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첫 학기의 적응 기간이 시작되었다. 하루 12시간씩 공부를 해야 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정말 지옥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루거나 거를 수는 없었다. 첫 토론 수업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 후로는 그럴 엄두가 전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업이 없는 날은 오롯이 방에 박혀 쌓여있는 읽을거리들과 교과서를 붙잡고 있어야 했다. 가난한 유학생에게 커피숍과 같은 곳에서의 여유로운 공부는 사치에 불과하기도 했거니와, 커피숍을 오고 가는 시간마저 줄이기 위해 주로 방이나 공용 주방 식탁에서 공부했고, 그 와중에도 생활비 마련을 위해 멈출 수 없었던 커피숍 아르바이트 시간도 조정해야 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각각 7시간씩 근무하기로 했고, 금요일 저녁 4시간을 할애하기로 했다. 보통 이 시간대가 일하기를 꺼리는 시간대였기 때문에 경쟁은 심하지 않았다. 신기한 건, 이렇게 일주일에 20시간 내외로 일을 해도 한 달이면 400파운드(우리 돈 72만 원)를 넘게 벌 수 있었고, 이 정도 금액이면 풍족하지는 못할지언정 한 달 생활비를 충당하기엔 충분했다는 것이다. 영국이 살인적인 물가로 유명하기는 하지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다양한 삶의 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이 되어있는 듯했다. 부유하다면 극도로 럭셔리한 삶을 살 수도 있지만, 돈이 없다 하더라도 굶어 죽지는 않는 곳이 런던이다. 삶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학교 수업 중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토론수업이었다. 영어로 생활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스스로 자만하던 나였지만 학술 토론이 시작되니 어린아이와 같았다. 유구무언. 입은 있어도 말은 할 수 없었다. Pre-sessional에서 국제 학생들과 토론하던 것은 정말 아이들 장난과 같았다. 네이티브들이 쏟아내는 엄청난 속도의 대화에 감히 끼어드는 것 자체가 일단 도전이었다. 교수님과 학생들이 나누는 대화의 내용을 따라가기에도 상당히 벅찼다. 교수님은 수업 시간마다 순번을 정해 일정 자료에 대한 간략한 요약과 자기 생각을 발표하도록 하였는데, 첫 수업에서 교수님과 학생의 난상토론을 경험하고는 몸도 마음도 심지어는 머리도 얼어버렸다. 같이 수업을 듣던 영옥이 누나 역시 아주 순수한 표정으로 난감함을 드러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고 말이다. 나에게 문제는 어휘였고, 누나에게 문제는 개념이었다. 그나마 나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사상이나 개념은 익숙했지만, 누나에게는 들리는 단어들의 개념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이 되었기에 힘들어했다. 그보다도 큰 문제는 그들의 Speaking 속도였다. 무지막지한 속도로 서로의 의견에 반박하는 그들 틈에서 굽히지 않고 내 주장을 펼쳐야 했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알아듣는 것만으로 스스로 대견하다 여길 정도였다.
강의수업은 그나마 부담이 적었다. 사실 강의 내용 중 상당부분은 대학시절 전공을 통해서 이미 배웠기 때문에 내용 면에서 어려운 건 없었고, 어느 정도 교제를 읽었다면 충분히 따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전체 강의 내용을 100% 이해하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특히나 옥스퍼드 출신의 교수님 강의는 내용 중 50%를 체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교수님은 그 주에 있을 토론 주제에 대한 개념 설명 및 그 개념을 해석하는 다양한 방식, 그리고 교제에서 설명하는 바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풀어서 강의했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나에게 강의 수업은 출석 자체에 의미가 있는 수업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수업시간에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건 드물었다. 강의에서 다루어지는 사상이나 이념에 대한 개념은 이미 나에게는 아주 익숙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정치학을 학부에서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기본 개념부터 다루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한국의 대학이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학교에 다니면서 내가 판단한 영국의 대학원은 무언가를 가르치는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언가를 '어떻게' 배울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곳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 스스로 비판하는 방법 혹은 그들의 생각을 실제 현상에 접목하는 방법. 이러한 방법들을 가르치는 것이 그들의 주요 목적이었다. 학생들의 의견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하고 또 가끔은 그들의 의견을 지지해 주기도 하면서 다양한 생각을 통해 고정관념의 벽을 허물어주었고, 아주 다양한 현상들을 학생들이 가진 개념과 연결하게 함으로 사고의 확장이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서 학생들은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그에 대한 비판을 받으며 자신들의 가설을 검증한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이 있기에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학문이 탄생할 수 있는 것 같다. 교육 하나만을 위해 영국으로 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토론 수업이 난공불락의 성처럼 느껴지기는 했지만, 토론의 참여 여부에 따라 성적이 좌우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따라갈 만은 했다. 강의 수업 역시 몇 번의 수업을 거치자 자연스럽게 사전준비를 하게 되었고 이내 적응할 수 있었다. 1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 반가량을 피눈물 나게 공부에 열중하니 남의 옷과도 같았던 공부하는 습관이 서서히 몸에 익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속도도 빨라졌고, 수업 시간에도 한두 마디씩 내 의견을 펼칠 수 있었다. 물론, 누군가의 의견을 반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상대방의 말을 100% 이해하지 못한 채 그 말에 반론을 제기할 때는 한 문장만 기억하면 된다.
"Yes, but I think..."
해석하자면
"네, 하지만 제 생각은..."
정도일 것이다. 이 기적과도 같은 표현 하나로 모든 토론 주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토론은 특정한 정답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아니 토론에 정해진 정답은 없다. 발언자의 의견이 무엇이건 일단 동의해준 다음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 그만이다. 생각의 논리만 합리적이라면 말이다. 대화의 흐름을 적절히 파악한 후에 내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작은 'Yes, but I think...'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