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채가 들려주는 영국 유학 이야기

1장 도전하는 자에게 허락되는 것

by 쪼꼬

Chapter 3. 전략적 설득

두 학교의 장단점을 나열하는 과정에서 내 마음에 어느 정도 결정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어찌 됐건 나의 현재 수준은 집에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면 어느 것 하나 가능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엄마부터 설득해 보기로 했다. 나의 어학연수 건과 관련해서는 누나가 실권자이니 누나부터 공략하는 게 맞는 일이겠지만, 한 명이라도 내 편을 만들고 누나를 공략하면 설득력이 더 있을 것만 같았다. 엄마를 불러 앉히고는 가고 싶은 학교에 대해 천천히 설명했다.


"엄마, 이 학교는 이런 프로그램이고, 이 정도 기간에 이런 곳에서 살고 이런 사람들이 주로 있고 부가 활동으로 이러이러한 것들이 있데요."

금액을 제외한 모든 좋은 내용을 설명했다. 실제로 해당 학교에는 부설 체육시설과 수영장을 보유하고 있었고, 바닷가 인근에 있어 윈드서핑과 수영도 즐길 수 있는 아주 호화로운 학교였다. 하지만 이러한 부대시설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를 설득하면서 호화로운 조건이라니... 설득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얼만데?"

단칼에 논점을 뒤집으셨다. 엄마에게 중요한 건 얼마나 내가 여유롭게 공부를 하느냐가 아니었다. 딸을 미국으로 어학연수 보내고 나서 얻은 경험으로 엄마는 이미 그러한 부수적인 조건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쯤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6개월에 천만 원 조금 넘어요."

"그래? 너무 비싼데... 누나한테 물어볼게."


당시 1년을 계획하고 있던 나에게 6개월에 학비로만 천만 원이면 상당히 비싼 상황이었다. 하지만 영국 물가를 고려하면 그리 비싼 것만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학교 이야기로 엄마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 중 누나가 집으로 들어왔고, 누나와 함께 토의가 시작되었다.

"얼마? 2천만 원? 야! 나도 1년 동안 2천만 원 안 쓰고 왔는데 네가 지금 학비로만 2천만 원을 쓰겠다고? 말이 된다고 생각해?"

사실 나조차도 그다지 말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1년 학비로만 2천만 원이라니, 대학원을 가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거금이 나라는 놈에게 필요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고 그 학교의 좋은 점을 더 집요하게 어필했다.

"생각해 봐. 내가 그냥 아무 학교나 가서 아무렇게나 배우고 아무렇게나 돌아와서 아무 효과가 없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 안 그래? 이왕 가는 거 제대로 가서 제대로 공부하고 제대로 효과를 봐야 좋은 거 아니겠어? 그리고 영국으로 가는데 물가 정도는 고려해 줘야지! 미국이랑은 상황이 다르잖아!"

얼핏 내 주장에 넘어올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한 발짝씩 물러나 실제로 내가 주장하던 학교가 선택되지는 않았다. 이유인즉슨 나에게는 또 다른 노림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주장하던 학교는 애초에 내가 가고 싶은 학교는 아니었다. 사실 기숙 학원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위치적으로도 상당히 외진 곳이라는 정보를 입수해 심지어 매우 지루하다는 평이 더러 있는 곳이었다. 개인적으로 Fun이 인생의 8할을 차지하는 나에게 있어 이 학교는 100점 만점에 50점도 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이 학교에 가도록 도와달라고 주장한 것은 상대적으로 다음 학교가 훨씬 더 좋아 보이게 만들려는 목적이었다. 사실 첫 번째 학교가 아주 비싸긴 했지만, 정말 내가 가고자 했던 학교 역시 가격이 만만치는 않았다. 처음부터 가고 싶은 학교의 가격을 이야기했다면 아마 내가 선택해야 할 학교는 최저 금액 수준이었을 것이다. 금액이 저렴한 학교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경로로 확보한 정보를 바탕으로 마지노선을 정해둔 나였기에 나름대로 목적을 두고 설득을 진행했다. 내 이 사소한 전략은 그대로 적중하였고, 다음 학교를 이야기하면서는 협상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두 번째 학교 또한 만만치 않은 가격임에도 엄마와 누나는 천사와 같이 착한 가격에 프로그램마저 탄탄한 곳으로 이 학교를 인식하게 되었다. 사실 두 번째 학교가 나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바로 과정 중에 시험이 없다는 점이었다. Speaking 중심의 수업과 시험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그 어떤 조건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학교 선택을 마치고 난 후 유학원을 다시 찾았다. 가기로 한 학교와 준비 사항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명을 들려주었고, 심지어는 잘 만들어진 리스트까지 준비해 주었다. 리스트에는 비자 준비부터 짐 꾸리기, 방 구하는 법, 런던 생활에 대한 요약, 심지어 전기 콘센트(영국의 콘센트는 한국의 것과 달라 한국의 전자 기기를 사용하려면 흔히 '돼지 코'라 불리는 변환 플러그를 추가로 연결해야 했다.) 사용법까지 아주 자세히 정리되어 있었다. 리스트에 적힌 대로 준비만 한다면 1년 동안의 어학연수가 무리 없이 진행될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현실은 더욱 냉철했고 혹독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그 리스트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겠지만.


리스트를 받은 후 인터넷 서칭을 통해 더 많은 자료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나에게 딱 맞는 정보는 아니더라도 그곳의 생활을 조금 더 면밀히 보고 싶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사람에게(적어도 남자에게) 필요 이상의 정보는 모두 불필요한 쓰레기와 같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하루에 필요한 칼로리 이상으로 섭취하게 되면 나머지 열량이 지방이라는 쓰레기통으로 모이게 되듯(물론 지방이 쓰레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하는 것 또한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것 같다. 아무튼 그 후 보게 된 수많은 블로그와 인터넷 사설들은 모두 나에게는 사족과 같이 느껴지게 되었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들을 실제 경험처럼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는 정보를 찾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나니 나에게 남은 건 비용 충당뿐이었다. 이제 영국으로 가기 위한 비용만 해결하면 나의 1년간의 어학연수는 아주 여유롭고 화려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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