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렁이가 담을 넘어가려나? 다음 날 일어났을 때 집사람은 출근하고 집에 없었다. 조금 늦게 출근하게 된 나는 애들 할머니인 김여사 님과 아침 식사를 하려 마주 앉았다.
'어제 집사람이 나보고 말하랬는데. 어쩌지?'
아침부터 시원하게 말아주신 잔치말이 국물을 한 수저 떠 넣으며 잠시 고민하다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 오토바이 샀어요."
"잉? 뭐?"
"오토바이 샀다고요."
엄마의 침묵이 느껴졌다. 빨리 부연설명을 해야 했다.
"집사람 가게 배달도 좀 도와주고 하려고 쪼그마한 스쿠터 하나 샀어요."
"이이. 그럼 좋것다."
응? 좋다고? 의외의 반응에 사뭇 놀랐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자주는 아니고 날 좀 따뜻해지면 가끔씩 나가서 도와주려고. 애들이 있어서 자주는 못하고 하루에 서너 건 만이라도."
"그게 어디냐. 서너 건만 해줘도 좋지. 애들 밥 차려주고 나가서 도와주고 같이 들어오면 되겠구먼."
집사람이 가게를 시작한 뒤부터 엄마 아빠는 집사람을 가뜩이나 딱하게 여겨왔다. 그래서였는지 내가 집사람의 일을 도와주겠다며 운을 떼자 오토바이라는 주제는 어느새 배달 대행이라는 주제로 스무스하게 담을 넘었고 더 이상 엄마의 승인이나 허락은 필요치 않게 되었다. 이렇게 쉽다고? 믿기지 않는 상황전개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출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며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야, 엄마한테 말씀드렸어."
"뭐라셔?"
집사람의 말투는 여전히 냉랭했다.
"자기 배달 조금씩 도와주려고 한다니까 잘됐다 하시는데?"
내 말투에서 들뜬 기운을 숨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려고 산 거 아니잖아."
아야! 집사람의 꼬집음이 지나치게 날카로워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아니야. 진짜로 자기 도와줄 생각도 있어서 산 거야."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꾸하자 수화기 건너에서 한숨과 함께 '알겠어.'라는 말이 들려왔다. 내가 여자를 잘 모르긴 하지만 이번엔 확실했다. 체념의 한숨이었다. 됐다! 이제 허락 아니, 용서는 받은 거다! 이제 대놓고 우리 예쁜 노랑이를 예뻐해 줄 수 있다!
- 조금만 기다려 형이 더 많이 더 자주 예쁘다 예쁘다 해 줄게!!
당장 인터넷 쇼핑창을 열었다. 그동안 구상해 두었던 대로 몇 가지 부품들을 구매했다. 대한민국 배송 참으로 위대하다. 주문한 지 단 이틀 만에 집 앞 현관에 도착해 주니 말이다. 크으 소리가 절로 난다. 주말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택배를 확인했다. 가차 없이 포장을 벗기고는 몇 가지 공구를 챙겨 나대기 좋아하는 딸아이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오늘 진행할 DIY는 센터가드, 헬멧걸이 그리고 컵홀더였다. 비교적 난이도가 쉬운 것들 뿐이라 설치는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이래 저래 참견질을 하던 둘째가 오토바이를 보더니
"우아! 노란색이네!"
한다.
"귀엽지?"
"응. 꽥꽥이 노란색 귀여워! 꽥꽥아!"
딸아이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오토바이 꽁무니를 쓰다듬으며 자신이 붙여준 '꽥꽥이'라는 별명을 불러가며 너 참 예쁘다는 둥, 우리 집에 잘 왔다는 둥, 앞으로 잘 지내보자는 둥 한참을 오토바이와 깔깔거렸다. 둘째가 붙여 준 별명이 어지간히도 많이 마음에 들어찬다. 좋아! 앞으로 네 이름은 꽥꽥이다! 자주 불러줄게! 꽥꽥아! 근데... 글로 쓸려니 타자 쳐대기가 쫌 어렵긴 하네. 꽥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