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사회

에버랜드 사파리월드의 추억

by 이강훈

에버랜드는 롯데월드보다 많은 관람객이 찾는 우리나라 최대의 테마파크다.

자연농원 시절에도 줄을 서서 기다리던 기억이 있는 세대에게 이곳은 이미 하나의 추억이다.
지금도 여전히 ‘꿈을 담은 낭만의 장소’라는 이미지는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게다가 나도 종종 놀러간다.


내 친구 중 한 명은 아이와 함께 연간 회원권을 끊어 다닌다고 했다.
“매번 좋은데. 사파리가 진짜 재미있어.”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진짜 아프리카 사파리는 아니겠지만, 꽤 볼 만하다는 그곳.

차를 타고 야생에 서식하는 동물들을 둘러보는 테마가 있는 곳이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더 분명해졌다.
언젠가 꼭 가야 할, 가장 기대해도 될 공간.

“얼마나 재미있을까?”

사람이 많아 붐빌 것 같다는 이유로
‘나중에 아이가 조금 더 크면 가자’고 아껴두었던 장소가 바로 사파리였다.

KakaoTalk_20260212_151001073.jpg 사파리, 로스트밸리의 지도

하지만, 직업병처럼 공간을 자꾸 읽어대는 내 루틴이 결국 문제였다.

재밌다던데 얼마나 재밌을까? 기대하며 보는 영화라는 게 어떤 불행을 안겨 줄지 미처 몰랐다.

아이와 처음 사파리에 갔을 때의 내 실망감이란...

그 곳의 대기공간만 이야기하려 한다.


테마파크의 뜻은

띰(Theme)이 있는 공원(Park)이라는 뜻이다.

테마라 불리는 컨셉과 주제가 있는 공원, 재미있는 공원이라는 뜻이다.

롤러코스터나 시설 위주의 어뮤즈먼트 파크(Amusement Park)에 비해서

놀이기구보다는 테마나 디자이너의 생각이 이용자의 생각으로 전달되는

흥미로운 장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설이 많은 공간이 아니라,
특정한 세계관과 콘셉트를 공간 전체에 구현한 장소다.


다른 의미에서 테마파크 내의 각각의 시설이나 테마 공간을 어트랙션(Attract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한정된 수의 각각의 어트랙션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패스트패스가 아닌 경우에) 반드시 대기라인을 통과해야 하며,

이 대기공간을 덜 지루하게 하면서 몰입감을 주기 위해 작은 테마와 스토리가 공간에 연출된다.

이 대기공간은 단순한 줄 서기가 아니다. 몰입을 준비시키는 장치다.

지루함을 줄이고 기대를 증폭시키기 위해
공간에는 작은 서사와 연출이 더해진다.

그래서 이 공간을 프리쇼 공간(Pre-show Area)으로 일컫기도 한다.


에버랜드의 사파리 역시 그렇다.
입장 전, 우리는 이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파리 탐험대가 된 듯한 감각,
야생으로 진입하기 직전의 긴장감!!


하지만

결국 시선을 붙드는 건 또다시 안내 사인들(Signage)이다.

심장충격기처럼 반드시 드러나야 할 정보는 분명하게,
불필요한 안내는 과감히 줄이는 것이 맞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잠시 치워둔 장비의 원산지 표지판, ‘출입금지’와 같은 경고문은
혹시라도 놓칠까 봐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선명하게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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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알리는 사인(경고표시)은 분명해야 하지만,

경험을 방해하는 사인(안내표시)까지 전면에 등장할 필요는 없다.

테마를 설계한 공간 위에 관리의 흔적이 겹겹이 얹히는 순간, 몰입은 깨진다.

그래도 이 정도는 예상했던 장애물이다.

연관된 업체들이나 디자이너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아무일도 아니다. 아무것도 거슬리지 않는다. 주문을 외운다.


소비자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대기라인의 하이라이트는 지금부터다.

각종 소비자 분석 기법과 STP 전략, 페르소나를 적용한 경험 시나리오 등을 통해서

고객의 마을을 사로잡을 완벽한 가설이 준비된다.


퀴즈를 풀어 대학에 가고,
퀴즈를 통과해 삼성에 입사하는 사회.

그 구조가 너무도 익숙한 대한민국에서,
삼성이 운영하는 이 삼성테마파크가 선택한 전략은 명확하다.


"관람객의 핵심 타깃은 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데려온 학부모라는 것."

결국 지갑을 여는 사람, 재방문을 결정하는 사람의 니즈를 공략한다.


감성보다 합리,
재미보다 교육,
놀이보다 ‘돈의 가치’를 디자인한다.

