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채가 들려주는 영국 유학 이야기

1장 도전하는 자에게 허락되는 것

by 쪼꼬

Chapter 6. 인(적 물가)의 추억

그렇게 심장이 쫄깃해지는 입국 심사장을 지나고 밖으로 나오자 안도의 한숨과 함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런던, 상상만 해도 익사이팅한 그 이름이다. '런던에 대해 당신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듣고 많은 자료를 보았을지 모르지만 무엇을 기대하던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찾아본 한 블로그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이 문구 하나만으로 나는 런던이라는 도시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올라 있었고, 공항에서부터 그러한 기대감을 감출 수가 없어 마음껏 들떠 있었다. 사실 고등학교 때 배운 역사적 지식과 이리저리 주워 알게 된 막연한 런던에 대한 정보가 전부였지만, 지식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전 세계 여행자에게 언제나 설렘을 안겨주는 곳이 런던이다. 이러한 곳에 하루 이틀 여행을 온 것이 아니라, 무려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너무도 가슴이 설렜다. 게다가 25년간 부모님 품에서만 살아오던 내가 첫 나만의 세상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그 감격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며 공항 로비로 나오는 길 자체만으로 이국적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모든 간판과 사인이 영어로 되어있었고, 공항 이곳저곳에 걸려있는 여행을 독촉하는 포스터와 광고들 사이로 공항 카트를 끌고 있는 내 모습이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무언가 신분 상승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느껴졌다.


공항 로비로 들어서자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언어의 피켓을 들고 있었다. 간간이 한국어도 보였고 한국인들은 내가 그들이 기다리는 누군가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부지런히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출발하기 전 엄마 친구분의 아들이 런던에 거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분이 런던 히스로 공항으로 픽업을 나와주기로 되어 있었기에 나 역시 그들의 피켓을 유심히 살피며 나를 기다리는 사람인지 하나하나 확인했다.


하지만 정작 내 이름은 어디에도 걸려 있지 않았다. 길게 늘어선 입국 대기 행렬을 모두 지나 올 때까지도 내 이름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조금씩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 친구의 아들분이 마중을 나오겠다고 분명 이야기가 되었을 터인데, 무언가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받아온 전화번호를 찾아봤다. 그리고 주위에 공중전화를 찾았다. 공중전화에 사용할 동전을 바꾸기 위해 환전소를 찾았다. 한국에서 환전할 때 동전은 제공해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10파운드 지폐를 동전으로 바꾸었다. 동전을 교환하는 것도 일이었다. 얼마짜리 동전으로 바꾸어줄지 물어보는 환전소 직원의 말을 모두 이해하지 못해 "Um."과 "Yes, Please."만을 연발했다. 동전을 받은 후 환전소 앞에 마련되어 있는 공중전화기로 마중을 나오기로 한 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중전화 요금이 얼마인지 알 길이 없는 나는 20 pence(약 360원) 동전을 전화기에 넣고 다이얼을 눌렀다. 이 정도 돈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국제전화도 아니고, 단지 핸드폰 통화이지 않은가.


다이얼이 울리기 시작했다. 한국의 패턴과는 다른 수화 음이었다. 한국이 따르릉이라면, 영국은 따르릉따르릉 정도 된다.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처음 경험하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신호가 한참이나 울리도록 전화는 받지 않았다. 전화벨이 반복될 때마다, 내 마음속 불안감은 제곱으로 커져만 갔다. 이억 만리타국에서 연고지도 없는 내가 의지할 사람은 한 명뿐인데, 이마저 연락이 안 된다니... 생각만 해도 머릿속이 깜깜해졌다. 물론 준비하는 동안 시내의 민박집을 알아본 적도 있었지만, 픽업을 약속받은 터라 자세한 디테일을 알아보지는 않았던 상황이었다. 첫 전화 통화가 실패했다. 곧장 다시 전화를 걸었다. 조금 전화벨이 울린 후 다행히도 연결되었다.

"Hello?"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한국에서 오늘 만나기로 한 학생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그게 오늘인가요? 오늘 비행기를 탄다고 하지 않았어요?"

무언가 착오가 있는 듯했다. 전화기 너머의 남자분은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이 잘못 전달받은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아마 엄마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영국과 한국의 시차에 대한 혼돈으로 잘못 전달이 된 듯했다. 이 정도의 이야기가 오가는 시점에 전화기에서 "뚜뚜"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들어도 돈을 더 넣으라는 경고였다. '350원을 벌써?' 잽싸게 잔돈을 꺼내어 20펜스를 전화기에 넣었다. 아무리 작은 동전이라지만 정말 순식간에 요금이 떨어졌다. 영국의 물가를 처음 경험한 순간이었고, 무서워지는 순간이었다.

"제가 잘못 알고 있어서 출발하지 못했는데 조금 기다려줄 이래요? 지금 출발하면 한 시간 반 정도 걸릴 것 같아요."

한 시간 반이 아니라 하루 반나절이라도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다.

"네! 기다릴게요. 천천히 오셔도 됩니다."

