구체적 사건에 대한 선생님과 상대 학생들의 주장에 반론할 수가 없고, 이는 내 주장에 힘이 실리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이유로 읽는 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결국 수업 시간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


때론 선생님이 각자가 취해야 할 입장을 정해주신다. 선생님은 나를 포함해 두어 명의 학생들에게 '너희는 censorship이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해.'라고 하였고 나는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긍정적인 요인을 찾아야 했다. 대부분의 부정적인 내용들 속에서 그 반박 논리를 만들어내고 긍정적인 케이스들을 앞세워서 censorship의 정당성을 옹호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수업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은 단지 어학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 이상을 의미했다. 자신이 지지하는 사실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 먼저 자기 자신을 설득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켜야 했다. 사실 검열이라는 것 자체는 어느 누가 보아도 정당화될 수 없는 악행에 가깝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논하는 것은 도덕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측면에서, 혹은 알 권리를 보장하는 측면에서 모두가 검열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검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찾아내야 한다. 내가 펼쳤던 논리는 아주 단순했다. 어린아이에게 성(性)에 대해 검열을 해야 하는 것과 같이, 정부의 입장에서 아직 미성숙한 대중에게 모든 것을 판단하도록 맡긴다면 정치와 정책 결정에 관여된 다양한 사실들을 고려하지 못한 대중이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논리를 펴기 위해 주어진 자료 외에 더 많은 자료를 읽어야 했지만, 덕분에 토론은 아주 치열했다.


이러한 토론 수업으로 가장 도움이 된 것은 바로 자신감이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토론을 하면서 그들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고 심지어는 그들을 설득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그것도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말이다. 영어는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도구였지만 그것은 단어 그대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했다. 많은 사람이 지금도 영어를 학문으로 생각한다. 물론 영문과를 전공한 사람들에게는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영어는 그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도구 중 하나에 불과하다. 컴퓨터 활용능력이나 프레젠테이션 능력, 혹은 운전면허증처럼 말이다. 그동안 영어를 공부하면서 나에게 짐과도 같았던 시험 성적은 모두 쓸데없는 자격증과도 같았다. 독해 문제를 하나 더 풀고 듣기 문제를 하나 더 푸는 것보다는 영어를 사용해서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해야 한다. 영어 실력 그 자체를 증진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영어를 사용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진짜 실력이다. 차라리 영어는 어느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는 수준이 되면 그 이상은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본다. 운전면허시험 100점 맞는 것이 무엇에 쓰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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