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채가 들려주는 영국 유학 이야기

1장 도전하는 자에게 허락되는 것

by 쪼꼬

Chapter 7. 귀소본능

샤워를 마친 후, 기다리고 있을 집에 전화부터 했다. 해외에서 국내로 전화할 때에는 국제전화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저렴하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던 나는 한국에서 국제전화 전용 카드를 구매해 왔고, 민박집의 전화기를 이용하여 집으로 전화를 넣었다. 상당히 긴 일련번호를 눌러야 해서 불편했지만, 그 정도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었다. 당시 영국이 저녁 9시를 넘길 때였으니, 한국시간으로는 새벽 6시경이었다. 늘 일찍 일어나셔서 출근하시는 아버지였기에 6시라도 왠지 깨어 계실 것만 같았다.


전화벨이 울리고, 이윽고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아빠."

"어, 아들이여? 잘 갔어?"

아버지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눈물이었다. 내 인생에서 그토록 아버지가 보고 싶은 적은 처음이었다. 늘 친구 같고 편안한 아버지였기에, 언제나 웃으면서 농담을 던지시는 아버지였기에 나에게 아버지란 즐거운 분이었다. 이렇게 목소리만으로 눈물이 날 정도의 존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안 들리기만을 바라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바로 어제만 해도 옆에 있던 아버지였지만 장장 13시간을 날아온 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였기에 더욱더 서러웠다. 보고 싶을 때 언제라도 가서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자 더욱이 그러했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이야기를 해야 했다.

"네, 잘 왔어요."

"그려, 힘들면 그냥 오나. 무리하지 말고."

내 흐느낌이 느껴지셨는지,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달래고 계셨다.

"응, 알았어요. 엄마는?"

"옆에 있어. 바꿔줄게."

이번엔 엄마였다. 항상 엄하게 키워오신 엄마지만 마음이 소녀 같은 분이라 눈물 또한 많은 분이셨다. 엄마 역시 수화기 너머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흐느끼셨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멀리 떠난 아들에게서 전화가 올까 봐 뜬눈으로 밤을 새운 것 같았다. 전화기 너머 눈물겨운 가족 상봉을 마치고 얼른 전화를 끊었다. 더 통화하면 창피한 눈물이 마르질 않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해주신 힘들면 그냥 들어오라는 말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래, 힘들면 그냥 들어가자. 여긴 내가 머물 곳이 아닌가 보다.'

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던 나약함과 현실에서 도피하려던 습성이 아버지의 한 마디에 어느새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나에겐 돌아갈 곳이 있지 않은가? 집안이 부유하거나 아버지 재산만 믿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한국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나를 받아줄 가족이 나에겐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내가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배수의 진을 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집을 떠나올 때부터 내가 돌아갈 곳이 없고 어떻게든 무조건 해내겠다는 의지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 배수의 진이 치어지지 않았다. 조금은 안일하고 막연한 생각으로 유학을 결정했기 때문에 나에게 배수의 진이 치어지지 않았다. 배수의 진을 친다는 것이 반드시 물리적 대안을 모두 없앤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신적 배수의 진을 치는 것은 물리적으로 모든 기회를 없애는 것보다 몇 곱절은 더 중요하다. 물리적 기회 요소를 없애면 자연적으로 정신적 배수의 진을 치게 되겠지만, 이것은 반대로 말하면 물리적 기회 요소가 제거되기 전에는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겠다는 의지가 약해질 수 있는 요소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신적 배수의 진을 친다면 물리적 조건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에게 돌아갈 아버지가 없었다면'이 아니라 '나에게 돌아갈 의지가 없다면'이라는 조건으로 물어보아야 한다. 정신적 배수의 진을 쳤어야 했다. 그러지 못했기에 물리적 기회를 돌아보게 되었다. 정신적 배수의 진을 쳤다면 아버지의 돌아오라는 권유도, 내가 가진 절박한 환경도, 불확실한 미래도 어떻게든 바꿔보겠다고 생각하도록 했을 것이다.


풍선처럼 부푼 귀소본능은 어느새 모든 계획을 뒤집어 놓았다. 잠시 방에 앉아 생각에 잠긴 나는 공항에서 숙소까지 오면서 들은 정보들과 지금 내가 놓인 외로움과 두려움이라는 상황을 직시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비록 곧장 돌아갔을 때 돌아오게 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걱정되기는 하였지만, 일단 돌아가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어버린 이상 더 망설일 틈이 없었다. 결정과 함께 바로 행동이 이어졌다. 곧장 준비를 도와준 유학원 담당자에게 숙소에 비치된 컴퓨터를 사용하여 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이곳에 도착하고 보니 정말 생각과는 많이 다른 곳인 것 같습니다. 제가 계약한 어학원에 환불이 가능한지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무기력하고 나약한 메일을 보냈지만 내 마음은 이미 확고했다. 메일을 보내고 방으로 돌아오자 피곤이 몰려왔다. 새벽이슬을 밟고 다니던 나였지만 한국시간으로도 아침 7시를 넘겼기 때문이다. 도착 첫날 늦게 잠을 자면 늦게 잘 수록 시차 적응이 빠르다는 이야기를 듣고 최대한 버티려고 했지만, 폭신한 침대에 누운 내 몸은 바로 수면 모드에 돌입했다. 그렇게 스르르 잠이 든 나는 새벽 4시경, 그러니까 한국시간 오후 한 시경 누운 상태 그대로 잠에서 깨어났다. 단 한 번도 깨지 않은 걸 보니 정말 피곤하고 긴장된 하루였던 듯하다.


눈을 뜨자마자 메일을 확인하러 숙소 거실로 내려갔다. 유학원으로부터 답 메일이 와 있었다.

'많이 힘드신가 보네요. 그래도 이왕 거기까지 가셨는데 조금 버텨보시는 게 어떨까 하네요. 너무 안타깝습니다. 일단 어학원에 연락해서 환불이 가능한지 알아보겠습니다. 비자를 받으신 상황이기 때문에 환불이 어려울 수도 있고 환불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전액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참고하시고요. 답변드리겠습니다.'

이미 마음의 결정을 한 나에게 학원비 따위가 아까울 리 없었다. 그 때문에 1년 동안 들어가야 할 돈이 어마어마할 것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잠시 후 다시 한번 메일에 접속하자 또 한 통의 편지가 와 있었다.

'지금 막 어학원과 통화를 했는데, 주말이 끼고 해서 답변을 바로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유학원에서 월요일에 가능 여부를 확인하여 준다고 하네요. 바로 도움을 드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어차피 월요일부터 과정 시작이니 직접 학원에 가셔서 한국인 담당자와 이야기하시는 것이 더 빠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주말이 겹쳐있고 월요일부터 과정이 시작인지라 즉시 답변을 듣는 것이 어려울 것은 짐작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도 유학원에서 신경을 써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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