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아파트
우리나라에서 프랑스 사진작가의 항공사진 전시가 열렸던 기억이 있다.
제목은 '하늘에서 본 지구'로 작가는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이었다.
시간이 꽤 흘러 당시 기록은 쉽게 찾기 어렵지만,
그 전시는 상당한 화제를 모았고 사진집도 발간됐다.
차분하지만 그 자체로 놀라움이다.
대개 사진 속에는 설명을 강요하는 텍스트가 없고, 자연과 도시를 구분 짓는 주석도 없다.
대신 반복되는 구조, 논밭의 결, 강의 곡선, 도시 블록의 리듬 같은 것들이
마치 반추상 회화처럼 화면을 채운다.
촬영 방식 또한 일관됐다.
헬리콥터나 소형 항공기를 타고 지면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사람의 시선이 아닌, 패턴을 읽는 높이에서 찍는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풍경이기보다는 ‘관찰된 패턴’에 가깝다.
지금이야 비행 허가만 얻으면 드론으로 얼마든지 찍을 수 있는 사진들이지만
당시에는 정말 기발하고 특이한 작품세계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대한민국을 찍은 사진들도 많았고,
노단식 논부터 많은 풍경이 있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서울의 아파트 사진이었다.
자연물이든 인공물이든 모두 찍는 작가인 데다가 도심도 많이 찍은 작가이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지만,
프레임에 담긴 아파트 사진은 그 자체로 모더니즘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했고,
아이러니하게
반대로 모더니즘 종말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비운의 프루이트-이고(Pruitt-Igoe) 모습 같기도 해서
당시에는 한국인으로서 뭔가 민망하고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르 꼬르뷔지에의 이상적인 도시계획 개념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아파트 사랑은
분명히 르 꼬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와 무관하다.
하지만 적어도 결과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그 빛나는 도시가 유사하게 꽃을 피우고 있는 느낌이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우리의 상상이 여전히 ‘어떤 아파트인가’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고전적인 ‘아파트’ 그 자체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빛나는 도시'는 효율과 더불어 많은 오픈스페이스를 배경으로 하는데
우리의 현실은 신축이든 재건축이든 사업성이라는 이름으로 용적률을 최댓값으로 뽑아내기에 급급하다.
고층도 아니고 충분한 옥외 공간도 아닌, 어중간한 높이와 기부채납 그리고 각종 규제와 완화가 버무려진
비슷한 아파트 무더기들이 다가구나 다세대 주택들을 대체해 가고 있다.
고층아파트 형태의 생활형 숙박시설과 호텔은
호주의 골드코스트를 살짝 떠올리게도 하는 반가움과 함께,
낙산사 어느 지점에서나 시야에 들어오는 저 빌딩들이
과연 문화재 현상변경심의는 제대로 거쳤을까 하는 의문을 동시에 남긴다.
천년고찰과 한적한 바닷가에
갑작스럽게 솟아난 빛나는 도시가
어떤 논의의 끝에서 만들어진 결과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여백이 아니라 면적을,
질서가 아니라 수익을,
전망이 아니라 평면을 반복해 왔다.
그래서 이곳은
바닷가라기보다 상품에 가깝고,
풍경이라기보다 산출된 결과에 가깝다.
부산 해운대, 속초해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섯 개의 달처럼 떡하니 떠오른 리조트가 있는
강릉 경포대를 보면 양양은 억울할지 모른다.
이곳도, 결국은 아파트인가.
아니면 아파트만 상상해 온 우리의 시선이
그대로 드러난 장면일까.
만약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이 이곳 사진을 찍는다면
그의 사진 속에서 이곳은
문화재 지역도, 휴양지도, 관광지도 아닌
아파트라는 하나의 답만을 반복해 온 풍경으로
남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