히스로 공항을 잘 아는 듯한 그는 내가 어디서 기다리고 있으면 될지 알려주었고 곧장 출발하겠다는 말을 남긴 후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난 후에야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한 시간 반정 도면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다. 시간적 여유가 생긴 나는 공항 이곳저곳을 둘러보았고, 매점과 커피숍에서 물가를 체감했다. 한국에서 자주 이용하던 물건들 위주로 환율을 계산했다. 가격을 볼 때마다 원화 환율을 계산해 가며 마음속으로 '흭' 하고 단말마를 외칠 뿐이었다. 비싼 가격들을 보면서 이곳이 공항이라는 특수한 곳이기에 이 정도일 것이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공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오랜 비행과 잠을 못 잔 탓에 몸이 상당히 피곤했고, 기다리라고 이야기한 곳을 찾아 앉아있기로 했다. 오후 1시 비행기를 타고 12시간을 비행했건만 런던의 시간은 이제 기껏 오후 4시 정도였다. 한국 시각으로는 새벽 1시를 넘긴 시간이다. 한참을 기다리자 그가 나타났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었기에 나를 찾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히스로 공항을 잘 알고 있는지 그는 내가 있는 곳으로 단번에 달려왔다.

"많이 기다리셨죠? 미안해요. 비행 날짜를 잘못 알려줬나 봐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덕분에 구경 잘했습니다."

"일단 타시죠."

작은 승용차(도요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를 탄 우리는 A3라고 하는 도로를 타고 런던으로 향했다. 내가 내린 히스로 공항 또한 런던이었지만, 런던은 6존(Zone)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런던은 1~4존까지이고 5존과 6존을 포함해서 Great London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런던이라는 곳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사실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간접경험으로 어느 정도 정보를 얻을 수는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일은 실제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일들이다. 돌이켜보면 그가 이야기한 것들 중에 맞는 부분도 있었지만, 사실과 다르다고 느낀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차를 타고 약 한 시간을 달리는 동안 생활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정착비용은 얼마나 가지고 왔어요?"

"아, 저는 아르바이트로 충당할 생각이라서 정말 조금만 가지고 왔어요."

"조금 얼마요?"

"누나가 백만 원이면 아르바이트 구할 수 있을 거라 해서..."

"백만 원이요?"

"네, 학원도 끊어놨고, 비행기도 왕복으로 되어 있으니까 백만 원 안에서 해결해 봐야죠."

"백만 원으로 뭘 하려고요?"

"네?"

갑작스러운 그의 질문에 살짝 놀라 말문이 막힌 나에게 그는 말을 이어갔다.

"런던 살인물가 못 들어 봤어요? 여기 장난 아닌데..."

"아, 들어는 봤는데... 사실, 감이 안 와서요."

"백만 원이면 한 1주일 정도? 살 수 있겠다."

"1주일요?"

그는 여전히 차분한 어조로 런던의 물가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버스비, 식비, 숙박비 등등. 사실 내가 백만 원이라는 금액을 여비로 챙긴 데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그의 설명이 나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이 들릴 수밖에 없었다. 버스 한번 타는데 2천 원. 당시 한국의 버스비가 750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에 비하면 거의 3배에 육박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가장 험난한 것은 숙박비였다.


한 달 방세로 가장 저렴한 곳이 40만 원이라고 했다. 한국과 비교했을 때 금액이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가장 저렴한 곳을 기준으로 하면 그 환경은 한국의 1/10만큼이나 열악하다는 설명이었다. 거기다 방을 구하기 위해서는 한 달 방세만큼의 Deposit(보증금)을 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40만 원 방세에 40만 원 보증금? 80만 원?' 한국에서 자취나 하숙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100만 원을 생활자금이라고 가지고 왔는데, 80만 원이 방세라니...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러한 방을 지금 당장 구해 놓은 것도 아니고 하니 방을 구할 때까지는 민박을 이용해야 하는데, 하루 민박 요금이 20파운드, 4만 원이라는 것이다. (당시 파운드의 환율이 높아 1파운드에 2천 원에 육박했다) 민박집에서 5일을 묵은 후에 방을 구하면 내 전 재산 100만 원이 날아갈 판국이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자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런던의 살인물가를 너무 허투루 보고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누나의 말만 들었나 싶기도 하고, 내가 참 대책이 없는 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나를 자신이 알고 있는 민박집으로 안내했고, 민박집으로 가는 내내 나는 많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민박집에 도착하여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무거운 짐을 일단 민박집으로 들여놓았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은, 보통 픽업을 나오는 사람들에게 최소 30파운드, 약 6만 원의 요금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아무런 사례도 하지 않았고, 그 또한 내 자금 사정을 알고 있던지라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다. 어머님들끼리의 친분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많은 생각을 남긴 채 그는 떠나갔고, 나는 낯선 민박집에 혼자 남겨졌다. 설렘과 즐거움은 싹 가셨다. 당장 내일이 걱정이었다. 아니, 오늘부터가 걱정이었다. 4인실 방이었지만 손님이 없었는지 혼자 사용하게 되었고, 넓은 방에 혼자 있으니 걱정은 더욱 커져만 갔다. 잠시 그렇게 멍하게 앉아있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민박집에서 꼭 필요한 것들만 꺼내어 짐을 풀었다. 장시간 비행을 해왔기에 우선은 좀 씻고 싶었다. 옷가지를 챙겨 들고 화장실로 가서 샤워부터 했다. 그 와중에도 모든 것이 신기했다. 영국식 화장실은 한국의 것과 비교하면 참 불편했지만 고풍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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