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채가 들려주는 영국 유학 이야기

3장 치열함이 가져다주는 것

by 쪼꼬

Chapter 43. 를 위한 선물

수업과 과제에 좌충우돌 적응하는 동안 어느새 내 몸은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다. 완벽하게 규칙적인 생활은 아니었지만, 짜인 계획대로 생활하다 보니 첫 학기가 금세 지나가고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 영국의 겨울은 해가 말도 안 되게 짧고 밤이 아주 길다. 보통 서너 시간 해가 떠 있을 때가 많고, 그마저도 안개나 구름에 가려 흐린 날이 대부분이다. 반면 밤은 아주 길어서 오후 4시만 되어도 이미 어두컴컴했다. 이러한 영국의 겨울 날씨 때문에 영국의 전체적 이미지가 Gloomy(우울한) 하게 표현되곤 한다. 하지만 입학 후 점점 짧아지는 낮시간 덕분에 공부에 집중하기는 한결 수월했던 듯하다.


수업과 공부, 그리고 시험과 에세이로 정신없는 한 학기를 보낸 나는 첫 방학을 즐길 새도 없이 아르바이트에 집중해야 했다. 학기 중에 틈틈이 근무했던 코스타에서 방학 기간 동안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다음 학기를 위한 생활비를 모아야 했다. 방학 때 바짝 벌어놓지 않으면 학기 중에 쓸 비용이 부담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방학 기간에는 별도의 숙제나 과제가 없었고, 계절학기 같은 프로그램도 없었기에 아르바이트에만 몰두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이때 맞이한 크리스마스가 아마 내 인생에서 진정으로 파티를 즐긴 크리스마스였던 걸로 기억된다. 한국인 동생들과 한집에 모여 밤새도록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고 술도 마셨다. 크리스마스 당일은 교통편도 상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12월 24일 밤부터 26일 아침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먹고 마시고 쉬기만 했다. 누구를 만날지 무엇을 할지 아무런 계획이 필요 없는 날. 가족들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란 이럴 것 같았다. 물론 진짜 가족들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들이 나에게 진짜 가족 그 이상이었다.


영국의 대학은 3학기로 운영된다. 영국의 첫 학기는 9월 말에 시작하여 12월 초에 끝나고, 그 후 약 3주간 겨울방학이 있다. 2학기는 1월 초에 시작해 3월 말까지 이어지고, 봄학기가 끝나면 한 달간 이스터 방학이 있다. 마지막 학기는 4월 말에 시작하여 6월까지 진행되는데, 이때 대부분의 시험과 논문 준비가 이루어졌다. 그 후 3개월가량의 긴 방학이 있고 다시 가을 학기가 시작되는데, 대학원의 경우는 1년 과정으로 이 시기를 포함하여 9월 말까지 논문을 작성하여 제출해야 한다. 1년 과정이라는 점 때문에 많은 사람이 쉽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2년 이상의 과정을 응축시켜서 3학기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만큼 더 집중도 있게 임해야 했다. 학기가 단 세 개고 실제로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르는 학기는 두 개였기 때문에 한 번의 Fail이 곧 전체 과정의 Fail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첫 학기를 긴장감 있게 보낸 탓인지 2학기가 시작한 후에는 수업도 공부도 몸에 익었다. 절대적 공부 시간을 많이 줄이지는 못했지만, 예전만큼 하루 12시간씩은 아니었다. 수업 또한 일주일에 두 번 학교에 가는 것으로 충분했다. 한번 갈 때마다 서너 개의 수업을 들어야 했기에 여전히 여유롭진 않았지만, 1학기에 비하면 그나마 수월하게 느껴졌다. 일주일에 두 번 학교에 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말하자면 시간적 여력이 생긴 것이다. 서서히 캠퍼스의 낭만을 즐길 시간이 되는 것 같았다.


1학기부터 틈틈이 한인학생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축구와 농구를 하면서 친분을 쌓아두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편으로는 정말 대단한 일이고, 한편으로는 참 미련한 일이다. 그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과정 중에도 수업 중간중간 시간을 내어 운동도 했으니 말이다. 젊다는 건 그래서 좋은가 보다. 2학기에는 본격적인 체육대회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나 또한 운동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이런 행사에 빠질 수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수업이 끝난 후 꼭 연습에 참여해서 함께 농구를 했고, 매주 토요일 아침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 전에 축구 경기에 참여했다. 아주 젬병은 아니어서인지, 나이가 비교적 많은 나였지만 모든 경기에 주전선수로 뛰었다. 물론 한인이 많지 않았으니 당연히 경쟁은 심하지 않았다. 공부만 하기에도 벅찬 시간이지만, 틈틈이 나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스스로 지치지 않게 도와주었다. 나를 위해 일종의 작은 선물을 하는 것이다. 사실 이미 결혼을 한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은 나를 위한 선물로 조기축구회에 나간다. 간 큰 남자라 생각하겠지만 이거라도 있으니 산다. 혼자 두 아이를 돌보는 와중에도 이를 배려해주는 집사람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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