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채가 들려주는 영국 유학 이야기

1장 도전하는 자에게 허락되는 것

by 쪼꼬

Chapter 4. 서툰 준비의 끝

얼마의 비용을 사용할 것인가? 처음 누나에게 제안을 들은 순간부터 무의식중에 내 예산은 100만 원으로 정해져 버렸다. 막연히 100만 원만 있으면 된다는 누나의 말에 의심 한번 없이 마음속으로 확정을 해버렸다. 100만 원을 어떻게 쪼개서 어떻게 써야 할지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고민은 했겠지만 어린 나에게 100만 원이란 돈이 조금은 여유롭게 느껴졌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무모하면서도 부끄러운 일이다. 돈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런던의 살인적인 물가에 대한 개념은 더더욱 없었다. 이로 인해 나는 뜻하지 않게 상당한 모험을 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결심이 서자 돈을 벌어야 했다. 휴학생 시절에 영어학원 강사로 돈을 번 경험도 있었지만, 더 단순한 일을 하기로 했다. 아마도 이별에 대한 충격이 가시지 않아서 생각 없이 할 일을 찾았던 듯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약 2년간 몸담았던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했다. 맥도날드는 당시만 하더라도 내가 살던 곳에서 워낙 인기가 좋은 아르바이트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르바이트생이 20대 초반이거나 그 이하였다. 그들 사이에서 24살의 노땅(?)이 신입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것이 그리 자연스럽지는 않아 보였지만(당시 정직원이 나보다도 어린 경우가 있었으므로) 나에게는 업무 환경이 익숙하고 단순해서 많은 생각이 필요 없는 맥도날드 아르바이트가 그 당시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가을학기가 지나가는 몇 달간 학교 수업과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돈을 모았다.


목표로 한 금액이 100만 원이었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사실 일을 더 어렵게 만든 것은 돈을 모음과 동시에 써버리게 되는 나의 소비 패턴이었다. 어학연수를 결심하고 난 후 친구들에게 생각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친했던 친구들과 당분간 볼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런저런 술자리가 마련되는 것은 아주 정상적이고 당연한(동시에 미련한) 일이었다. 하루걸러 하루 술자리를 가졌다. 정말 원 없이 마셨다. 시련의 아픔이라는 안줏거리도 있겠다, 술을 안마실 이유를 찾는 것이 더 힘든 나날이었다.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는 물론, 노땅으로 입사한 맥도날드에서도 내가 중심이 되어 있었다. 어느 사회건 부류와 무리가 존재하게 되는데 항상 특정 부류와 무리를 연결하는 연결고리가 있게 마련이다. 나는 특유의 사회성으로 맥도날드 사회에서 각기 다른 부류들을 연결하는 인기인이 되어있었다. 내 한마디에 아이들이 몰려들어 함께 어울리며 술을 마셨고, 제각각이었던 맥도날드의 인맥이 나라는 존재를 매개로 엮여가고 있었다. 후문에 따르면, 내 덕에 많은 커플이 생겼다 사라졌다고 한다.


이렇게 무언가의 중심에 있으면 사람은 누구나 그 자리를 지키고 싶어지게 된다. 어학연수 준비보다는 술자리가 좋았고 덕분에 시련의 아픔도 어느덧 옛날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학연수를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지금 내가 가진 생활이 아쉬워졌다. 시간이 다가오면서 송별회를 빌미로 술자리는 더 많아졌고, 루하루 지나 이제는 정말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 왔다. 결국 한국 땅에서의 추억만 늘었을 뿐 런던 생활에 대해 많은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첫 타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작은 별것도 아니다. 유학에 대해 큰 뜻을 품은 것도, 그 후 진로에 대한 명확한 목표 의식이 있던 것도, 그렇다고 집안이 여유로워 경험 삼아 준비한 것도 아니다. 어학연수를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명확한 목표 의식과 도전정신에 의해 시작되지는 않았다. 모든 도전이 거대한 마음의 변화를 이끄는 사건이나 큰 동기부여로 탄생하지는 않는다. 내가 겪었던 사소한 이별의 아픔이, 누나로부터 얻은 단순한 제안이,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의 작은 호기심이 나를 런던으로 보내는 거대한 도전을 만들어다. 작은 시작이 큰 도전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정도 동기라면 당신도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내가 유학을 결심한 일련의 사건이 당신이 가진 동기보다 몇 곱절 더 큰가?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인생의 전환점이 될만한 큰 계기를 기대하고 있다면 생각을 조금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올해 초 의무적으로 목표를 세운 것이, 지난달 우연히 보게 된 TV 프로그램이, 오늘 아침에 읽었던 신문 기사가, 아니면 지금 읽고 있는 이 글이 당신에게 큰 도전을 시작하게 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큰 깨달음이나 동기부여가 모자라 아직 시작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일단 시작하자. 그 시작은 미미할지라도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것을 스스로 믿길 바란다. 아니, 창대하지 않더라도 괜찮다. 도전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도전이 반드시 성공적이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자. 안나푸르나 14좌 등반을 눈앞에 두고 실족하여 고인이 된 등산가 故 고미영 대장이(물론 많은 도전에서 성공을 이루어낸 것은 사실이지만) 단지 성공적 행보에 의해서만 훌륭했다고 평가받지는 않는다. 그녀의 마지막 도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높이 평가받을 만했고, 그 끝이 비극이었기에 더욱더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그러니, 일단 시작해 보자. 당신의 도전이 얼마나 빛나는 것인지 당신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당신이 도전을 결정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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