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채가 들려주는 영국 유학 이야기

3장 치열함이 가져다주는 것

by 쪼꼬

Chapter 41. 에세이(1)

학교 수업과 리딩에 익숙해져 갈 무렵 에세이 과제가 주어졌다. 시험이나 과제가 많지 않은 만큼 에세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클 수밖에 없었다. 에세이 하나로 수업 전체를 Fail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에세이는 수업과는 별개로 작성해야 했는데, 아무리 익숙해졌다고 하더라도 점점 늘어나는 읽을거리들을 소화하는 것이 벅찬 상황에서 에세이까지 준비하려다 보니 앞이 깜깜했다. 하는 수 없이 밤잠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콜라와 초콜릿의 섭취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몸무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에세이는 한국 대학의 리포트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영어로 적는다는 것을 뺀 가장 큰 차이점은 한국의 리포트와는 달리 A4용지 매수가 아니라, 단어 수로 분량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또 다른 큰 차이점이라고 하면 에세이에는 글쓴이의 생각과 견해가 반드시 일정 분량 이상 포함되어야 했는데, 교수님들이 하나하나 읽은 후 각 에세이의 내용에 대한 자신의 평가와 피드백을 적어서 돌려주고 이를 최종 평가에 반영하기 때문에 에세이의 영향은 상당히 중요했다. 논리가 약하거나 어폐가 있을 때는 참고자료를 인용하며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기도 했고, 적절한 접근이나 논리적으로 좋은 점은 별도로 표시를 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이렇게 제출된 에세이는 각 토론 수업에 활용되기도 했는데, 학생이 직접 작성한 에세이의 가설을 다른 학생들과 공유하고 그 주제로 토론을 진행하기도 했다.


에세이가 학생의 성적을 평가하는 주요 도구인 만큼 에세이를 적는 데에는 많은 정성이 들어가야 했다. 글을 읽어가며 에세이와 논문을 대비해서 미리 자료를 수집해 놓은 것은 매번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교수님이 제시해준 일련의 주제 중에 내가 적고자 하는 주제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주제들의 리스트를 받고 내가 수집해 놓은 자료 중에 가장 활용도가 높은 주제를 선택하는 것이 상당히 유리했다. 대부분의 주제는 주어진 읽기 과제에서 이미 다루어졌던 내용이었기 때문에 심도 있게, 혹은 인상적으로 읽었던 내용을 주제로 고르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에세이의 주제별로 참고할 만한 자료들이 함께 제시되었기 때문에 사전에 준비를 못 한 주제라 하더라도 에세이를 쓰기 위한 참고자료를 구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물론 참고자료를 다시 읽어야 한다는 단점만 빼면 말이다.


일단 에세이의 주제를 정했다면 주제에 맞는 자료를 선별해야 한다. 최대한 다양한 자료를 참고하는 것이 자신의 주장을 더욱 탄탄하게 한다는 교수님의 조언처럼 시간이 허락하는 한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이를 인용하는 것이 필요했다. 석사과정 동기 중에 Jessy라는 여학생은(졸업 후 박사에 진학했다.) 하나의 에세이에 무려 100개가 넘는 참고자료를 사용해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외국인으로는 그만큼의 참고자료를 소화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한 일이겠지만, 아무튼 참고자료가 많으면 그만큼 좋은 성적을 받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에세이나 논문을 뒷받침할 자료에 대한 팁을 주자면 주제에 맞는 인용을 찾기보다 인용에 맞는 내용으로 글을 쓰라는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예시나 내 주장을 뒷받침할 내용을 책에서 찾아내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다. 내 생각과 꼭 맞는 인용문을 찾기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때문에 미리 찾아둔 인용문의 내용을 바탕으로 에세이나 논문을 어떻게 전개할지 고민해서 작성하는 것이 오히려 더 효율적이다. 인용문을 내 논리 전개의 뒷받침 근거로 사용할 수도 있고, 혹은 반증의 근거로 삼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내 생각과 꼭 맞는 자료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찾아낸 자료를 내 논리에 어떻게 반영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참고자료가 확보되면 목차를 정하고 구도를 잡는다. 글의 구성은 당연하게도 서론 본론 결론으로 이어지겠지만, 구도를 잡을 때만큼은 결론, 본론, 서론 순으로 하는 것이 좋다. 결론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종적인 목차는 가장 마지막에 완성될 테지만, 미리 목차를 구성해보면 전개해 나가고자 하는 키워드가 완성된다. 이 키워드를 바탕으로 전체 글의 구도를 잡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글을 쓰면서 내용이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구도를 잡을 때는 우선 내가 쓰고자 하는 전개에 첫 문장만 따서 적어본다. 이 첫 문장이 그 문단의 결론이 될 수 있다. 문장이 완성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 글에서 적고자 하는 내용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구도를 잡는 데는 충분하다.


구도를 잘 잡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중요하다. 글을 적는 것을 옷 입는 것에 비유하자면, 구도는 정확한 치수를 고르는 것과 같다. 아무리 화려하고 느낌 있는 옷을 골랐다 하더라도 입는 사람의 몸과 맞지 않는다면 어딘가 엉성해 보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구도를 잡는 것은 앞으로 내가 적어나갈 내용을 헛되이 만들지 않도록 도와주는 기준이 된다. 사실 이 구도 잡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내용을 적으면서 수 없이 적고 지우기를 반복해야 했다. 한참 적은 내용이 글 전체의 맥락과 맞지 않아 통으로 빼버려야 할 정도로 말이다.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글을 쓰기 전 구도를 잡는 것이 중요하고 구도를 잡은 후에는 잊어버리지 않도록 글을 쓰는 내내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는 것이 좋다. 구도는 곧 내비게이션과도 같아서 구도 없이 글을 쓰는 것은 나침반 없이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도 같다.


대학원에서는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을 위해 슈퍼바이저를 지정해준다. 주로 박사과정의 학생들이다. 한국의 대학 조교 정도로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구도를 잡는 일부터 슈퍼바이저의 도움을 받는 것을 권한다. 교수님들에게 물어보기 어려운 내용을 슈퍼바이저가 도와준다. 특히나 글쓰기의 경험이 많은 그들에게 구도에 대한 조언을 듣는다면 고민의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다. 글의 내용과 논리에 대한 부분은 교수님들에게 문의해야 하지만 글을 쓰는 방법에 관한 부분은 슈퍼바이저가 충분히 도와줄 수 있다. 사실 내용을 채우는 일은 구도를 잡는 일보다 도움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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