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화재의 기억
우리는 교통섬이나 회전교차로인 라운드어바웃(roundabout)을 흔히 로터리로 일컫는다.
엄밀하게 숭례문은 회전교차로가 아니므로 로터리라는 단어가 부적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운전자들이 숭례문을 살짝 돌아 어디론가 간다는 측면에서는 로터리 느낌이다.
흥인지문도 비슷한 느낌일까?
2008년 방화사건 당시 언론의 현장중계를 보면서 난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대목장을 불러라~
이런 언론의 외침에 오히려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 모든 언론의 지상과제는 전문가인 대목장의 빠른 투입과 진두지휘였다.
화재진압 전문가인 소방관들조차 문화재, 게다가 국보1호의 위엄 앞에서는 아마추어 취급을 받기도 했다.
빠른 판단으로 소방 관계자들이 흥선대원군이 쓴 현판을 바닥으로 떨어뜨릴때는
오히려 소방 화재 진압팀의 선택이 도마 위에 올라가기도 했다.
이 교통섬, 아니, 보물섬의 진가는 더 커졌다.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숭례문의 실시간 보도는
아이러니하게도 스포츠중계처럼 주목을 받았다.
숭례문의 상징성, 가치, 국보 1호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점검할 수 있는 위기이자 기회였는데
그 즁요한 순간에 우리는 급하고 급했다.
대목장이 잠옷 바람으로 현장에 온 들,
산불처럼 범위가 넓은 화재도 아닌데 진압의 우선 순위가 있을리 없으며
나무를 말려 끼우는 복원은 불길 속에서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불타는 중에 나무는 불쏘시게를 피할 수 없는 일인데 말이다.
문화재 구역이 아닌 단일문화재의 화재라 하더라도 우선순위나 대목장의 컨설팅이 중요할수는 있다.
하지만 언론은 빠른 논의를 하고 싶고, 빨리 복원 계획을 수립해서 무사하다는 안도를 하고 싶었던 듯 하다.
위독하다는 사회적 이슈 앞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보도가 아니라
"어렵지만 살려보겠습니다."라는 의사의 진단은 얼마나 인간적이고 감동적인가?
하지만 나는
목적이 상실된 관점이 도시 문제의 해결이나 극복 과정에서 미숙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답답했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탈때에 화재진압 자체에 집중하는 한편,
형태는 그대로 두고 재질을 유리로 바꾸거나, 옥상을 새로운 정원으로 만드는 대안들도 자발적으로 제시됐다.
그리고 어떻게 복원할지에 대해서 의견들이 논의되는 프랑스의 상황을 보며
더더욱 우리가 놓쳐버린 기회가 안타까웠다.
이미 테세우스의 배가 되어버린 시점이라면 그동안의 우리 무관심들을 돌아보고
어떻게 복원할지, 무엇을 복원하는 것인지,
혹시나 문화 그 자체의 복원이 아닌, 문화재를 구성하는 목재를 덧대는 복원으로 끝나지 않을런지
많은 것들을 경계해야 했다.
결론만 본다면 프랑스 또한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원형복원이라는 결과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난 재현의 의미와 가치를 시대와 민족의 관점에서 분석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계획가, 설계자로서
전통의 계승은 형태가 아닌 정신의 계승이어야 한다고 생각할 뿐,
결과와 과정이 모두 중요하고, 목적과 과정이 맥락에 맞아야 한다는 말은 쉽게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그 과정의 의도와 목적까지 같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현판의 세로글씨가 숭례문의 화기를 누르기 위한 것이라는 전설과
방화범에게는 이미 전조가 있었다는 교훈을 남긴 채,
화재의 불씨와 관심의 불씨를 함께 사그라뜨렸다.
결국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를 건립시키고 그 곳으로 이송된 상처 입은 부재들은
역시 국보 1호다운 위엄으로 또 다른 관리 공간의 호위를 받으며
무기한 저장 폴더에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