전략적으로 보면 매우 영리한 선택이며

아이들은 어트랙션의 테마 따위에 몰입되면 안되는 미래의 인재이고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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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라인의 퀴즈와 설명들

어느새 대기줄의 사람들은 답을 찾고 아이와 대화한다.

놀이동산에서도 아이들의 숨 쉴 곳은 없다.

삼성의 가르침은 탁월하다.

낙타처럼 달려서는 분명 도태된다.

정답을 바로 보는 것도 도태된다. 힌트 칸을 만들어 두자 - 약한자들이 볼 수 있도록.

야생에서도 약한 동물에게 신의가호가 있다.


온 김에 로스트밸리의 다양한 서식지 정도는 외워두면 학습효과는 배가 된다.

테마 어트랙션인 로스트밸리에서 잃어버린 것쯤은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예상문제에 등장하는 퀴즈는 아니니까.

KakaoTalk_20260212_150846040.jpg 종료시간은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다는 테마

여는 시간과 닫는 시간의 표시 - 연출력이 압권이다.

잃어버린 것이 다름 아닌 '시간'이었다면 충분히 설득력 있다.

블랙홀처럼 이곳에 입장한 사람들은 영영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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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0260212-153244945.jpg 기다리는 동안 읽어야 할 타우와 점 이야기

이제는 심화 학습이다.

백사자와 코끼리를 읽는 것 만으로는 독서실이 아닌 테마파크에 온 것이 사치가 된다.

암기력 향상을 위해 백사자 이름인 '타우'와 코끼리 이름인 '점'도 함께 외워보자.


대기공간은 매우 유용하다.

사용물품이 밖에 있는 것보다는 안에 있는 편이 유지관리 측면에서 이득이며,

다른 적재 공간을 만들거나 물품을 새로 만드는 행위는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낭비고 사치다.

고객들이 좀 밖에 서 있더라도 플로깅처럼 의미 있는 운동 행위가 된다.

KakaoTalk_20260212_150815067.jpg 계절적 이유로 쓰지 않는 물품을 적재하거나, 적재해 둔 걸 보는 체험은 테마파크에서 극히 드문 경험이다.
KakaoTalk_20260212_133906267.jpg 스토리는 한 장짜리 페이퍼로 간단히 정리한다

일본의 디즈니씨에서 '타워오브 테러'의 대기공간에 가면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컨셉이다.

그래서 옷은 있는데 사람이 없다. 갑자기 사라졌으니까.

KakaoTalk_20260212_133931858.jpg 이미지를 설명해 보세요(탐험복)

하지만 삼성의 세계에서는 진실만이 통한다. 그저 탐험복을 케이스에 넣어두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래도 옷장에 넣어둔 탐험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지금도 파악하기는 어렵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미지를 연출한 것인지도 모른다.

바다의 선박 컨셉이 아닌데도 여기저기 나무에 밧줄을 묶어 놓은 모습은

에버랜드 곳곳에서 볼 수 있다.

KakaoTalk_20260211_171330762.jpg 이미지를 설명해 보세요(전화기)

전화기에 와이어를 어느 경우에 묶으라는 가이드라인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지만

대개는 떨어지면 다칠지 모르는 위치에 연출한 소품에 감아둔다.

하지만 대기라인의 가드레일 근처의 위치라면 도난방지용이라 보는 게 맞다.

왜 갑자기 누군가가 테마파크에 와서 전화기 소품을 훔쳐간다는 설정인지 모르지만

테마파크 설정으로는 참신하다. 그리고 정직하다.

이곳은 진짜 사파리가 아닌 삼성 사파리니까.


정직함의 끝은 마지막 대기공간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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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야생이 아니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가 아니다
오 엘이디(O led)가 아닌 큐 엘이디(Q led)를 각인시킨다.


현재의 에버랜드 이야기는 아니다.

저것도 몇 년 전이니까 지금은 아마도 볼 수 없는 풍경일 것이다.

아쉽게도...


p.s.

참고로, 마지막에 결국 버스를 타고 사파리에 진입했을 때

어떤 공간적 한계가 드러나는지는 여기서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다만, 다음 구간에서 기린을 가까이 만나기 위해서
사육사가 먹이를 주는 모습을 미리 보게되더라도 놀랄 필요는 없다.

이곳은 연출된 야생이니까.


통제된 동선과 계산된 거리 안에서 경험이 구성된다.

만약 진짜 야생처럼 사자가 내가 탄 버스 위로 뛰어오르길 기대한다면,
차라리 다큐멘터리나 유튜브 영상을 보는 편이 낫다.

아니면 꿈을 꾸거나.


그리고

동물들의 이름외우기는 버스안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된다.

분명히 기출문제에 '두번째 홍학의 이름을 쓰시오'가 있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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